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3세인 오미보 감독은 오사카예술대학에서 영상학을 전공한 뒤 오바야시 노부히코 감독 아래서 5년간 연출부 생활을 했다. 장편 데뷔작 <사카이 가족의 행복>(2006)으로 가족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사춘기 소년 츠구오의 성장기를 그렸다. 이케와키 지즈루가 열연한 세 번째 장편 <그곳에서만 빛난다>(2014)는 절망 속에 놓인 채 나름의 빛날 자리를 탐색하는 서글픈 가족의 초상을 담은 영화로, 감독에게 제38회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최우수감독상을 안겼다. 지속적으로 가족의 해체와 결속을 말해왔던 오미보 감독은 <너는 착한 아이>로 주변에까지 눈을 돌린다. 치매 노인 아키코(기다 미치에)는 고통스러운 전쟁의 기억을 품은 채 늙어간다. 신임 교사 오카노(고라 겐고)와 남몰래 아이를 학대하는 젊은 엄마 미즈키(오노 미치코), 미즈키의 활기찬 이웃 오오미야(이케와키 지즈루)는 어른으로서 현재를 살아가는 중이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시간을 공유하는 어린이들이 있다. 학대의 기억과 주변의 호의는 전 세대를 관통하며 서로에게 영향을 준다. <너는 착한 아이>는 가정폭력의 대물림과 그 대안에 관한 가장 현실적인 시선을 견지하고 있다.
-나카와키 하쓰에의 원작 소설 <너는 착한 아이야>를 각색하며 바꾼 것과 그대로 옮겨온 것은 무엇인가.
=원작엔 없지만 영화에 새로 만들어 넣은 대사가 있다. 오카노의 누나가 오카노에게 “아이를 사랑해주면 세계가 평화로워진다”는 요지의 말을 한다. 각본가 다카다 료가 썼는데, 단순하고 당연한 사실인데도 쉽지 않은 일이다. 핵심적인 말인 것 같아 그대로 넣었다. 또 자폐아 히로는 이런 말을 한다. “기쁨은 저녁을 먹고 목욕하고 이불 속에서 엄마가 잘 자라고 할 때의 기분이에요.” 그 대사만큼은 꼭 살리고 싶어서 원작 그대로 넣은 표현이다.
-작은 호의와 관심이 타인의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무엇이 될 수도 있다고 믿는 것 같다.
=소설을 읽고 나서 누군가의 시선, 제3의 눈에 대해 생각했다. 아이에게 손을 대는 부모는 자신도 잘못을 자각하고 있겠지만 멈추지 못하는 걸 거다. 부모와 아이가 모두 상처를 받고 있는데 그때 누군가의 호의적인 시선이 개입한다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피가 섞이지 않은 제3의 관계여도 얼마든지 삶의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존재가 될 수 있다.
-오카노와 미즈키는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을 힘겹게 느낀다. 그 괴로움이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졌는데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로서의 당신의 경험과 생각은 어느 정도 반영됐는지 궁금하다.
=지난해 5월, 일본에서 <너는 착한 아이>가 개봉하기 한달 전에 아이를 낳았다. 촬영하고 있을 때도 임신한 줄 몰랐고, 아무런 예감도 없다가 편집 막바지에야 임신 사실을 알았다. 비교적 전반부에 미즈키가 아이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는데 거기서 카메라는 고정된 채로 길게 그 장면을 보여준다. 지금이라면 그렇게 길게 편집하지 못했을 거다. 내가 낳은 아이를 내 손으로 때린다는 걸 구체적으로 상상하게 된다. 적어도 지금 <너는 착한 아이>를 다시 편집한다면 분명 다른 영화가 됐을 거다.
-어른의 삶을 힘들게 만드는 아이들을 보느라 지치던 중이었는데 삼촌을 위로해주겠다며 조카 렌이 오카노를 안아주는 순간, 그 순수하고 작은 몸짓은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을 전한다.
=관객이 영화를 보며 렌의 위로를 대사가 아닌 체감으로 이해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몸으로 감각이 느껴지길 바랐다. 오카노는 그 경험 뒤에 반 아이들에게 가족을 안아주고 오라는 숙제를 내준다. 오카노가 느꼈을 그 감각을 타인이 공감할 수 있다면 작게라도 많은 것이 변할 것 같다.
-고라 겐고는 주로 불안한 청춘의 이미지를 갖고 있던 배우인데 이 영화에서 진짜 어른의 세계로 진입한 변화가 눈에 띈다.
=내가 <사카이 가족의 행복>으로 부산국제영화제를 방문했을 때 고라 겐고도 <가시고기의 여름>(2006)으로 부산을 찾았다. 그때 처음 그를 만났다. 고라 겐고는 규슈 지방에서 막 올라와 연기를 시작한 무렵이었다. 선명하고 잘생겼는데 굉장히 겸손하고 말씨나 성품에 부드럽고 순박한 구석이 있는 청년이었다. 그 뒤 여러 가지로 하드보일드한 연기를 선보였잖나. (웃음) 그렇지만 줄곧 어설프다고 해야 할까. 일본 어디에나 흔히 있을 것 같은 사람인 오카노 역에 그만한 적임자가 없을 것 같았다. 물론 그 예상이 맞았고. (웃음)
-<그곳에서만 빛난다>에서 호연한 이케와키 지즈루는 이번 영화에서 상처를 딛고 멋진 엄마가 된 오오미야를 연기했다.
=정말 굉장한 연기자라고 생각했다. <그곳에서만 빛난다>에서 혼신의 연기를 펼쳐줬는데 그 영화가 한국에서 개봉하지 않은 게 아쉽다. 나는 이창동 감독의 <오아시스>(2002)를 무척 좋아한다. (영화에선 남매로 나오지만) <그곳에서만 빛난다>의 스다 마사키와 이케와키 지즈루가 홍종두(설경구)와 한공주(문소리) 같은 느낌을 살려주길 바랐다.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본인은 서글프단 생각도 않고 그냥 살아가는데 그런 존재가 세계 어디에든 있을 것 같지 않나. 아무튼 <너는 착한 아이>에서도 오오미야가 후반부에서 영화를 자기가 다 가져가 버리잖나. 아까 제3의 눈이란 걸 말했는데, 그 역할을 이케와키 지즈루가 잘해주었다. 오오미야의 존재로 미즈키가 당장 폭력을 그만두진 않더라도 누군가의 시선이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그 시선이 비난이 아닌 격려이기에 아마 미즈키는 약간의 희망을 느꼈을 거다. 그런 존재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 시간이 흐를수록 너무나 아름답게 무르익어가는 멋진 배우다.
-미즈키에게 학대를 당하는 딸 아야네(미야케 노아)는 영화에서 미즈키에게 질질 끌려다니거나 고함을 듣는다. 어린 배우가 연기와 실제를 얼마나 달리 받아들였는지 모르겠다.
=미야케 노아는 <겨울왕국>을 보며 엘사처럼 큰 스크린에 얼굴을 비추고 싶다며 자발적으로 배우가 되고자 한 아이다. 출연에 대한 강력한 의지가 있었다. 오디션을 보는 동안 엘사는 예쁜 공주이고 노래도 하지만 아야네 역은 엄마한테 맞아야 하고 아픈 역할이라고 거듭 강조했지만 미야케 노아는 괜찮다고 말했고 그 장면이 가상임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촬영을 마치고 나서는 울고 있기에 역시 무서웠나 싶어 걱정했는데 “무서워서가 아니라 어젯밤에 집에서 연습했을 때보다 연기를 못해 속상해서 운다”고 말하더라.
-자폐아 히로를 연기한 가베 아몬의 연기도 기술적으로 굉장히 뛰어나더라. 그건 배우의 관찰의 소산인가, 구체적 연출의 결과인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고심하며 뽑은 친구다. 가히 천재적이었다. 히로 연기를 위해 장애를 가진 아이들의 특수 학급을 견학했고, 촬영장에서도 특수학교 교사와 셋이 함께 의논하며 장면을 만들어갔다. 자폐아의 스테레오타입 연기를 하지 않길 원했는데 가베 아몬은 자기가 본 것들로 스스로 트레이닝할 수 있는 아이였다.
-쭉 가족의 결속을 이야기해왔는데 이번엔 관계의 결속에 대한 영화로 테마가 확장됐다.
=왜 가족 얘기를 꾸준히 하냐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세상의 가족들이 신경쓰인다.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재일동포로 살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때까지도 오오타카 미호라는 일본 이름을 사용했다. 그런데 졸업장에 ‘오오타카 미호(오미보)’라고 적힌 걸 보고는 어린 마음에 이름이 두개라는 게 부끄러웠다. 우리 가족은 보통의 가족이 아닌 걸까, 보통의 가족이란 게 뭘까 생각하면서 나의 정체성을 찾아갔다. 그래서 늘 한 가족의 이야기를 해왔는데 이번엔 한 지역에 사는 여러 가족을 영화에 담아봤다. 세상에 똑같은 형태의 가족이란 없잖나. 여전히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