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 흥행 역사가 바뀌고 있다. 지난 4일 미국에서 개봉한 <주토피아>가 개봉과 동시에 전미 박스오피스 및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오프닝 성적은 7,370만 달러로, 이는 <인사이드 아웃>과 <겨울왕국>의 기록을 뛰어넘은 디즈니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다. 영화평점 사이트인 로튼토마토(영화에 대한 평이 좋을 수로 신선한 토마토가 유지된다)에서 신선도 100%에서 인증 마크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135개의 리뷰에서 99%를 유지하고 있다. 참고로 <토이 스토리2>가 163개 리뷰에서 100%, <인사이드 아웃>이 299개 리뷰에서 98%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에서 대박난 <주토피아>가 왜 한국에서는 크게 흥행하지 못했을까. 2월17일 개봉한 <주토피아>는 3월7일 현재 약 189만명(영진위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상망 기준)의 관객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나쁘지 않은 성적이지만 미국의 엄청난 흥행성적과는 거리가 멀다.
1천만 관객을 동원한 <겨울왕국>에는 미치기 힘들어보이지만 반전의 기운이 느껴진다. 이른바 입소문이다.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를 내세운 <주토피아>는 개봉 당시 아동 애니메이션으로 홍보됐다. 실제로 아동 애니메이션이 맞지만, 영화를 보고 나온 엄마, 아빠가 더 감동을 받았다 게 <주토피아>의 흥행이 예사롭지 않은 지점이다. 개봉 4주차인 <주토피아>는 박스오피스 순위 4위 아래로 떨어지진 적이 없고 예매율도 2위를 기록 중이다. 어린이 관객은 이제 볼 만큼 봤고, 어른들이 극장을 얼마나 찾을지가 관건이다.
<주토피아>는 경찰관의 꿈을 가지고 있지만 당근 농사가 더 잘 어울린다며 놀림 받는 토끼 주디 홉스와 남을 속일 것 같다며 어린 시절부터 괴롭힘을 당한 여우 닉 와일드이 주인공이다. 편견 속에 살아가던 주디는 편견에 맞서 경찰대를 수석 졸업해 최초의 토끼 경찰관이 되지만, 닉은 편견을 깨는 것을 포기하고 사기꾼으로 살아간다.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둘이 의문의 연쇄 실종사건 수사를 함께 맡게 되면서 영화는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주토피아>는 귀여운 캐릭터들, 소소한 웃음, 교훈적인 내용이 적절하게 섞여 있는 ‘디즈니스러운’ 영화다. 의인화된 동물 캐릭터를 내세운 것도 디즈니다운 선택이다. 여기에 추가되는 게 하나 있다. 이건 어른들을 위해 준비한 일종의 반전이다. 차별이 약한 자에게 가해지는 것뿐만 아니라 강한 소수를 옭아매려는 약한 다수가 꾀하는 폭력으로도 발현될 수 있다는 이 반전이 <주토피아>의 흥행 신기록 행진을 가능하게 했다. 미국 내 차별 문제는 늘 이슈가 된다. 국내의 심상치 않은 입소문도 여기서 비롯됐다. 결국 <주토피아>는 아이들이 즐거워할 수 있지만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픽사를 인수한 이후 디즈니가 어른들을 염두에 둔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