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조재휘의 영화비평] 홍콩 액션영화의 한 시대의 종장
2016-03-17
글 : 조재휘 (영화평론가)
영춘권 본유의 모습으로 돌아가다
<엽문3: 최후의 대결>

<엽문3: 최후의 대결>(2015, 이하 <엽문3>)로 마침내 <엽문> 시리즈는 3부작의 마침표를 찍었다. 엽위신의 <엽문>(2008)은 홍콩 무술영화의 역사에 중요한 변곡점을 그은 작품이었다. 그 중요성은 액션영화의 트렌드가 변화하는 시대적 흐름을 파악해야 이해될 수 있다. <의리의 사나이 외팔이>(1967)나 <소림 36방>(1978)과 같은 쇼브러더스 무협영화 이래 무술안무의 주종을 이룬 건 황비홍의 무술로 유명한 홍가권(洪家拳)이었다. 광둥 남파권법의 일종으로 넓은 보폭에 큰 동작을 특징으로 삼는 장교대마(長橋大馬)의 홍가권은 박력을 강조해야 하는 영화적 표현의 측면에서 각광받았다. 더군다나 유가량, 유가휘 등 무술 스턴트팀 상당수가 홍가권 수련자 출신으로 채워져 있었던 바, 홍가권 중심의 안무가 유행하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었다.

하지만 영화 무술의 패러다임이 폭력의 현실성을 살리는 실전 무술 중심의 안무로 옮겨가면서 상황은 변했다. 근접전에서의 단타와 꺾기를 장기로 삼는 칼리 아르니스, 시스테마 등의 무술이 영화계에 유행하면서 영춘권(詠春拳)이 하나의 대안으로 떠오르게 된 것이다. 복건 남파의 계보에 속하는 영춘권은 흔들리는 배 위나 좁은 골목에서의 싸움을 전제하여 짧은 보폭과 빠른 단타를 장기로 삼는 단교협마(短橋狹馬)의 무술로, 이소룡이 수련하여 널리 지명도를 얻었으나, 정작 영춘권의 진면목을 살려낸 무술영화는 (장철의 <소림사>(1976)에서 적룡이 영춘권의 목인장 수련과 수기를 보여준 바 있지만) 극히 드물었다. 이에 착안하여 만들어진 <엽문>과 <엽문2>(2010)는 엽문(葉問: 1893~1972)에 대한 관심과 영춘권 열풍을 새롭게 불러일으키며 홍콩 무술영화의 양상을 일신하기에 이른다.

영춘권을 무기로 북파권법과 가라테, 홍가권과 현대 복싱에 맞서야 했던 영화 속의 엽문은 이번 작품에서는 동일 유파간의 대결을 맞게 된다. 영춘권을 수련했지만 가난한 인력거꾼으로 생계를 잇던 장천지는 후원을 받아 자신의 도장을 열고 누가 영춘권의 진정한 계승자인지를 가리고자 엽문과의 대결을 선포한다. 비록 장천지는 허구의 인물이지만, 이 새로운 적수의 등장과 주장에는 일견 중요한 모티브가 엿보인다. 바로 ‘영춘권의 정통(詠春正宗)은 무엇인가?’라는 오랜 의문점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영춘권의 원류를 찾아서

엽문파 영춘권의 계보는 광둥에서 의원 노릇을 하던 양찬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황화보에게서 영춘권을 전수받고 달인으로 이름을 떨친 양찬은 자신의 아들 두명을 포함해 단 네명의 제자만을 두었는데, 그중 한명이 바로 엽문의 사부 진화순이었다. 엽문의 제자인 장탁경 노사의 증언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몰래 숨어서 구경한 걸로 영춘권을 익힌 진화순은 길거리에서 도둑 공부한 영춘권으로 싸움을 벌이면서 양찬의 눈에 띄어 제자가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느는 진화순의 기량을 두려워한 양찬은 자신의 두 아들에게만 영춘권의 정통을 가르치고 진화순에게는 일부 기술과 자세를 빠뜨린 영춘권을 가르쳤다는 것이다.

엽문은 진화순의 말년에 문하에 들었고 스승이 죽은 뒤에는 사형 오중소에게서 영춘권을 배우다가, 16살이 되자 학업을 위해 불산을 떠나 홍콩의 세인트 스티븐스 대학에 진학한다. 바로 이 시기, 엽문은 참으로 기이한 인연을 얻게 된다. 여성을 괴롭히던 경찰과 싸움을 벌인 엽문은 한 노인으로부터 ‘자세가 좋지 않아’라는 지적을 듣고는 치사오(黐手, 손기술 대련)로 한수 겨루게 된다. 이 대결에서 엽문은 노인에게 완전히 제압당했는데, 바로 그 노인이 양찬의 큰아들로 영춘권의 정통을 물려받은 양벽이었다. 이를 계기로 엽문은 양찬이 진화순에게 가르쳐주지 않았던 기술까지 모두 전수받게 된다. 유학 생활을 마치고 불산으로 돌아온 엽문은 사형 오중소에게 양벽을 만난 일을 털어놓았는데, 오중소는 이 일을 철저히 함구하고 배운 수를 함부로 보이지 말 것을 다짐받았다. <엽문3>에서 영춘권의 적류를 자처하는 장천지의 등장은 이처럼 진화순에게 전해진 영춘권과 정통 영춘권은 다르다는 장탁경의 증언으로부터 모티브를 얻어 창작된 것으로 보인다. 장탁경은 자신이 1954년부터 엽문의 집에 머물면서 4년간 따로 정통 영춘권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영춘권의 유파는 여러 갈래가 있는데 크게는 중국 본토의 광주파, 홍콩으로 건너가서 세계로 퍼진 엽문파, 그리고 소림사의 지선선사를 창시자로 여기는 영춘백학권(永春白鶴拳: 지선영춘권(至善永春拳)으로도 불리는 이 경우는 오키나와 가라테의 원형이 되었다) 계열로 나눌 수 있다. 현재 엽문파 영춘권의 계승자는 엽문의 두 아들인 엽준과 엽정 형제인데 이 두 사람이 이번 작품의 무술 고증에 참여한 만큼 장탁경의 주장에는 어느 정도 근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술 안무의 측면에서 보는 <엽문3>

<엽문>과 <엽문2>의 안무를 맡아 액션 장면을 설계한 사람은 홍금보였다. 일찍부터 영춘권의 개성에 주목했던 그는 <천하제일권> <패가자: 영춘권의 제왕>을 통해 영춘권을 영화에 접목하는 시도를 해온 적임자였다. 두편의 전작에서 홍금보는 동작이 큰 다른 무술을 맞수로 설정함으로써 근접전에서 간결하고도 재빠른 수기로 상대를 제압하는 영춘권의 전술을 성공적으로 부각한 바 있다. 다만 홍금보의 안무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손기술 중심의 영춘권에 중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뚜렷한 한계점을 드러냈다. 엽위신이 <엽문3>의 무술감독으로 <일대종사>(2013)에서 활약한 원화평을 선임한 것은 영춘권으로 할 수 있는 무술 안무의 저변을 넓히려는 계산에서 나온 것이라 볼 수 있다.

원화평의 영춘권 안무가 보이는 결정적인 차이점은 바로 발기술의 활용에서 두드러진다. 잘 알려진 영춘권의 전법이 상대를 짧은 간격 안으로 끌어들이는, 즉 근접전의 간격을 유지하는 데 있었다면 <일대종사>와 <엽문3>에서 원화평은 이른바 팔각(八脚)으로 불리는 영춘권의 발기술을 적극적으로 안무에 끌어들임으로써 중거리 교전에서의 영춘권의 대응 능력을 보여주려 한다. 영춘권에 대한 통념을 깨는 원화평의 접근은 엽문이 복서 출신의 암흑가 두목과 대결하는 사무실 시퀀스에서도 두각을 드러낸다. 입식타격기라는 인상이 강한 영춘권에서 보마를 넓혀 바닥에 닿을 정도로 자세를 낮추고 상대의 다리를 거는 수법을 보여주는데, 공교롭게도 이는 정통 영춘권과 엽문파 영춘권의 차이가 발놀림과 자세에 있다는 장탁경의 주장을 시사한다.

영춘권 특유의 무기술인 육점반곤(六點半棍: 2.75m 길이의 봉)과 팔참도(八斬刀: 양손단검의 일종)에 이어 권격으로 이어지는 엽문과 장천지의 마지막 대결은 영춘권의 유행을 볼러온 이 시리즈의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한다. 거듭해갈수록 영춘권이 보여줄 수 있는 영화적 표현의 한계를 확장해온 <엽문> 시리즈는 마침내 영춘권 본유의 모습으로 돌아감으로써 엽문과 영춘권이 풍미한 홍콩 액션영화의 한 시대를 아름답게 종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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