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호의 트립 투 유럽]
[한창호의 트립 투 이탈리아] ‘영국인 환자’가 죽어 누워 있을 때
2016-03-08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토스카나의 시에나와 그 인근
<글래디에이터> 속 막시무스의 고향으로 설정된 발도르차 지역.

토스카나는 르네상스의 발원지다. 그 중심은 물론 피렌체다. 다른 도시들은 한때 피렌체와 패권을 다투다 그 세(勢)를 잃었거나, 또는 약화된 채 지금에 이른다. 토스카나의 대표적인 다른 도시들은 피사, 시에나, 루카, 그리고 아레초 등인데, 이곳은 지금도 피렌체에 강한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다. 특히 대학의 도시 피사와 예술의 도시 시에나의 경쟁의식이 대단하다. 중세 이후의 수많은 전투 때문인지, 간혹 이곳에선 피렌체에 적대감을 드러내는 주민들도 만날 수 있다. 피렌체에 밀리지 않겠다는 그런 경쟁의식이 이 도시들의 매력을 더욱 빛나게 했을지도 모른다.

‘검투사’의 기억

리들리 스콧 감독의 <글래디에이터>(2000)는 로마의 철학자이자 황제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때가 배경인 팩션(faction)이다. 사실과 허구가 섞여 있는 이 팩션은 상상의 인물인 막시무스(러셀 크로)의 기구한 운명에 초점을 맞춘다. 그는 현제(賢帝) 아우렐리우스의 총애를 받던 장군이었는데, 타락한 황제 코모두스(호아킨 피닉스)에 맞서다 살해 위기에 놓이고, 노예로 팔린 뒤, 다시 검투사가 되어 복수에 몰두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글래디에이터>는 개봉 당시 대단한 성공을 거뒀고, 그 여파로 영화계에 팩션 역사물 제작 붐을 일으켰다. 이를테면 이준익 감독의 <황산벌>(2003)도 이 계열에 속한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말년에 게르만족과의 잦은 전투로 결국 죽음에 이르는데, 영화는 바로 그 전장에서 시작한다. 피와 살이 튀고, 근육질 남성들의 칼과 창이 부딪히는 도입부의 전투 장면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곧 야만이고, 우리는 야수나 다름없는 존재임을 한눈에 알게 한다. 그런 황폐한 전쟁을 3년째 이끌고 있는 장군에게 철학자 황제는 고향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른다. 말하자면 일종의 대조법인데, 전장의 막사 밖은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거친 황야의 야만이라면, 고향의 집은 쉼과 평화가 보장된 순화된 자연인 셈이다. 전쟁의 상처는 고향에 대한 상상으로 잠시 위무를 받는다. 영화에 따르면 막시무스는 스페인의 트루히요(Trujillo) 출신이다. 그가 묘사하는 고향은 빛이 많고, 붉은 벽돌이 아름답고, 들판엔 곡식이 익어가고, 키 큰 포플러, 그리고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적의 목을 단숨에 치는 냉정한 장군도 가족이 남아 있는 고향을 말할 때는 만감이 교차하는지 지그시 눈을 감는다.

아마 그때 관객도 유럽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했을 것이다. 그런데 리들리 스콧은 장군의 고향을 스페인에서 찍지 않았다. 감독의 상상이 미친 곳은 이탈리아의 발도르차(Val d’Orcia) 지역이다. 발도르차는 토스카나의 시에나 주변부에 있는 계곡 지역의 이름이다. 오래된 작은 도시들과 야트막한 언덕, 그리고 포도밭의 절경 덕분에 토스카나의 관광용 사진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다. 막시무스가 살해 위기에 놓인 가족들을 구하기 위해 말을 타고 급히 달리는 곳이 바로 발도르차 지역이다. 푸른 하늘, 흰 구름, 녹색의 언덕, 황금빛 들판, 포도밭, 포플러 등 이탈리아의 자연 풍경을 과시하는 사진들에서 숱하게 봐왔던 이미지들이 속된 말로 널려 있는 곳이다. 특히 인구 2천명 정도 되는 작은 도시 피엔차(Pienza) 주변이 아름답기로는 가장 유명하다. 영화에선 막시무스의 고향이 짧게 등장하지만, 그가 위기에 처할 때, 또는 가족을 그리워할 때 등 절실한 순간에 기억되는 까닭에 그 여진은 오래 남는다.

말하자면 토스카나는, 특히 시에나 주변은 고향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보편적인 풍경을 갖고 있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고향, 고향 풍경은 모성의 은유일 터, 따라서 사람들이 토스카나의 풍경을 볼 때의 편안한 마음은 마치 어머니의 품속에 있을 때의 안락함과 비슷하다. 언덕의 부드러운 품속에 누워 아늑한 평화의 영원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 같은 것이다.

사하라의 사막과 토스카나의 전원

앤서니 밍겔라 감독은 이탈리아계 영국인이다. 이탈리아 이주민인 부모는 아이스크림 집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웠는데, 이 사업이 번창한 까닭에 지역에선 제법 유명한 가족으로 통했다. 사뮈엘 베케트를 좋아하던 문학도 밍겔라는 박사과정에 있을 때, <BBC>에 들어가 라디오 드라마를 쓰며 작가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특히 문학작품의 각색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밍겔라를 세계적인 감독으로 알린 <잉글리쉬 페이션트>(1996)도 스리랑카 출신 캐나다 작가인 마이클 온다치의 동명 소설(부커상 수상작)을 각색한 것이다.

2차대전이 배경인 <잉글리쉬 페이션트>의 이야기는 크게 두 갈래다. 먼저 아프리카 사하라사막 주변에서의 사랑이 있다. 헝가리 출신 귀족인 알마시 백작(레이프 파인즈)은 연합군을 위한 지도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데, 그곳에서 만난 영국인 기혼녀 캐서린(크리스틴 스콧 토머스)과 사랑에 빠진다. 캐서린의 남편도 작전에 참여 중인 관계로 백작과 캐서린의 사랑은 범죄적이고 그래서 더욱 간절하다. 또 다른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전개된다. 백작은 심한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 중인데, 이탈리아 전선에서 더이상 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진단을 받는다. 이동 중에 죽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는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환자 백작을 위해 캐나다 출신의 간호사(줄리엣 비노쉬)가 위험을 무릅쓰고 현지에 남기로 작정한다. 자신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는 백작에게 임시로 붙인 명칭이 ‘영국인 환자’이다. 두 사람이 함께 머문 곳이 바로 시에나 인근의 발도르차 지역이다.

<잉글리쉬 페이션트>는 공간의 일반적인 의미를 역이용하고 있다. 곧 죽은 땅인 사막에서 금지된 사랑이 샘솟고, 생명처럼 푸른 발도르차의 전원에서 죽음이 다가온다. 백작과 캐서린은 주로 사막에서 만나고 사막에서 사랑을 나눈다. 생명을 잉태하지 못하는 공간인 사막에서의 사랑인 까닭에 이들의 행위는 절실한 만큼 동시에 파국도 예상된다. 공간의 의미에서 보자면 두 사람은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사랑에 집착하고 있는 셈이다.

사막에서 젊고 아름답던 백작은 전신에 화상을 입어 졸지에 겉모습이 미라처럼 변한다. 발도르차의 푸른 언덕에 나타났을 때 백작은 아쉽게도 ‘죽음과 소녀’ 테마의 종교화에 자주 등장하는 늙은이처럼 흉측해져버렸다. 사막에서의 청춘이 전원에선 갑자기 노인이 돼버린 셈이다. 간호사는 환자에 대한 연민에 그의 곁에 남아 지상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보낸다. 말하자면 미라 같은 환자와 젊은 간호사가 함께 등장할 때면, 이들의 관계가 ‘죽음과 소녀’의 변주처럼 보이는 것이다. 미라는 죽음의 목전에 있고, 간호사는 그 죽음에 동행하고 있어서다. 이들이 머무는 곳은 발도르차 지역의 ‘산타 안나 수도원’(Monastero di Sant’ Anna in Camprena)이다. 곧 이탈리아 시퀀스는 수도원의 폐허에서 진행되는 길고 긴 죽음의 미사에 다름 아니다.

세상은 전쟁의 포화로 파괴되고, 수도원도 반 이상이 무너져 있지만, 주변 자연의 아름다움까지 지우지는 못했다. 속된 말로 ‘그림 같은 풍경’이 폐허 주위에 펼쳐져 있다. 줄리엣 비노쉬가 수도원 주변의 초원을 배경으로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뛰어다닐 때면 화면은 어느새 생명이 넘치는 공간으로 변한다. 그러기에 점점 검은 미라로 변해가는 백작의 죽음이 더욱 안타까운 것이다. 낙원 같은 토스카나의 자연은 곧 죽음에 이를 생명에게 지상의 아름다움을 마지막으로 선물하는 것 같다. 백작은 ‘고향’의 전형적인 이미지가 넘치는 토스카나의 언덕에 누워 평화로운 죽음을 맞는다. 설사 그가 자신의 고향에서 매장되지는 못하더라도, 이곳 토스카나에서의 죽음으로 그 아쉬움을 약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제임스 본드, 중세도시 시에나에 가다

인구 5만명 정도 되는 시에나는 중세 때부터 토스카나의 중심 도시로 성장했다. 중세도시답게 외부의 침입에 대비해 높은 산 위에 교회와 건물, 그리고 성벽들이 지워져 있는 전형적인 수비형 도시다. 시에나는 특히 예술과 문화의 도시로 유명하다. 르네상스 초기의 화가들, 곧 두치오, 시모네 마르티니 등이 14세기에 피렌체의 화단과 경쟁하는 ‘시에나파’를 형성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현대소설의 대표작가 이탈로 칼비노가 작품 활동을 위해 자주 머문 도시여서인지 이 작가에 대한 시민들의 사랑도 특별하다. 중세의 문화를 잘 보존하고 있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두오모, 그리고 여름이면 열리는 중세 스타일의 승마대회 ‘팔리오’(Palio) 등은 시에나가 여전히 먼 과거에 존재하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한다.

시에나에서 현대와 중세가 만나는 ‘신비한’ 경험을 제공하는 영화적 사례로는 마크 포스터 감독의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를 꼽고 싶다. ‘007 시리즈’의 특성답게 영화는 시작하자마자 제임스 본드와 악당들 사이의 자동차 추격전부터 보여준다. 호반도로에서의 추격전인데, 이곳은 이탈리아 북부의 ‘가르다 호수’(Lago di Garda) 주변이다.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의 도입부에서 자연 풍경의 아름다움에 넋을 잃고 “필설로 이루 다 묘사할 수 없다” 또는 “더이상 말로 형언할 수 없다” 같은 대문호답지 않은 상투적인 문장들로 감탄을 대신 표현한 곳이다. 영화는 그런 풍경을 뒤로한 채, 제임스 본드(대니얼 크레이그)의 숨 막히는 추격전과 총격전에 집중하고 있다. 제임스 본드의 트레이드마크인 스포츠카 애스턴 마틴과 악당들이 타고 있는 알파 로메오는 마치 하늘의 전투기처럼 속도를 내며 스크린을 찢을 듯 질주한다. 관객의 맥박마저 빨라져 흥분이 극도에 달할 때 제임스 본드는 악당들을 전부 따돌리고 유유히 중세의 도시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영화는 한번 호흡을 가다듬는다. 이곳이 시에나다.

애스턴 마틴과는 극적으로 대조되는 오래된 돌집의 중세도시 시에나는 갑자기 시간을 뒤로 돌려놓은 곳 같다. 400년, 500년 된 건물은 예사이고, 로마네스크 양식의 두오모는 대략 800년 된 13세기 건물이다. 이런 석재건물들이 도시에 빽빽이 들어서 있다. 길은 꼬불꼬불하고, 모두 돌로 된 길이라 도시 중심의 거리엔 흙이 없고, 따라서 가로수도 없다. 도시 전체가 대단히 딱딱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제임스 본드의 팬이라면 짐작하겠지만, 시에나에서의 액션은 그 도시를 닮아 있다. 제임스 본드는 거의 맨손으로, 몸을 부닥치며 악당과 결투를 벌인다. 액션이 중세 때로 되돌아간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항상 최첨단의 멋을 과시하던 제임스 본드도 여기 시에나에선 공간의 중세적 분위기에 길들여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10여년 만에 귀국한 베르톨루치가 찾아간 곳

시에나 인근은 포도밭이 많기로 유명하다. 세계적인 명품 포도주의 산지인 몬탈치노(Montalcino), 몬테풀치아노(Montepulciano) 등이 여기에 있다. 특히 몬탈치노에서 생산되는 브루넬로(Brunello)는 토스카나의 대표적인 명품 포도주다. 이렇듯 시에나 인근엔 ‘술 익는 마을’이 사방에 널려 있다. 이곳처럼 아름다운 자연의 풍경, 곱고 부드러운 붉은 흙, 그리고 향긋한 포도주의 마을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은 느리고, 몸은 좀 흐트러지고, 명상은 깊어지는 매력이 있어서다. 그런 상상을 모티브로 삼은 영화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스틸링 뷰티>(1996)가 있다. 베르톨루치가 <마지막 황제>(1987)를 찍기 위해 미국 생활을 시작한 뒤, 10여년 만에 이탈리아로 돌아와 처음 만든 영화다. 베르톨루치의 고향은 북부의 파르마이다. 첫 출세작 <혁명전야>(1964)의 배경이 된 도시다. 그런데 오랜만에 조국에 돌아온 그가 선택한 영화의 배경은 시에나와 그 인근의 전원이었다. 아마 베르톨루치에게도 이탈리아의 전형적인 고향의 이미지는 토스카나, 특히 시에나 인근의 아름다운 자연이었을 것 같다. 포도밭 주변의 야트막한 언덕 위에 있는 조각가(도널 매칸)의 전원주택이 이 영화의 주 배경이다. 시에나 배경의 영화답게 여기서의 주요 인물들은 전부 예술가이거나 예술애호가들이다.

베르톨루치의 많은 영화들이 그렇듯 <스틸링 뷰티>도 성장영화다. 미국인 10대 소녀 루시(리브 타일러)는 최근 모친이 자살하는 사고를 겪었다. 어머니의 유서에 따라 친부를 찾아 이탈리아의 시에나로 오는 게 영화의 시작이다. 죽은 모친도 과거 조각가의 집에 머문 적이 있다. 토스카나 특유의 커다란 돌집은 예술가들의 공동체 같다. 주인인 조각가 부부를 비롯해 친구 동료들인 시인, 드라마 작가, 수집가 등이 함께 살고 있다. 루시의 죽은 모친도 시인이었다. 루시는 5년 전 이곳에서 이탈리아 소년과 첫 키스를 경험했는데, 그를 다시 만난다는 설렘도 갖고 있다. 물론 가장 궁금한 건 아버지가 누군가이다. 루시는 방문객 가운데 중병에 걸려 있는 작가(제레미 아이언스)와 먼저 말동무가 된다. 죽음을 눈앞에 둔 작가는 관용의 표상처럼 넓은 이해심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빨리 처녀성을 잃었으면 좋겠다는 비밀도 그에게 털어놓는다. 낮에는 조각가의 반누드 모델도 한다. 역시 그도 친부일 수 있어 더욱 상대를 알기 위해서이다. 나머지 시간은 집 주변의 포도밭 옆길을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나른한 한가함을 즐긴다. 루시가 느린 시간을 천천히 산책할 때, 이미 그녀도 예술가의 초입에는 들어선 듯 보인다.

베르톨루치는 나태함에 가까운 느린 삶의 태도를 찬양하는 것 같다. 영화에는 특별한 사건이 있기보다는 자연을 천천히 호흡하는 여유가 흐른다. 이런 삶의 태도를 갖게 되는 것은 토스카나의 여유 있는 자연 덕분이란 듯 말이다. <스틸링 뷰티>는 어느 순간 스토리의 중요성은 뒷전으로 미루고, 토스카나의 자연 예찬에 집중한다. 어느새 관객도 루시의 부친이 누군지를 궁금해하는 것은 하찮고 필요 없는 것으로 느낀다. 모든 사실을 안아주고 묻어주는 부드러운 붉은 땅이 우리를 잠시 세속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까닭이다.

푸치니를 해석하는 독특한 방법

토스카나의 도시들 가운데 예술적 미덕을 갖지 않는 곳이 드물지만, 음악과 관련하여 비교적 덜 알려져 있는 곳이 루카(Lucca)이다. 피렌체의 북서 방향에 있다. 르네상스의 성벽이 도시의 중심에 둘러서 있는 아름다운 고도(古都)다. 여긴 주세페 베르디와 더불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양대산맥인 자코모 푸치니가 태어난 곳이다. 정확히 말하면 루카에서 서쪽으로 약 20km 떨어진 ‘토레 델 라고’(Torre del Lago, 호수의 탑이란 의미)에서 태어났다. 서쪽으론 바다를, 동쪽으론 호수를 끼고 있는 독특한 지형의 도시다. 음악가 부친을 따라 루카에서 주로 성장한 푸치니는 오페라 작곡가로 데뷔한 뒤, 30대 초반에 작업에 전념하기 위해 주거지를 토레 델 라고로 옮긴다. 바로 여기서 푸치니의 걸작들, 곧 <라보엠>(1896), <토스카>(1900), <나비부인>(1904) 등이 쏟아져나온다.

파올로 벤베누티 감독의 <푸치니의 여인>(2008)은 푸치니의 말년의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1910)가 작곡될 때를 배경으로 한 시대극이다. 벤베누티 감독의 영화가 한국의 일반 극장에서 상영될지는 정말 예상하지 못했다. 그의 낯선 리얼리즘 형식 때문이다. 이 영화는 뒤늦게 2011년 연말에 한국에서 개봉됐다. 벤베누티는 역사물을 주로 만드는데, 그 형식이 마치 자연도감 같다. 해석을 하기보다는 팩트들을 제시하여 관객이 판단하게 이끈다. 테크닉으로 현란한 역동성을 드러내는 일도 없고, 마치 엄격한 과학자가 사진을 찍듯 화면을 잡는다. 그래서 그림들이 정확하고 간혹 차갑다. 이런 영화적 태도는 그의 스승인 로베르토 로셀리니로부터 물려받았다. 벤베누티는 로셀리니의 말년의 역사물인 <코지모 데 메디치의 시절>(1972)에서 조감독을 하며 영화에 본격 입문했다. 벤베누티는 또 로셀리니 미학의 계승자인 장 마리 스트라우브과 다니엘 위예의 역사물 <모세와 아론>(1975)에서 역시 조감독을 하며 연출 경험을 쌓았다. 선배 감독들은 모두 역사를 극화하는 것을 아주 싫어했다. 의도적으로 사실을 밋밋하게 제시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푸치니의 여인>이란 제목은 자칫 신파극을 떠올리게 하는데, 영화는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역사물이다. 원제목은 ‘푸치니와 소녀’(Puccini e la fanciulla)이고, 벤베누티의 역사물이 종종 그렇듯, 이 영화도 푸치니가 아니라 소녀의 입장에서 주로 서술된다. 그는 늘 주체들보다는 객체의 입장에서 역사를 읽는다. 푸치니의 말년에 하녀가 자살하는 사고가 있었다. 그 사고를 바탕으로 이 영화의 드라마가 짜여 있다. 배경은 절경이 끝없이 이어지는 토레 델 라고이다. 호수와 갈대밭, 저택과 서민들의 집, 20세기 초의 의상들, 그리고 푸치니가 즐겨 타던 초창기의 자동차들까지 모두 지리부도에서 보는 듯한 화면들이 이어진다. 국내외 영화제에서 특히 촬영과 의상 부분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푸치니의 오페라 <서부의 아가씨>의 주요 멜로디가 피아노로 끝없이 연주되는 것은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이다.

지적인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벤베누티 감독은 대학도시인 피사 출신이다. 갈릴레오 갈릴레이로 대표되는 도시다. 피사 출신의 유명 감독이 타비아니 형제다. 다음엔 피사와 그 인근을 여행하겠다. 타비아니 형제의 작품들은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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