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최고의 블루레이를 굽는 장인들
2016-03-03
글 : 김현수
사진 : 손홍주 (사진팀 선임기자)
사진 : 오계옥
사진 : 최성열
아시아를 넘어 세계 컬렉션 시장을 흔드는 블루레이 신흥 명가

2000년대 후반, 인터넷 다운로드와 스트리밍 서비스, IPTV 등의 성장세에 밀려 DVD 시장이 몰락하고 차세대 저장 매체로 주목받던 블루레이 역시 극장 바깥 사양산업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나날이 급변하는 미디어 매체 환경 변화 속에서 VHS, CD, LD 등 어떤 저장 매체도 가차 없이 쓰러져가던 때에 블루레이를 이른바 ‘컬렉터 문화’와 접목한 국내 업체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리미티드 에디션’을 표방하며 새로운 시장을 형성하고 국내뿐만 아니라 나아가 세계 시장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블루레이 제작사 플레인 아카이브, 더 블루 콜렉션, 노바미디어의 수장들을 소개한다.

“내가 소장하고 싶은 블루레이를 만든다”

플레인 아카이브 백준오 대표

한마디로 플레인 아카이브의 타이틀을 요약하자면 ‘사고 싶은 블루레이’다. 많은 컬렉터뿐만 아니라 해외 업계에서도 플레인 아카이브의 짧고 강렬한 성장에 놀란다. DVD 시절부터 직접 사모으고 즐겨보는 걸 좋아했던 백준오 대표의 손길이 닿은 블루레이는 디스크의 알찬 서플먼트 구성과 깔끔한 패키지 디자인이 원플러스원 상품마냥 따라붙는다. 블루레이의 기획, 제작, 유통 전반을 총괄하는 그는 복잡한 오소링(디스크 프로그래밍 작업) 작업도 직접 한다. 이는 그가 미국에 머물 때 라이프랩스미디어라는 회사에서 오소링을 배운 덕분이다. 그는 이때 배운 노하우를 바탕으로 당시 모두가 말리는 와중에 국내에 <무협>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멋진 하루> <트리 오브 라이프> 등의 타이틀을 성공적으로 출시했다. 2014년 <씨네21>과 인터뷰할 당시에만 해도 신생 제작사로서 몇편 되지 않는 출시작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이제는 ‘플레인이 만들면 팔린다’는 소문까지 나돌 정도다. 예약 출시를 공지하면 대부분 공개 첫날, 빠르면 십분 만에 품절된다. 초기 출시작들은 대부분 완판됐고 <이다> <내일을 위한 시간> 등 다양성영화로 분류되는 몇몇 영화들만이 전체 물량을 확 늘렸기 때문에 재고가 조금 남은 정도다. 현재 플레인 아카이브는 전세계 컬렉터들이 가장 주목하는 스틸북 형태의 패키지를 한동안 내놓지 않아 해외 구매자 비율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그런데 <가장 따뜻한 색, 블루>를 기점으로 국내 여성 구매자층이 대폭 늘어나는 시장 상황을 체감하게 됐다. 자체 쇼핑몰에서만 단독 판매했던 <가장 따뜻한 색, 블루>의 여성 구매자 비율은 무려 40% 이상이었다. 새로운 시장을 발견한 셈이다. 백 대표는 <러스트 앤 본> <프랭크> <오직 사랑하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등의 타이틀 역시 변화한 구매층의 효과를 톡톡히 본 영화라고 말한다. 또 백 대표는 “영화진흥위원회에서 지난해 발표한 블루레이 관련 산업 통계 자료를 보니 지난해 대비 30%나 시장 규모가 줄었다. 이 정도면 시장의 몰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어차피 플레인은 바닥에서 시작했으니 시장 상황과 다르게 성장한 셈이다. 결국 한정판 마케팅 전략을 취하는 몇몇 회사만 살아남았다.” 적절한 타깃층과 적당한 공급량을 결정하는 것은 점점 입지가 좁아지는 시장 상황에서 필수 생존 전략이다.

흔히 잘나가는 플레인 아카이브에 대한 질투로 인터넷상에서 ‘패키지만 신경 쓰는 회사’라는 평이 달리기도 하는데 플레인 아카이브만큼 블루레이 부가영상에 신경 쓰는 업체도 드물다. 백준오 대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타이틀은 리들리 스콧 감독의 작품들. 메이킹 영상 자체가 다큐멘터리로서의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걸 보고 한국영화 블루레이 역사상 가장 거대한 프로젝트라 여겨지는 <올드보이>에 “전례가 없는 수준의 스페셜 피처”를 담을 예정이다.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이야기만 들으면 정말 어마어마하다. 영화제에 출품해도 될 정도의 예산과 규모를 들였다. 그 누구보다 블루레이의 속성을 잘 이해하는 백준오 대표의 영화에 관한 애정이 듬뿍 담긴 역작이 탄생할 것 같은 예감이다.

특색 있는 일러스트를 활용

플레인 아카이브에서 처음 타이틀 패키지 디자인을 일러스트로 구상한 것은 사실 현실적인 이유에서 출발했다. 영화마다 적절한 스틸컷이나 이미지를 구할 수가 없어 어쩔 수 없이 일러스트를 쓰는 방안을 모색했는데 그것이 점점 회사 고유의 색깔로 자리잡은 것이다. <제로 다크 서티>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 등의 패키지 디자인을 한 크시슈토프 도마라즈키 일러스트레이터는 이제 웬만한 영화 팬들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이며 최근에는 영국의 유명 작가 조너선 버튼을 어렵게 섭외해 <폭스캐처> 등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다. <걸어도 걸어도>는 연필화 전문 황미옥 작가의 작품으로 꾸며지며 <올드보이>는 LP 커버를 디자인했던 작가 로랑 두리외가 맡아 작업한다. 아시아 시장에서 주목하는 디자인 패키지를 전세계에 유행시키고 디자인을 선도하는 건 모두 플레인 아카이브의 업적이다.

“구매 자체에서 재미를 유도하는 전략”

더 블루 콜렉션 한정환 대표

DVD, 블루레이 제작 및 영화 수입까지 겸하고 있는 콘텐츠게이트의 한정환 대표는 과거 DVD 제작사인 ‘스펙트럼 DVD’ 출신이다. 당시 근무했던 동료들과 함께 독립해서 별도의 제작사를 차린 그는 경쟁사 대표이자 동료인 플레인 아카이브의 백준오 대표가 한정판 블루레이 컬렉션 시장에 뛰어들던 무렵, 함께 이 시장 가능성에 주목했다. ‘더 블루 콜렉션’이란 이름의 블루레이 제작 레이블을 만든 그는 2014년 <플레이스 비욘드 더 파인즈>를 실험적으로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한정판 패키지 생산에 뛰어들었다. 다소 늦은 시작이었다. 본격적인 더 블루 콜렉션의 첫 성과는 <메종 드 히미코> 때부터였다. 플레인 아카이브 등에서 선보였던 깔끔한 디자인 케이스에 부가 설명이 첨부된 소책자, 엽서나 카드 등의 다양한 소품들을 함께 제공하는 풀 패키지가 자연스럽게 업계 전반의 규격처럼 자리잡기 시작했다. 700장 한정 생산 규모로 시작한 더 블루 콜렉션은 2년 만에 규모가 급성장했다. 이제는 해외 시장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2천~3천장 정도의 시장 규모로까지 확장됐다. 최근 가장 뜨거운 반응을 보인 타이틀은 <위플래쉬>다. <위플래쉬>는 해외보다 국내에서 더 많이 팔렸다. 영화 흥행과 블루레이 구매율에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 대표가 보기에 <위플래쉬>는 마니아층이 두터워서 성공할 수 있었다. 한정환 대표가 바라는 이상적인 시장 환경은 어느 한 업체가 시장을 주도하기보다 같은 영화로 여러 업체가 서로 개성이 다른 타이틀을 동시에 출시해서 경쟁하는 모습이다. “나이키 신발을 한 켤레 사더라도 한정판인지 아닌지 신경 쓰며 사는 젊은 고객층의 취향과 재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한정판을 구매하면서 재미를 느낀다.” 이 역시 블루레이 컬렉션 시장에도 적용 가능한 부분이니까 말이다.

한편 더 블루 콜렉션은 노바미디어나 플레인 아카이브처럼 자체 쇼핑몰을 갖고 있지 않다. 사실 콘텐츠게이트의 주요 사업은 K팝 DVD 제작과 유통이다. 블루레이와 비교해 시장 규모가 10배에서 20배 이상 큰 차이를 보인다. ‘K팝으로 돈 벌어 블루레이 만든다’는 농담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게다가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수입에 뛰어들었다. 콘텐츠게이트는 지난 한해 동안 <팔로우> <더 랍스터> <세컨 찬스> 등을 개봉시켰다. 그렇다고 한 대표가 더 블루 콜렉션에 소원할 것 같지는 않다. 콘텐츠게이트가 전체 프로듀싱, 판권 소싱, 판매를 맡고 패키지 디자인과 기획은 포레스트가, 오소링은 컨텐츠 랩 자박에서 도맡는 구조가 자리잡았고 <헤이트풀8> 같은 기대되는 타이틀을 공격적으로 섭외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새로운 것을 시도하자”는 더 블루 콜렉션 한정환 대표의 모토 아래 더욱더 독특한 블루레이가 출시되길 기대해본다.

국내와 해외 맞춤형 디자인

국내와 해외 블루레이 컬렉터는 선호하는 디자인이 조금 다르다. 수치화할 수는 없지만 해외에는 다양한 디자인 패턴에 관대한 반면, 국내 사용자들은 그보다는 통일된 디자인을 선호한다는 게 한정환 대표의 설명. 더 블루 콜렉션의 패키지 디자인은 디자인 회사 ‘포레스트’에서 전담하는데 <말할 수 없는 비밀>의 타이틀 패키지 디자인은 기존 컬렉션과는 전혀 다른 실험성을 강조했다. 그랬더니 국내 구매자들로부터 쓴소리를 들어야 했다고. 그럼에도 더 블루 콜렉션은 앞으로 디자인만큼은 고유의 색깔을 유지하고자 한다. 해외의 ‘몬도’ 컬렉션처럼 말이다. 최근 출시한 <서유쌍기> 시리즈와 개봉예정작인 <스포트라이트>, 그리고 <헤이트풀8>와 애니메이션 <패트레이버> 시리즈 등이 더 블루 콜렉션만의 패키지 디자인으로 탄생할 차기 라인업이다.

“노바만의 마블 영화 패키지 기대해 달라”

노바미디어 김형우 대표

극장에서 한편의 영화가 종영하면 이후 부가판권 시장으로 옮겨간다. TV나 스트리밍 서비스, 그리고 블루레이 등의 미디어 매체가 출시되는 수순을 거치는데 DVD 시장의 몰락을 거친 컬렉터들이 자연스레 차세대 매체인 블루레이 시장으로 옮겨갔다. 노바미디어는 이들 컬렉터들이 멋있는 패키지 디자인에 따라 구매 의사가 달라진다는 점에 주목했다. 이미 시중에 블루레이가 출시된 영화 중에 인기가 치솟고 있는 슈퍼히어로영화들이 판매량이 뛰어난 것을 보고 세계 시장에 내놔도 당당할 근사한 패키지 디자인을 앞세워 재출시하는 전략을 취했다.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 등의 타이틀은 해외 구매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일으켰다. 국내 출시는 계약 관계상 어려워서 해외 전용 레이블인 ‘노바 초이스’를 발매했더니 해외 전용이라 국내에서는 안 팔리는 게 아니라 구할 수 없기에 더욱 희귀한 제품이 되어버리는 ‘수집품 현상’을 겪으며 자리잡았다.

2000년 즈음부터 DVD 제작 관련 일을 시작한 김형우 대표는 당시 애니메이션 전문 DVD를 주로 만들던 노바미디어를 2004년경에 인수했다. 그리고 처음 만든 타이틀이 <카우보이 비밥>이었다. “5.1채널로 녹음한 한국어 더빙은 당시 사운드 비용만 수천만원이 들어갔다. 그 더빙은 노바미디어의 자산이다.” 고유한 자산이 되어야 할 콘텐츠의 중요성을 패키지 디자인과 접목한 노바미디어는 앞으로도 꾸준히 마블 영화들을 주로 출시할 계획이다. 대략 해외와 국내의 블루레이 판매 수익 규모는 8:2 정도. 최근 <인크레더블 헐크>의 경우, 국내에 한장 판매할 때마다 오히려 회사가 손해를 보고 있다. “그럼에도 세계 블루레이 시장을 놓고 봤을 때 분명한 희소성이 있다는 판단이 들어 출시를 감행했다. 국내 시장은 무시하고 해외 시장만 바라보며 사업하고 싶지도 않다. 얼마가 됐든 노바미디어를 믿고 구매해주는 국내 컬렉터들의 마음도 챙기겠다”는 게 김 대표의 솔직한 심경이다. 그런 의미에서 마블 코믹스 영화 타이틀은 노바미디어의 주요 수익원이다. 블루레이 제작이라는 게, 그리고 패키지 디자인이라는 게 매번 엄청난 제작비와 노력이 들어가는데 가끔 고객들의 지나친 컴플레인이 들어올 때는 그 역시 의욕을 잃는다. 그럼에도 뜻하지 않았던 <존 윅>이나 <드라이브> 등의 타이틀에 여전히 잘 만들었다는 칭찬이 따라오면 다 잊고 또 어떤 영화를 만들까 행복한 고민에 빠지기도 한다. 현재 노바미디어는 모두 3개의 레이블을 만들어 출시하는데 “스틸북 수요가 망가지면 컬렉션 시장이 무너진다. 이 시장이 끝나기 전까지는 스틸북을 계속 출시할 계획”이라고. 앞으로 노바미디어 독점판으로 <어벤져스> <캡틴 아메리카> <아이언맨> 시리즈,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등의 타이틀이 출시될 예정이라니 기대하지 않을 수 없다.

국내 구매자 공략부터

노바미디어의 디자인 컨셉은 뚜렷하다. 참신한 디자인이면서 월트 디즈니 본사의 통과를 얻어내야 하는 어마어마한 과제를 뚫고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이다. 김형우 대표의 아이디어는 지금껏 매번 그 어려운 관문을 통과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자신한다. 조만간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에이미>와 정지우 감독, 전도연 주연의 <해피엔드>가 출시될 예정이며 전도연이 직접 참여한 로컬 코멘터리도 삽입된다고. 홍콩영화 시리즈인 <포춘 스타> 시리즈도 원하는 소수의 팬들이 많아 계속 출시할 예정이다. 전체 패키지 디자인은 구매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렌티귤러 디자인을 비롯해 두 가지 버전 형태로 유지할 계획이다.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