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밤거리, 은퇴 전 마지막 수업을 마친 철학과 노교수 월터(샘 워터스턴)가 괴한의 칼에 맞아 쓰러진다. 그는 살아 있음을 확인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해를 시도하는 철학과 학생 소피(크리스틴 스튜어트)를 상담해주고 막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쓰러진 월터를 처음 발견한 건 같은 건물에 사는 샘(코리 스톨)이다. 샘에겐 우울증에 시달리는 아내 몰래 사랑을 나누는 연인이 있다. 월터에게 도움을 받았던 마약중독자 청년 조(K. 토드 프리먼) 역시 월터를 돕기 위해 나서지만 역부족일 뿐이다.
<월터 교수의 마지막 강의>는 큰 줄기의 서사 없이 여러 개의 흩어진 이야기들이 느슨하게 교차되며 진행된다. 아내와 평온한 노후를 계획하는 노교수 월터와 큰 병에 걸려 수술을 해야 하는 아내 때문에 패닉에 빠진 아담(팀 블레이크 넬슨), 남편의 외도와 사춘기에 접어든 아이들의 반항에 점점 더 우울해져만 가는 사라(그레첸 몰), 아무도 돌봐줄 사람 없이 외롭게 마약중독에서 허덕이는 조, 그리고 고통 없인 삶을 느낄 수 없는 소피의 이야기가 어떠한 누빔점도 없이 이리저리 오간다. 영화의 마지막에 이야기가 만나는 접점이 등장하긴 하지만 앞에서 벌여놓은 이야기가 너무 많고 산만해 잘 엮이지 않는다. 하나만 하기에도 녹록지 않은 섬세한 이야기들을 대여섯개나 하려 드니 모든 에피소드가 겉핥기식으로 지나가버린다. 게다가 ‘접점’ 자체도 영화 전체를 묶기엔 헐겁고 약하다. 이러한 어수선한 전개를 감수하면서 영화는 ‘서로를 잘 알지 못한 채 고립돼 살아가는 대도시 속 현대인들의 외로움과 슬픔’이 ‘너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문제라고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식상해져버린 이 ‘명제’가 얼마나 관객의 마음을 움직일지는 잘 모르겠다. 월터의 마지막 강의 장면도 장황한 가르침으로 일관해 어리둥절하다. 떼어놓고 보기에도 아쉬운 배우들이 출연해 보여주다 만 듯한 연기를 선보이는 것도 슬픈 일이다. ‘감각이 없음’을 뜻하는 영화의 원제 ‘Anesthesia’도 그저 공허하게만 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