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2]
내 마음속의 영원한 레전드
2016-03-16
진행 : 주성철
정리 : 김수빈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서울액션스쿨 정두홍 무술감독과 성가반 출신 박현진 무술감독이 성룡에 대해 이야기하다
박현진, 정두홍 무술감독(왼쪽부터).

“성룡은 영원한 레전드다!” 자타가 공인하는 한국 최고의 무술감독이자 서울액션스쿨을 이끌고 있는 정두홍 무술감독과 성룡이 이끄는 무술팀 ‘성가반’ 출신의 박현진 무술감독이 만나 성룡에 대해 입을 모았다. 최근 출간된 성룡의 자서전 <성룡: 철들기도 전에 늙었노라>를 보면서 정두홍은 스턴트맨 막내 시절 비디오로 성룡 영화를 보며 밤새 연구하고 이후 그에 자극받아 보라매공원에 서울액션스쿨을 처음 세운 시절을 떠올렸고, 박현진 또한 2001년 <러시아워2>를 시작으로 꿈에 그리던 성가반의 일원이 되어 <턱시도> <뉴 폴리스 스토리> <포비든 킹덤: 전설의 마스터를 찾아서> 등 성룡과 10년간 함께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성룡을 보며 영화판에서 죽기 살기로 버텨왔던 그들의 대화에 초대한다.

<씨네 21>_먼저 두분 사이에 어떤 인연이 있는지 궁금하다. 서울액션스쿨(이하 액션스쿨)의 정두홍 무술감독이야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 같고, 박현진 무술감독은 성가반 5기로 10년 정도 함께하다가 귀국해서는 ‘무토’ 소속으로 여러 영화를 비롯해 <돌아온 일지매>(2008), <보스를 지켜라>(2011) 등 드라마 무술감독으로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박현진_한국에서 스턴트맨을 꿈꾸는 사람들 사이에서 액션스쿨의 정두홍 무술감독님은 우상이나 다름없다. 내가 스턴트맨으로 막 활동하려던 즈음 정 감독님이 무술을 맡았던 <테러리스트>(1995)는 대단히 화제였다. 당시 정 감독님이 말총머리를 길게 기르고 할리 데이비슨을 타고 다니셨는데, 정말 멋져 보였다. (웃음) 그렇게 나를 처음 보시고는 “넌 누구니?” 하고 물어보셨던 기억도 생생하다. 내 또래 스턴트맨들 모두에게 선망의 대상이었기에 수시로 액션스쿨을 들락거렸던 것 같다. 가장 중요한 건 스턴트맨도 당당한 영화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하셨다.

<씨네 21>_액션스쿨이 무술을 맡은 <킬리만자로>(감독 오승욱, 2000) 출연자 크레딧에 박현진이라는 이름이 있더라. 액션스쿨 소속은 아닌 건가.

박현진_<킬리만자로>에서 박신양씨가 해식과 해철, 쌍둥이 1인2역을 했는데 그때 맞대사를 쳐주는 박신양씨의 대역이자 상대역으로 출연했다. 그때 스턴트맨 생활이 너무 힘들고 잘 풀리지 않아서 액션을 접고 연기자로 전업해볼까 하는 생각에, 당시 제작사인 우노필름 오디션을 봤던 거였다. 긴 대사도 줄줄 외고 열심히 준비했었다. 물론 거기에는 스턴트맨이자 배우이기도 했던 성룡이라는 대스타의 영향도 있었을 것이다. 액션스쿨 소속은 아니었지만 최근 <도둑들> <암살> 등을 했던 유상섭 무술감독님 등 친한 형들이 많아서 틈만 나면 따라다녔다. 성룡 형님 작품을 끝내고 한국에 들어와 있으면 거의 액션스쿨에서 운동을 했다. 그래서 <짝패>(2006)에 아주 잠깐 출연하기도 했다.

<미라클>

정두홍_액션스쿨은 오픈되어 있다. 현진처럼 재능 있는 친구들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하는 건 환영이었다. 그가 성룡 무술팀에서 배우고 익힌 경험이나 기술들을 많이 얘기해줘서 오히려 고마웠다. 게다가 나는 열심히 하는 친구들을 무조건 예뻐한다. 타고난 실력이 좋거나 죽기 살기로 열심히 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후자쪽에 끌린다. 그런 면에서 현진은 진짜 열심히 했다. 나도 한창 배우고 익힐 때는 거의 하루에 4시간 정도만 자면서 훈련했다. 며칠 전 허영만 작가님 사무실에 초대받아 간 적 있는데 ‘아무리 천재라도 죽도록 노력하는 자에겐 안 된다’는 글귀가 있더라. 그게 내 삶의 신조나 다름없다. 스턴트맨은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것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저걸 할 수 있을까’ , ‘나는 왜 안 될까’ 하는 콤플렉스를 평생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죽어라고 훈련하며 그를 극복했던 것 같다. 자서전을 읽어보니 마냥 타고난 천재라고만 생각했던 성룡도 그런 콤플렉스를 고백하더라. 그 역시도 죽도록 노력하는 인간이었다. 전에 현진을 만났을 때 그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다. 그랬더니 성룡은 촬영이 끝나고도 그 피곤한 몸을 이끌고 따로 웨이트 트레이닝을 더 한다고 하더라. 그 뒤로 나도 촬영이 끝난 다음 발차기 몇번, 앉았다 일어났다 몇번이라도 더 하고 집에 갔다. (웃음) 아마도 성룡은 전세계 영화인들에게 가장 많은 자극을 준 사람일 것이다.

박현진_성룡 형님은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나 항상 웨이트나 러닝을 한다. 시가를 즐겨 피우시는 데도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그리고 몸을 푸는 기본적인 운동은 복싱이다. 그의 영화를 많이 본 사람들은 현대물 액션 대결의 기본 동작이 복싱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가반에 호주 복싱 대표 출신도 한명 있었는데, 20대인 그도 50대의 성룡 형님 체력을 받쳐주지 못할 정도였다. 촬영차 미국에서 머무르던 때, 마땅한 장소가 없으면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호텔 복도에서도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운동을 했다. 정말 끊임없이 움직였다.

<씨네 21>_정두홍 무술감독도 성룡을 만나본 적 있을 것 같은데.

정두홍_딱 두번 있다. 최초는 성룡이 <엑시덴탈 스파이>(2001)를 준비할 때 만난 적 있다. 한국 로케이션을 계획하고 있어서 액션스쿨과의 협업차 만났다. 그런데 액션스쿨 스턴트맨 몸값이 비싸다고 해서 비용 문제 등으로 결렬됐다. 해외 스튜디오와의 작업이라고 해서 웃돈을 부른 것도 아니었고 원래 우리가 받던 대로 계약에 임했다. 나로서는 꿈에 그리던 성룡과의 작업이었지만 정당한 몸값을 받지 못하면서 함께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됐다. 대한민국 액션스쿨의 자존심이 있지 않나. 그런 이유로 함께 하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전이나 후나 성룡이 내 마음속의 레전드라는 점은 변함없다. 특히 이소룡과 성룡을 모두 좋아하는데, 전혀 스타일이 다르지만 대결에 임하며 상대를 훑어보는 그들의 눈빛을 보면서 많이 배웠다.

<성룡의 빅타임>

<씨네 21>_성룡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취권>(1978) 등 사극 무술영화로 시작하여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 같은 현대물, 그리고 <러시아워> 시리즈 같은 할리우드에서의 작업까지 매 순간 스타일을 바꿔가며 긴 시간 최고로 군림해왔다. 두 사람은 언제 처음 성룡 영화를 접했나.

정두홍_내가 처음 본 홍콩영화는 영등포의 한 극장에서 본 홍금보의 <귀타귀>(1980)였다. 너무 재밌게 봤다. 그의 또 다른 영화 <군룡희봉>(1989)도 최고였다. 남들은 앞서 <취권>을 통해 성룡에 빠져들었는데, 나는 주로 장동휘, 박노식, 백일섭, 황해 등이 나오는 남자 냄새 물씬 풍기는 한국 액션영화들을 봐서 좀 늦은 편이었다. <취권>도 나중에 비디오로 봤다. 그렇게 홍금보를 먼저 알고 성룡을 알게 됐다. 일단 그때까지 보던 한국 액션영화와 느낌이 완전히 달랐다. 보다 정교하고 아기자기했고 스턴트의 수준은 놀라웠다. 시간이 흘러 스턴트맨 초창기 시절, 무조건 몸으로 훈련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고 비디오로 성룡 영화를 비롯한 홍콩영화를 연구하면서 시간을 보낸 적도 있다.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는 말할 것도 없고 <용형호제>(1986)와 <미라클>(1989)도 놀라웠다. 거의 한달 정도 홍콩영화만 봤는데, 네다섯편을 보면 하루가 다 지났다. 그러던 중 함께 체육관에서 운동하던 선배들과 연결이 되어 1990년에 방영됐던 <김형사 강형사>라는 MBC 드라마 현장에 가게 됐고, 나중에 드라마 <모래시계> 등의 무술을 맡았던 대선배 유창국 무술감독도 만나게 됐다. 그를 통해 남기남, 심형래 감독의 비디오용 영화를 거쳐 내 인생의 전환점이라 할 수 있는 <장군의 아들>(1990)까지 이를 수 있었다. 홍콩영화를 보면서 그와 다른, 보다 사실적인 액션을 추구하고픈 생각이 생겼으니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박현진_우리 세대는 홍콩영화에 열광하던 세대라 어려서부터 자연스레 홍콩영화에 빠져들었다. 그래서 성룡과 함께 일한다는 것 자체가 꿈이었다. 주로 방송국 드라마에서 스턴트맨으로 일하던 시절, 한 선배의 도움으로 홍콩으로 건너가 <젠 엑스 캅2: 젠 와이 캅>(2000) 오디션을 보게 됐는데, 그 영화의 제작자가 바로 성룡이었다. 오디션을 통과해서는 진관희의 대역 등으로 한달 정도 열심히 촬영했다. 언어 소통도 능숙하지 못했고 와이어 액션도 잘하지 못했는데, 하여간 열심히 했다. 성룡 형님은 한국말도 꽤 하시니까 나에게 키가 몇이냐, 기타 등등 물어보고는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나랑 미국에 갈래?” 물어보시더라. (웃음) 그래서 <러시아워2>에 출연하게 됐다. 그때 정 감독님께서 <무사>(2001)를 준비하시며 똑같이 “나랑 중국에 갈래?” 하셨을 때인데, 영어도 잘 못하는 놈이 성룡을 따라 미국에 가는 게 맞는 건지 엄청나게 고민했던 기억이 난다. 정감독님께는 죄송했지만, 그래도 한번 도전해보자는 생각에 미국으로 갔다.

정두홍_그럴 때 고민을 왜 해, 무조건 성룡하고 하는 거지. (웃음)

<씨네 21>_성가반의 일원으로서 옆에서 지켜본 바, 성룡은 어떤 사람인가.

박현진_일단 내 생명의 은인이다. (웃음) <러시아워2>에서 성가반 4기인 앤디와 내가 빠져죽을 뻔했는데, 성룡 형님이 구해주셨다. 영화 속 장쯔이의 부하 조직원 중 하나로 나와서, 배의 후미에서 성룡과 싸우는 장면을 찍다가 그만 스크루 모터로 그대로 빨려들어갈 뻔했는데, 힘겹게 겨우 손으로 잡아 구해주셨다. 그리고 고백하자면 자서전에 있는 대부분의 얘기는 술자리에서 들은 내용이다. (웃음) <프로젝트 A>(1983) 촬영하며 며칠 동안 벽시계 바늘에 매달려 있던 얘기, <홍번구>(1995)에서 직접 수륙양용차에 뛰어내렸던 얘기 등 정말 많이 들었다. 촬영이 끝나고 기분 좋게 취하시면, 다음날 아침 일찍 촬영이 있어도 빨리 안 보내준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다른 얘기도 해달라고 졸랐는데, 나중에는 하도 반복되니까. (웃음)

정두홍_듣고 보니 성가반의 뒤풀이 광경도 궁금하다. (웃음)

박현진_술자리에 성룡의 사형인 홍금보가 올 때도 있었는데, 두 사람이 가끔씩 재주넘기 내기를했다. 어렸을 때 경극학원에서 배운 동작일 것이다. 그러면 스탭들이 반으로 갈려 누가 이길 것이라며 한쪽에 건다. 두 사람 모두 지금도 백핸드 텀블링을 하는데 아무래도 성룡 형님이 더 잘 도니까 거의 늘 이기셨다. 그리고 각별히 동생인 원표 형님을 챙기셨는데 <상하이 나이츠>(2003)에서는 거의 무술감독으로 대우해주셨다. 워낙 동작이 재빠르고 묘기가 뛰어난 분이라 스탭들 모두 장기인 백핸드 텀블링을 보여달라고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절대 안 하다가도 성룡 형님이 “한번 해봐!” 그러면 거의 만취한 상태에서도 동그란 테이블에서 무려 10번이나 제자리에서 돌았다.

<러시아워2>

<씨네 21>_성룡과 함께 작업한 영화 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작품을 하나 꼽는다면.

박현진_단연 <뉴 폴리스 스토리>(2004)다. 1인5역을 했기에 출연했던 영화 중 분량이 가장 많았다. 악당으로 성룡과 일대일 대결을 벌이기도 해서 꿈만 같았다. 거의 석달 동안 싸운 것 같다. 그만큼 야단도 많이 맞았다. 성룡 형님은 동작의 합을 까먹는 걸 정말 싫어하시는데, 한번은 나 때문에 폭발해서 현장을 떠나신 적도 있다. 가끔 그러면 한 시간 정도 후에 돌아오신다. (웃음) 우리끼리 완벽하게 준비할 수 있게끔 배려해주시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때 주성치의 <쿵푸허슬>(2004)이 같이 개봉해서, <뉴 폴리스 스토리>가 홍콩 박스오피스에서는 2주 연속 1위를 차지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극장가에서는 거의 참패했기에 나로서는 아쉬움이 너무 컸다. 그래도 금마장 시상식에서 무술감독상(이충지), 남우조연상(오언조) 등 4개 부문을 수상해서 너무 기뻤다. 내가 깊이 관여했던 무술 부문으로 우리 성가반이 최고상을 수상한 것이니까.

<씨네 21>_성가반 외에도 홍금보의 홍가반, 원화평의 원가반 등 홍콩 무술팀의 존재는 한국영화계에도 많은 영향을 미친 것 같다. 액션스쿨의 시작 또한 그런 것 아니었을까.

정두홍_분명히 그런 영향이 있을 것이다. 무술하는 사람들은 함께 합을 짜야 할 동료들과의 지속적인 만남과 교류, 그리고 그를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런데 홍콩영화계의 경우에는 오히려 그런 액션스쿨 같은 공간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1년 내내 쉬지 않고 액션영화를 찍기 때문에 영화 촬영장 자체가 훈련 무대가 되어서 그럴 수도 있겠지만, 한국의 상황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그런 공간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보라매공원에 처음 액션스쿨을 열었다. 류승완 감독과 전에 일본 배우 게인 고스기를 주연으로 단편 <타임리스>(2009)를 찍은 적 있는데, 그때 액션스쿨을 방문한 홍콩과 일본 프로듀서들이 깜짝 놀라더라. 홍콩에도 없는 이런 액션스쿨이 한국에 있다면서. 정말 뿌듯했다. 한 프로듀서는 한국 액션 영화의 수준을 그리 높게 보지 않다가 <아라한 장풍대작전>(2004)을 보면서 마음이 바뀌었다고도 했다.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2002)에 출연할 때 홍콩 무술팀이 무려 세번이나 바뀌면서 작업했는데, 현장에서 홍콩 무술팀은 어떻게 작업하는지 열심히 배워보려고 곁눈질하던 게 엊그제였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웃음)

박현진_맞다. 따로 훈련 공간 같은 건 없다. 성가반의 경우 해외 로케이션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어느 지역에 머무르게 되면 아예 묵고 있는 호텔의 헬스장이나 그곳의 체육관 같은 곳을 통째로 빌린다. 그때가 그립다. (웃음) 한국에서 성공해야겠다는 생각에 <스파이 넥스트 도어>(2010) 이후 성룡 형님의 부름에 응하지 않은지 꽤 됐지만, 지금도 성가반 동료들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 한번 성가반은 영원한 성가반이다. 나 없이 성룡 형님을 잘 모시고 있는지 수시로 체크하고 있다. (웃음) 그런데 안타깝게도 성가반 3기 중 한춘 선배가 최근에 암으로 별세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촬영 도중 한 바퀴 반을 돌아 바닥에 떨어지면서 실제로 한쪽 청각을 잃으셨던 분이다. 그리고 <러시아워2> <턱시도>를 비롯한 성가반 참여 작품은 물론이고 <닌자 어쌔신>(2009) 등 많은 작품을 나와 함께 했던 4기 브래드 제임스 앨런은 <킥애스>(2010), <퍼시픽 림>(2013) 등의 무술감독으로 승승장구하고 있다. <성룡의 빅타임>(1999)에서 성룡과 복싱 대결을 펼치던 체구가 작은 백인이 바로 그다. 최근에는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4) 무술감독을 맡기도 했다.

<뉴 폴리스 스토리>

<씨네 21>_같은 길을 걷고 있는 영화인으로서, 성룡이라는 인물의 가장 존경스러운 부분은 무엇인가.

박현진_성가반에 뽑힌 것만 해도 꿈같은 일이고, 그와 함께한 나의 20대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시간이었다. 옆에서 지켜본 그의 대단한 점은 대스타이면서도 편견이 없고 겸손하다는 점이다. 또 아무런 차별 없이 성가반 한명 한명을 소중하게 대해주셨다. 할리우드에서 작업할 때 실베스터 스탤론, 샤론 스톤 같은 배우들과 식사를 함께한 적 있는데 절대 우리를 다른 자리에 앉게 하지 않으셨다. 언제나 우리를 일일이 다 소개시켜주셨고 함께 같은 자리에서 식사를 하게 하셨다. 이제 와서 하나 소망하는 게 있다면, <엑시덴탈 스파이>를 끝으로 한국 로케이션 작업이 없는데, 앞으로 단 한번만이라도 성가반의 일원으로서 한국에서 영화를 찍고 싶다는 것이다.

정두홍_나도 소망 한 가지를 말한다면, 예전부터 그분과 정말 영화에서 액션의 합을 맞춰보고 싶은 꿈이 있었다. 카메라 앞에서 탁탁 탁탁 치고받는 액션의 리듬을 상상해 봤었다. 후배 영화인들 누구나 그러지 않았을까. 지금껏 딱 2번 만난 적 있는데, 한번도 이런 얘기를 꺼내보지 못했다. (웃음) 어떻게 보면 액션스쿨을 만든 것도 그의 영향이라고 할 수 있다. 액션스쿨이 올해로 19년째가 되는데, 설립 당시 ‘액션 스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단연코 성룡, 홍금보, 원표뿐이었다. 견자단은 그때까지만 해도 조연 정도도 아니었고, 토니 자는 등장하기도 전이었다. 한국에서도 그런 성룡 같은 액션 스타가 나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액션스쿨을 만든 거다. 물론 그에 걸맞은 스타가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그는 내게 어떤 분명한 목표를 설정하게 해줬다. 가끔씩 부정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던 것 같은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알게 모르게 내게 많은 길을 비춰주고 계셨다. 아무튼 정말 카메라 앞에서 성룡과 함께 멋진 일대일 대결을 한번 펼쳐보고 싶다. (웃음)

<쾌찬차>

남자들이 멋스럽게 중절모 쓰고 다니던 시대의 액션

정두홍이 꼽는 성룡 영화 베스트3

<쾌찬차>(1984)의 후반부 고성 장면에서, 성룡과 베니 어키데즈가 길게 싸우는 장면은 성룡의 현대물 일대일 격투 장면 중 최고다. 마지막에 성룡이 플라잉 니킥을 날리며 끝내는 순간은 단연 압권이다. 그런데도 결국 창밖으로 나가떨어지려는 그를 기어이 구해준다. 성룡은 역시 성룡이다. (웃음) 이후 <비룡맹장>(1988)에도 나왔던, 가라테 기술을 구사하는 베니 어키데즈의 액션 스타일이 참 마음에 들었는데 시간이 흘러 곽경택 감독의 <챔피언>(2002) 촬영차 LA에 갔을 때 실제로 만나기도 했다. 그가 운영하는 (그의 닉네임이기도 한) The Jet 체육관에서 현지 훈련을 했기 때문이다.

<용형호제>(1986)는 무술 그 자체보다 스턴트의 강도가 워낙 셌다. 특히 후반부에 동굴 같은 수도원에서 네명의 체격 좋은 흑인 여자들과 싸우는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하이힐을 신은 그들의 뒷굽이 나무 사이에 끼게하여 싸우는 성룡의 재치가 뛰어나다.

<미라클>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 시대 분위기 때문이다. <취권> 같은 사극이나 <폴리스 스토리> 같은 현대물 사이에서 <미라클>이 풍기는 독특한 느낌이 있다. <장군의 아들>이나 <암살>처럼 남자들이 멋스럽게 중절모 쓰고 다니던 시대 말이다. 어딘가 할리우드 고전 클래식의 분위기도 난다. 요즘 <밀정>도 작업하고 있지만 그 당시의 미술이나 의상에 좀 매료된 상태다.

<취권2>

“아시아에서도 이런 수준의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

박현진이 꼽는 성룡 영화 베스트3

<용형호제>는 성룡이라는 거대한 스타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 해준 영화다. <인디아나 존스> 스타일의 영화였는데, 아시아에서도 이런 수준의 영화가 나올 수 있구나, 신기해하고 감탄하며 봤다.

<취권2>(1994)는 오래전의 <취권>(1978)을 극장에서 접하지 못했던 세대인 내가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그의 사극 무술영화라 할 수 있다. 기차 아래에서 몸을 숙이고, 쇼브라더스의 전설적 무술감독이자 대선배이기도 한 유가량과 싸우는 장면은 물론이고, 후반부에 주로 다리를 사용하는 노혜광과 싸우는 장면이 정말 매력적이었다. 특히 노혜광이 다리를 파닥파닥 떨면서 자유자재로 이용하며 성룡을 쩔쩔매게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성가반 3기 노혜광은 나중에 내가 성가반에 들어가서 무척 친해진 선배 중 하나인데, 한국영화 <조폭마누라3>(2006)에 보스로 출연하기도 했다.

<드래곤 블레이드>(2015)는 <성룡의 신화>(2005)도 그렇듯이 성룡 특유의 사극 판타지물 중에서 가장 좋아한다. 성룡이 로마 군대와 맞서 싸우는 부대의 총사령관으로 등장해 마을에 무술을 전수해주는 과정이 좋았다. 유난히 장애물이 많이 등장하는 액션 신도 눈여겨봤다. 비록 국내 개봉하고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는 못했지만, 사극 전쟁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은 꼭 보면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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