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폐한 도심에 세워진 초고층 아파트 건물, 하이라이즈. 슈퍼마켓부터 은행, 수영장, 초등학교까지, 웬만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어 외출이 따로 필요 없는 이곳은 일종의 ‘작은 수직 도시’다. 40층으로 뻗어 있는 아파트에는 대개 부유한 전문직 종사자들이 살고 있다. 신설 의과대학 생리학과에 부교수로 부임한 랭 박사(톰 히들스턴)는 고요하고 단절된 생활을 꿈꾸며 하이라이즈로 이주해온다. 하지만 어느 주말 아침, 그의 집 발코니 너머로 날아들어온 유리병과 함께 그 기대는 깨져버린다. 이른바 ‘하이라이프’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리는 파티와 일상처럼 흔한 정전의 연속이다. 중간층에 거주하는 랭은 그 분별없는 생활 속에서 점점 더 깊어지는 상층부와 하층부간의 반목을 목격한다. 결국 갈등은 몇몇 사건으로 터져나오고 이와 함께 건물이 제공하는 완벽한 서비스와 탁월한 사생활 보장 시스템은 허물어지기 시작한다.
영화는 살고 있는 층수에 따라 입주자의 계급이 나뉘는 아파트 공간을 통해 계급화된 사회를 은유한다. <설국열차>(2013)가 같은 컨셉을 수평의 기차에 옮겨놓았다면 <하이-라이즈>에선 수직의 공간으로 계급을 그대로 형상화한다. <설국열차>가 반란군 리더의 시점을 중심으로 한다면 <하이-라이즈>에서는 중간계급의 시점을 따르되 후반부로 갈수록 하층부에서 진격하는 자와 상층부에서 관망하는 설계자의 시점을 모두 흡수한다. 영화는 J. G. 밸러드가 쓴 동명 소설과 같은 호흡으로 나아가며 원작을 세심하고 꼼꼼히 재현하는 데 힘쓴다. 초반에는 하이라이즈만의 독특한 생활 방식을, 중반 이후엔 계층간의 대립으로 황폐화된 공간과 사람들을 묘사하는 데 공을 들인다. 그 과정에서 모든 면이 거울로 된 엘리베이터, 중세의 저택과 현대식 건축이 한데 위치한 설계자의 거주공간 등 독특한 공간들이 매혹적인 비주얼로 카메라에 담긴다. 하지만 지옥도와 다름없는 풍경을 묘사하는 데 치중한 나머지 정작 계급을 대변하는 인물들의 내면이나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사건의 동기에 대한 묘사는 충분치 않다. 랭 박사의 말대로 ‘열광, 나르시시즘, 정전’으로 점철된 미래의 공간과 그곳에서의 삶을 그대로 전시하는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