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이용철의 영화비평] 원치 않는 싸움
2016-03-24
글 : 이용철 (영화평론가)
싸우는 사람들의 존재를 드러낸 전쟁영화 <13시간>
<13시간>

베트남전 이후 미국 군인의 파병은 대개 일관된 상황과 관련되어 있다. 상대편 국가의 지도자(와 국민)는 미 제국으로부터 해방되고자 혁명전을 치른다고 생각하는 반면, 정작 전쟁에 뛰어든 미군은 정치적 측면에 무지하다. 혹은 관심이 없는 척해야 한다. 그들은 누군가의 결정에 따라 전쟁을 수행할 따름이다. 그러한 상황이 잘 드러난 작품은 리들리 스콧의 <블랙 호크 다운>(2001)이다. 소말리아 내란에 끼어든 병사들은 하나같이 “나는 정치에 대해 모른다”라고 말한다. <블랙 호크 다운> 개봉 당시, 나는 영화는 물론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작전 자체에 반감을 느꼈다. 내 기본적인 생각은 ‘집안싸움에 이웃 아저씨가 주먹질로 개입하면 곤란하다’는 것이었고, 영화가 소말리아의 민중을 조지 로메로 영화의 좀비처럼 그리는 게 불편했다. 얼마 후 한국 장교들의 인터넷 포럼에서 내 표현을 비웃는 글들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나를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기자라고 판단했으며 마치 비전문가가 전쟁을 말하는 게 가소롭다는 듯이 굴었다.

이상한 일은 이후에도 미국과 세상의 전쟁이 계속되었으나 전쟁을 주제로 한 상업영화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소위 작가로 불리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캐스린 비글로 등의 감독이 인상적인 전쟁영화 몇편을 만들었을 뿐이다. 할리우드에서 외계인, 좀비에 맞서 싸우는 설정이 일반화되면서 인간을 적으로 한 전쟁영화는 설 자리를 점차 잃었다. 이것은 엄연한 사실을 애써 외면하려는 태도처럼 보인다. 예를 들어 액션, 전쟁 게임의 전사 모델로 나선 건 미끈한 몸매의 여성이거나 여자 아이돌이다. 과거 러스 메이어의 영화에서나 등장했던 거칠고 야성적인 여성들이 주류 문화에 편입될 동안, 군복을 입은 남성 문화는 취향 바깥으로 밀려났다. 그런 까닭에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마이클 베이가 <13시간>을 제작한 배경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트랜스포머3>(2011)과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2014) 사이에 만든 <페인 앤드 게인>(2013)과는 여러모로 성격이 다른 작업이다. 마찬가지로 작은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근육질 남성들의 범죄물인 <페인 앤드 게인>의 흥행 성공에 견주어 리비아를 배경으로 한 전쟁영화에 관객이 보일 반응은 뻔했다.

할리우드 전쟁영화에서 벗어난 연출

고백하자면 호기심보다 반가움이 앞섰다. 상업영화 진영에서 주목할 만한 전쟁영화가 나왔기 때문이다. CG로 채색된 가짜 액션이 아닌 진짜 액션이 그리웠고 길티 플레저가 되어버린 남성들의 전우애를 스크린에서 맛보고 싶었다. 영화도 기대했던 것에서 밑돌지 않아 ‘이제 이런 영화를 만드는 감독은 별로 없다’는 20자평을 <씨네21>에 남겼다. 혹시 그 20자평이 원고 청탁으로 이어졌다면 <씨네21>에 미안하다는 말을 해야겠다. <13시간>은 할리우드산 전쟁영화의 기본적인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차이점 또한 여럿 지닌 작품이다. <13시간>은 1970년대 이전의 반듯한 전쟁영화들, 그리고 불균질한 전쟁영화들과 확연하게 다르다. 굉음과 파괴의 수준에서 1970년대 이전의 전쟁영화를 먼지투성이의 구식영화로 만들어버린다. 반전을 주제로 전쟁에 비판적으로 접근한 영화들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1980년대에 만들어진 전쟁 액션영화와 비슷한가 하면 그것도 아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코만도>(1985)와 실베스터 스탤론의 <람보2>의 거침없는 액션에 비하면 <13시간>은 현실적인 액션을 지향한다. 한 총에서 수백발의 총알이 쏟아져나와 일개 분대쯤은 쉽게 격퇴한다는 식의 액션은 <13시간>에서 볼 수 없다. 도리어 상대방의 화력이 용병들의 그것을 압도할 때면, 1980년대의 액션 영웅이 스크린에 뛰어드는 상상을 하게 될 법하다. 하지만 지금은 21세기, 극중 그런 액션을 휘둘렀다가는 더 심한 비판을 들어야 하는 시대다.

<13시간>

더 이상한 점은 <13시간>이 베이의 전작들과 배치된다는 데 있다. <진주만>(2001)에서 수십분간 폭풍처럼 몰아치던 전쟁 액션은 여기에 없다. <13시간>은 한때 마이클 베이의 충실한 동반자였던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한 <블랙 호크 다운>의 소규모 버전에 더 가깝다. 차이가 있다면 인물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은 퇴역 군인에서 용병으로 탈바꿈해 분쟁 지역으로 되돌아온 인물이다. 그들의 주 임무도 전투가 아닌 정부요원이나 민간인 보호다. 그러므로 그들은 국가나 사명 같은 말을 쉽게 입에 올리지 않는다. 고향에 가족을 둔 주인공이 위험 지역으로 걸어들어온 이유는 오직 하나, 용병 외에 다른 번듯한 일자리를 찾을 수 없어서다. <13시간>은 상대적으로 긴 전반부에서 용병이란 직업을 가진 남자들의 일상을 묘사한다. 그들이 보호하는 CIA 요원들이 짐승을 대하듯 싸늘한 시선을 보내도 그들은 익숙하다는 태도로 응한다. 델타포스의 용맹한 활약을 그린 전쟁영화를 기대했다간 영화의 전반부에 지루함을 느낄지도 모른다.

나른한 전반부는 본격적인 전투 장면과 짝을 맞추기 위한 묘책이다. 용병들이 뜻하게 않게 치르게 된 13시간 동안의 전투 중 일부에서는 멋들어진 액션이 폭발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기이하게도 베이식의 액션과 거리를 둔다. 소나타만큼의 꽉 짜인 전개는 아니어도 13시간 동안의 정교한 리듬은 현실의 교전 상황을 절대 배반하지 않는다. <13시간>은 총격 시퀀스만큼의 시간을 할애해 병사들이 쉬는 모습에 집중한다. 외곽 지역에서 벌어지는 교전이므로 상대방과 총격을 주고받다가도 어쩔 수 없이 휴지기를 가질 수밖에 없다. 진실은 거기에서 나온다. 베이는 어쩌면 전투가 아니라, 어쩌다보니 잘못된 직업을 갖게 된 용병들을 냉정하게 바라보려는 의도로 <13시간>을 만든 것 같다. <13시간>은 직업으로 총을 들어야 했던 용병들이 비공식 직장인 국가에 침을 뱉게 되는 과정을 기록한 영화다. 비밀리에 배치되었다는 이유로 그들은 리비아 민병대로부터 공격을 받으면서도 지원을 요청할 수 없다. 인근 부대나 여타 국가의 병력들이 선뜻 지원에 나서지 못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여기서 드러낼 수 없는 비밀이란 미국의 추악하고 어두운 측면이며, 주인공들의 환멸은 거기에서 비롯된다. 임무를 마친 뒤에도 그들은 공식적인 리스트에서 흔적이 지워진다. 훈장도 명예도, 심지어 군용 수송에서도 제외된다. 그들에게 주어진 유일한 권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네 나라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

총을 들고 남의 땅에 침입한 자는 특정 공간에 대한 정치성을 띨 수밖에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 타국의 정치 상황에 개입한 미군 병사는 정치적 성격을 부정한다. 정치적이면서 그것을 부정하는, 그럼으로써 대개의 할리우드 전쟁영화는 고도의 보수적 정치성을 드러낸다. 베이가 “어떤 정치적 어젠다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13시간>은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익숙한 태도로부터 돌아선다. 용병들은 다시는 자유와 평화란 이름으로 타국에 가지 않을 것임을 다짐한다. 즉 <13시간>은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남의 땅을 파괴하는 미국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을 지닌다. 주인공은 리비아 친구에게 “네 나라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라”고 말한다. 할리우드의 보수적 시선을 대표하는 베이의 영화적 태도 변화는 눈여겨볼 만하다. 언제나 성조기를 휘날리던 그의 영화에서 쓰레기 더미와 함께 물에 처박힌 성조기를 보게 될 줄 상상이나 했겠나. 문득 위에 언급한 포럼의 장교들이 <13시간>에 대고 어떤 말을 할지 궁금해졌다. 적어도, 델타포스와 용병을 두루 거친 뒤 마침내 영원한 귀환을 선택한 병사에게 세상 물정을 모른다는 말 따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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