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eople]
[people]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다
2016-03-03
글 : 장영엽 (편집장)
사진 : 백종헌
<트윈스터즈>의 사만다 푸터먼 감독, 아나이스 보르디에
아나이스 보르디에, 사만다 푸터먼 감독(위부터).

나와 같은 얼굴을 가진 누군가의 SNS 친구 신청. 그 버튼을 클릭하자마자 새로운 평행우주가 열렸다. 다큐멘터리 <트윈스터즈>는 각각 미국과 프랑스로 입양된 채 26년간 서로의 존재를 알지 못했던 일란성쌍둥이 자매의 이야기다. LA에서 배우(사만다 푸터먼)로, 런던에서 디자이너(아나이스 보르디에)로 살아가던 두 사람은 떨어져 있던 시간을 만회하려는 듯 그 누구보다 애틋하게 서로의 존재를 탐색하고 함께 과거의 흔적을 좇아나간다. <트윈스터즈>의 국내 개봉을 앞두고 한국을 찾은 그녀들을 만났다. 밝게 인사하며 인터뷰 장소로 들어오는 그녀들을 보며 첫 질문을 마음속으로 되뇌었다. 그래서, 누가 사만다 푸터먼이죠?

-실제로 보니 정말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힘들다. (웃음) 영화에서 가족, 친구들도 구분하기 힘들어 하던데.

=아나이스 보르디에_엄마는 우리 둘 중 한명이 먼저 보이면 누구 이름이든 먼저 불러보곤 하시더라. 친구들은 구분을 잘하는 편이지만, 모두 다 최소한 한번씩은 틀렸다. (웃음)

사만다 푸터먼_한번은 아나이스의 남자친구가 ‘옆으로 가’ 하며 허리를 살짝 친 적이 있다. 날 아나이스로 착각한 거다. 그래서 ‘나 그 쌍둥이 아니야’ 하고 말한 적이 있다. (웃음)

-2013년 2월21일, 두 사람은 서로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다. 사만다 푸터먼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영상으로 기록하기 시작한 건 그로부터 이틀 뒤인 23일이다. 빠른 시일 내에 영상으로 남겨야겠다는 결정을 한 거다.

=사만다 푸터먼_처음에는 나 자신을 위해 이 순간들을 기록해야겠다는 마음이었다. 나는 평소에일기를 쓰거나 글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비디오 블로그를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나이스를 알게 된 지 2주도 채 안 되어 영화를 만들기로 결심했는데, 처음부터 아나이스와 스카이프로 대화하며 그 모습을 기록해놨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게 가능하다고 예상했다. 그렇게 아나이스에게 영화화 제안을 했다.

아나이스 보르디에_사만다의 얘기를 듣고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겪은 일들이 정말 영화 같은 이야기였고, 이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다면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를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이 우리 이야기를 하는 건 원치 않았다.

-영화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어떤 고민을 했나.

=사만다 푸터먼_모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일어나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 어떤 외부적인영향이나 간섭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공동 연출을 맡은 라이언(라이언 미야모토)이 계속해서 우리의 모습을 담도록 했다. 그는 심지어 어떤 때는 한손으로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를 촬영할 정도였다. 촬영팀에 부탁한 유일한 조건이 있었다면 내가 ‘컷’을 외치면 촬영을 중단하라는 거였다.

-어떨 때 ‘컷’을 외쳤나.

=사만다 푸터먼_한국에서 촬영할 때의 일이다. 아나이스가 굉장히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힘들어했다. 촬영하는 친구들이 다 내 친구들이라서 다소 소외감을 느꼈었나보다.(한국에서 사만다 푸터먼과 아나이스 보르디에는 입양기관을 방문하고 위탁모들을 만난다.) 그렇지 않아도 굉장히 예민할 시기였기에 라이언에게 다소 거리를 두고 촬영분을 줄였으면 좋겠다고 얘기했다.

아나이스 보르디에_내가 겪고 있는 일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일 시간이 필요했다. 생각하는 걸 바로 얘기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힘들었나보다. 사만다와 함께 우리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생각해보고 얘기할 필요가 있었는데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니 그런 점이 좀 힘들었던 것 같다.

-SNS로만 대화를 나누던 두 사람이 런던에서 처음으로 만나는 장면은 이 영화의 가장 강렬한 순간 중 하나다. 극영화였다면 서로 감싸안고 눈물을 흘렸겠지만, 당신들은 가만히 서서 서로 바라보다가 웃음을 터뜨리기를 반복하더라. 그때의 심정이 궁금하다.

=사만다 푸터먼_그 장면을 돌려볼 때마다 당시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 일종의 쇼크 상태였던 것 같다. 몸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따로 놀더라. 그때 내가 보인 반응은 내 의지로 제어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나이스 보르디에_ 당시에 내 몸이 느꼈던 감각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다.

-“이제는 내게 어머니가 다섯분이다”라는 사만다 푸터먼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이제 당신들에게 가족이라는 개념은 어떻게 달라졌나.

=사만다 푸터먼_가족에 대한 정의와 생각이 변했다기보다는 더 확고해졌다. 외모도 다르고 피가 전혀 섞이지 않은 사람들과 가족으로 살다보니 유전자보다 더 깊고 중요한 무언가가 있다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다. 나는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누군가를 내 가족으로 받아들이겠다고 선택한다면, 그 사람이 바로 내 가족이라고 생각한다. 내 어머니와 아나이스의 어머니, 어렸을 때 우리를 위탁해 키워준 어머니들과 친어머니. 이분들은 우리에게 있어서 누가 진짜 어머니인지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라, 우리 마음 한구석에 각자의 의미로 존재하는 분들이다.

아나이스 보르디에_나도 가족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는 않았다. 가족 구성원 수가 전보다 더 늘어났다고만 생각하고 있다.

-나와 꼭 닮은 자매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건, 어쩌면 이 세상 많은 여성들이 한번쯤은 꿈꿔봤을 법한 얘기다. 각자의 존재를 알게 된 뒤 두 사람의 인생에는 어떤 변화가 생겼나.

=사만다 푸터먼_아나이스를 볼수록 나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게 된다. 그리고 서로 떨어져 있긴 해도 다시는 외롭지 않을 거란 걸 느끼고 있다. (쌍둥이 자매가 생겨서) 좋은 점은 밤에 잠이 안 올 때다. LA와 런던의 시차 때문에, 내가 새벽에 전화하면 아나이스는 낮이거든. 언제든 전화해도 받아줄 수 있는 쌍둥이 자매가 있다는 게 좋다.

아나이스 보르디에_영화 <페어런트 트랩>에서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된 쌍둥이 자매 할리와 애니처럼, 나도 장난을 받아주고 이해하고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자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자매는 싸우기도 하고 가끔 경쟁도 한다고 하는데, 우린 다 큰 뒤에 만나서 그런지 몰라도 그런 점이 전혀 없다.

-영화에서 두 사람이 함께 친어머니에게 편지를 쓰는 장면이 있다. 그 이후로도 친모에게서 연락이 없다고 들었다.

=사만다 푸터먼_지금은 친어머니가 우리 연락을 안 받아주는 것에 대해 마음을 비운 상태다. 지금은 우리가 <트윈스터즈>를 만들었기 때문에 어머니가 이 영화를 보고 우리에 대해 알게 되지 않을까 생각은 한다. 처음 우리를 입양보낼 때에도 사연이 있어 보낸 것이기 때문에, 지금도 사연 때문에 연락할 수가 없는 거라면 최소한 우리가 지금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걸 알아줬으면 한다.

아나이스 보르디에_어머니가 언젠가는 우리가 영화에서 장난치는 모습을 보며 ‘아, 쟤네 뭐야!’ 그렇게 웃으며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만다 푸터먼의 차기작은 쌍둥이 여성 슈퍼히어로 애니메이션이라고.

=사만다 푸터먼_두 쌍둥이가 사악한 악당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어렸을 때 헤어졌다가 슈퍼히어로 아카데미 입학식날 만나게 된다는 이야기다. (웃음) <트윈스터즈>의 팬이 그려준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 앞으로 각본가와 제작사를 찾아야 한다. 더불어 입양아와 입양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돕는 비영리단체 ‘KINDRED’와 관련된 일도 계속해서 참여할 예정이다. <트윈스터즈>의 제작비 모금을 진행하며 SNS상에서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다는 걸 알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원해줄 수 있는 곳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더라. 우리처럼 입양된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깨닫게 해주고 싶다. 4월5일 큰 모금행사를 뉴욕에서 열기로 했고, 아나이스가 참석하는 분들에게 드릴 선물을 직접 디자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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