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황윤] “여기에서, 함께, 잘 살기 위하여”
2016-03-30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진 : 최성열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황윤 감독

카페에 들어선 황윤 감독이 두장의 명함을 건네줬다. 하나에는 <잡식가족의 딜레마>(2014)의 감독 황윤이, 다른 하나에는 녹색당 당원 황윤이 새겨져 있었다. 인터뷰 장소로 오기 직전에도 녹색당의 동물권선거운동본부가 진행한 동물권 정책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해 ‘동물도 투표권이 있다면?’이라는 퍼포먼스를 하고 왔다고 했다. 불룩한 배낭을 열어 두툼한 녹색당 정책집과 자료들을 꺼내들고서야 비로소 커피 한 모금을 마신다. 다큐멘터리스트 황윤은 4월13일에 치러지는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에서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 1번 예정자다. 동물원에 갇힌 동물들의 이야기 <작별>(2001), 로드킬의 비참함을 추적한 <어느 날 그 길에서>(2006), 공장식 축산의 처참함을 보고 눈감을 수 없어 좋아하던 돈가스 반찬을 끊게 되는 자전적 이야기 <잡식가족의 딜레마>까지. 황윤은 자신의 삶의 화두를 영화 작업 안으로 끌고오는 생활밀착형, 실천가형 감독이다. 황윤이 녹색당 당원이라는 건 자연스러운 선택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례대표가 돼 정치 일선, 국회로 가겠다고 했을 땐 어떤 ‘결의’가 필요했으리라 짐작됐다. 인터뷰를 통해 들은 황윤의 대답 속에는 “절박함”이라는 단어가 단단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행사까지 마치고 와서 그런지 피곤해 보인다.

=요즘 통 잠을 못 이룬다. 여러 일이 겹쳐서 그런지 각성 상태다. 올해 아들 도영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입학식 날 이사까지 했다. 전북 군산에서 좀더 시골로 들어갔다. 한달 전에는 아버지께서 갑작스레 돌아가셨다. 인생이 참 허망하다는 걸 느꼈고 충격도 컸다. 그래서인지 죽을 때 후회 없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 지속 가능한 삶의 방식과 비폭력적인 평화를 구현하고자 하는 녹색당이 원내 진입을 하는 데 내 인생의 한 부분을 아낌없이 바치고 싶어졌다. 아버지가 떠나면서 주신 선물이다.

-영화인의 정계 진출이야 어제오늘 일은 아니나 소수정당에서 비례대표 후보로 나온 건 상당히 이례적이다.

=배우, 제작자가 국회의원을 하고 감독 출신이 행정직에서 일한 경우는 있었지만 영화감독이 국회의원 후보로 나선 건 내가 알기로는 처음이다. 녹색당 창당 멤버는 아니지만 창당 초기부터 당원이었다. 당비만 꼬박꼬박 냈을 뿐이다. 지난가을께 후보 제안을 받고 처음에는 거절했다. 아이도 곧 학교에 들어가고 영화도 두세편 준비 중이라는 이유를 댔다. 또 영화로도 사회 변화를 이끌 수 있다고 봤기에 굳이 정치인이 될 필요는 없었다. 사실 정치는 적성에도 안 맞았다. 그때 내 마음을 돌린 사람이 이유진 녹색당 공동운영위원장이었다. 유진씨는 사라져가는 야생동물들의 흔적을 찾아나섰던 내 영화 <침묵의 숲>(2004)에 출연하면서부터 인연을 맺었다. 나와 정치적 지향도 맞고 내가 존경하는 사람이다. 그런 유진씨가 한마디 하더라. “도영이에게 이런 세상 물려줄 거냐.” 가슴을 찔렀다. 내 어린 시절과 비교해도 지금 세상은 너무나 끔찍하다. 미세먼지 때문에 마음껏 뛰어놀 수도 없고, 놀이터에 깔린 인조잔디도 폐타이어로 만들어 조금만 뛰어도 분진이 올라온다. 입시 위주의 교육 환경에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학원을 전전해야 하고 어느덧 모두들 스마트폰에 중독돼 있다. 부모로서 책임감을 느꼈다. 그때 마음을 굳혔다.

-녹색당은 대의원을 추첨제로 뽑을뿐더러 원내 진출 후에는 비례대표들이 2년제로 순환해 일하기로 했다.

=정당 투표에서 전체 유권자의 3% 이상의 득표를 얻으면 비례대표 1석이 주어진다. 비례대표 1번인 내가 2년 먼저 일하고 바통 터치해 2번인 이계삼 후보가 2년을 일하는 거다. 물론 내가 일하는 동안 다른 비례대표 후보들이 보좌관으로 함께 일한다. 녹색당은 전체 당원이 국회로 들어간다는 개념으로 한팀이라는 생각이 강하다. 막상 선거 준비를 하다보니 어려움도 겪게 된다. 원외 정당이라 국고지원금 없이 당비만으로 선거를 치러야 한다. 비례대표는 선거운동 기간 중에 마이크를 잡고 선거 유세를 할 수가 없다. 생목으로 해야 한다. 또 후보 등록 때 내는 1500만원의 선거 기탁금도 부담이다. 가난하지만 신선한 정책을 선보이려는 소수정당들이 정치에 입문하는 데 문턱이 너무 높다. 이런 점들을 바로잡아달라는 헌법소원을 제기했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녹색당 당원이 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때 큰 충격을 받았다. 한국 역시 절대 안전하지 않다. 한국은 국토 면적당 원전 밀집도, 도로 밀집도가 세계 1위다. 굉장히 위험한 사회다. 현재 존재하는 원전만 24개인데 새로 짓고 있는 게 4개, 건설 예정인 게 6개다. 25년 이상 노후화된 원전도 9개나 된다. 후쿠시마 다음 사고가 날 곳이 한국일 확률이 매우 높다. 녹색당도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안고 그 대안을 찾으며 창당한 걸로 안다. 2011년에는 구제역 살처분도 있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에도 나오지만 그 많은 생명을 생매장했다. 그때 살처분 현장에 있었던 공무원, 군인들도 상당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지 않는다. 인수공통전염병에 무감각해지고 있는 건 또 얼마나 끔찍한가. 기후변화, 원전 위험 등 지구 종말적인 상황에서 아이를 키운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절박한 심정이었다. 성장을 외치는 기존의 정당들과 달리 전혀 다른 꿈을 꾸게 하는 녹색당의 당원이 되는 건 당연했다.

-당원이 된 후 실제 삶에 변화가 생긴 게 있던가.

=녹색당의 존재감을 느낀 것 중 하나가 <잡식가족의 딜레마> 전국 상영 때다. 독립영화는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서 개봉관을 잡기가 너무 어렵다. 그때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준 게 녹색당이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바를 영화가 말하고 있다고 생각해서인지 당원들이 자발적으로 상영회를 조직했다. 지역의 멀티플렉스를 대관해서 본인들이 보고 싶은 영화를 보러 와줬다. 이명박 정권 이후, 갖은 탄압으로 시민단체들도 많이 지쳐 있는 상황인데 녹색당은 그렇지 않더라. ‘아, 녹색당은 살아 있구나. 생동감이 넘치는 네트워크구나’ 하고 느꼈다.

-탈원전과 기후 보호, 기본 소득 보장, 식량주권 확보 등 녹색당의 핵심 의제 가운데서도 특히 동물권 보장에 힘을 쏟고 있다. 그간의 영화 작업도 모두 동물권과 연결돼 있기도 하다.

=자칭 진보주의자라는 사람들 가운데 왜 유독 인간동물(황윤은 인간 역시 동물이라는 점에서 인간은 인간동물, 동물은 비인간동물이라 말한다)이 행하는 비인간동물에 대한 억압에는 관대한가를 거꾸로 묻고 싶다. 이건 내 평생을 두고 계속할 질문이다. 동물권은 인권의 대립항이나 인권을 배제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진정한 인권 실현을 위한 조건이다. 버려진 개와 고양이, 공장식 축산에서 참혹하게 고통받다가 살처분된 돼지와 닭이 고통받지 않을 권리, 물건이 아닌 생명으로 존중받을 권리가 그들에게도 있다. 이것은 내가 용산 참사로 희생된 주민들의 현실과 세월호 참사에 분노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이주민들, 농민들에 대한 불합리한 처우와 차별에 반대하며, 소말리아 여성들에 가해지는 할례에 반대하고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이 자전거를 탈 권리를 옹호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누구도 폭력과 억압에 희생돼서는 안 된다. 폭력의 ‘뿌리’를 성찰하고 바로잡지 않는 한 인간 사회의 평화는 올 수 없다.

-비례대표 예정자가 됐다고 하자 주변 영화인들이 보내는 기대 혹은 우려가 있었을 것 같다.

=아직 영화인들을 많이 못 만나서 반응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술자리에서 열심히 설득을 해서 그런가 독립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선후배들이 굉장히 많이 입당했다. (웃음) 녹색당에는 이미 영화감독인 당원들이 많다. 임순례, 김조광수, 류미례, 이승준, 백재호, 남순아, 마민지 감독. 밀양 송전탑 문제를 다룬 <밀양 아리랑>(2014)의 박배일 감독과 밀양 송전탑 투쟁을 함께한 밀양 어르신들도 가입하셨다. 다큐멘터리 감독들은 아무래도 비판적인 의식을 갖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다보니 당원이 되는 경우가 많지 싶다. 이대로 가다가는 끝장이라는 위기의식을 공유한다. 요즘 하루에 몇 십명씩 당원이 늘고 있다. 현재 8천명을 넘어섰는데 총선 전에 1만명이 되지 않을까.

-2월21일 녹색당 예비후보 1번 황윤의 이름으로 “부산국제영화제는 부산시 소유물이 아니다”, “정치적 탄압을 부산시가 하루속히 멈추고 영화제의 독립성을 보장하라”라고 촉구하는 보도자료를 냈다.

=영화감독인 내가 비례대표 예정자 1번이라서 녹색당이 부산국제영화제 문제에 관심을 갖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보다는 부산국제영화제 문제는 사회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안으로 당연히 발언해야 할 문제다. 녹색당은 다양한 목소리를 중시하는데 부산시가 그 가치를 완전히 탄압하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본 변영주 감독의 <낮은 목소리>(1995), 홍형숙 감독의 <두밀리: 새로운 학교가 열린다>(1995)로 나는 영화라는 세상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때 다큐멘터리의 매력에 빠졌고 지금의 내가 있게 된 거다. 내게 자양분이 돼준 영화제가 탄압받고 있다니 너무 슬프다. <다이빙벨>(2014) 상영을 못하게 한다고,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나. 우리에게는 다양한 영화를 볼 권리와 알 권리가 있다. 판단은 영화를 본 관객이 할 일이다. 부산시가 자충수를 둔 것이다.

-적극적으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겠다고 했을 때 영화감독으로서 느끼는 부담도 컸겠다.

=부담, 많이 된다. 정치야말로 소중하고 중요한 건데 사람들이 정치에 대한 환멸을 크게 느끼는 시대가 아닌가. 정치인들이 잘못을 저지르고 자기 이익만 챙긴 결과다. 그런 이들이 있는 곳으로 뛰어드는 일을 해야 하니 걱정이 컸다. 하지만 그만큼 절박했다. 다른 출구, 비상구가 보이지 않았다. 녹색당이 무조건 원내 진출하는 수밖에 없다. 작은 균열부터 만들어가야 한다. ‘정치’라는 단어의 뜻을 찾아보면 ‘국민들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고’라는 구절이 있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지 않나. 그렇다면 내가 못할 것도 없겠더라. 정치꾼들이 나쁜 것이지 정치가 잘못된 건 아니니까. 내 삶의 문제가 영화가 됐고 이제는 정치로 이어지려는 것뿐이다. 전혀 다른 길이 아닌 연결된 문제다.

-가족의 반응은 어떤가.

=엄마는 의절하겠다고 할 정도로 반대가 심하셨다. 영화한다고 했을 때도 이렇게까지 반대하진 않으셨는데. 정치에 대한 혐오감이 크고 딸이 상처받지 않을까 걱정이 되셔서 그럴 거다. 남편? 남편은 당황할 법도 한데 별말 없이 든든히 후원해주고 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 만들 때도 그랬고 제일 고마운 사람이다. 육아의 상당 부분을 책임져주고 있다.

-아들 도영이는 이런 바쁜 엄마의 사정을 잘 알고 있나.

=도영이는 녹색당이 모태 정당이다. 당원은 아니지만 당가도 다 외운다. (웃음) 멸종위기동물 1급에 해당하는 산양이 사는 아름다운 설악산에 왜 케이블카를 놓으려 하는지, 햇빛과 바람으로 얼마든지 전기를 만들 수 있는데 왜 위험하고 끔찍한 핵발전소를 지으려 하는지 도영이는 정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해할 수 없는 그런 일들을 막기 위해 엄마가 국회의원이 되려고 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정말 많이 응원해준다. 그래도 엄마가 자꾸만 서울에 가고 집에 늦게 돌아오는 건 싫은 눈치다. 도영이도 지금 입장 표명에 어려움을 겪고 있을 거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출마했는데 너무 바빠서 정작 아이랑 함께하는 시간이 줄었다. <잡식가족의 딜레마>에 이어 우리 가족이 겪는 딜레마랄까. 그래도 이왕 이렇게 된 거 국회로 가야지. 내 가족만 행복하게 살면 뭐하나. 핵사고 한번 터지면 모두가 끝인데. 어디로 가도 핵발전, 화력발전, 송전탑, 공장식 축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이런 것들로부터) ‘떠날 수 없는 자들을 위한 정치’가 필요하다. 도망가지 말고 맞닥뜨려 싸워야 한다.

-준비 중이었다는 영화들은 당분간 작업하기 어렵겠다.

=동물 쇼와 코끼리를 주제로 영화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또 최근 새만금 인근으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알게 된 게 있다. 새만금 물막이 공사가 끝났을 때 더이상 이곳은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그곳을 10년 넘게 조사해온 시민조사단이 있더라. 누가 돈을 줘서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이곳의 생태 환경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고민하고 추적해온 사람들이다. 그들을 주목해 보고 있다. 또 원내 진출을 하면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영화로 만들어도 흥미롭지 않을까.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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