[씨네21 리뷰]
남성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들의 연대 <귀향>
2016-02-24
글 : 윤혜지

1943년, 소녀 정민(강하나)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다. 소녀들은 영문도 모른 채 무지막지한 군홧발 아래서 성노예로 부림당한다. 끔찍한 삶 속에서 소녀들은 존재 자체로 서로의 위안이 된다. 1991년 현재엔 성폭행을 당해 반쯤 미친 소녀 은경(최리)이 있다(1991년은 고 김학순 할머니가 처음으로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세상에 드러낸 해다). 은경은 만신 송희(황화순)의 신딸로 지내다 과거 위안소 생활을 했던 영옥(손숙)을 만난다. 은경은 꿈을 통해 영옥의 악몽을 보고 이들의 넋을 고향으로 데려올 씻김굿을 준비한다.

영화는 은경을 영매 삼아 과거와 현재를 이으며 남성의 폭력에 짓밟힌 여성들끼리의 연대를 그린다. 조정래 감독은 ‘나눔의 집’ 봉사활동 중 만난 강일출 할머니의 실화를 바탕으로 <귀향>의 시나리오를 썼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를 지나치게 남성과 여성의 적대적 구도로 이분화한 경향이 있지만 영화는 충실하고 묵묵한 태도로 가해자는 가해자로, 피해자는 피해자로 묘사한다. 여러 차례 등장하는 수평 트래킹숏은 잔혹한 전시효과를 낳는다. 분숙(김시은)은 “우린 벌써 다 죽은 기야. 여기가 지옥이다야”라고 말한다. 살아도 산 것이 아닌 생은 은경의 씻김굿이 펼쳐질 때까지 고통스럽게 전시된다. 모두가 굿판을 지켜보는 가운데 일본군 유령들도 군중 사이에 섞여 있다.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 존재하는지도 모르게 서서 ‘보이는 자’를 비웃고 있는 광경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이슈가 작금의 한국 사회 안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은유하며 오싹한 현실을 일깨운다(58쪽에 보다 상세한 <귀향>의 이야기를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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