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이것은 한 여성의 상상 혹은 실제이다 <블라인드>
2016-03-30
글 : 김소희 (영화평론가)

이것은 한 여성의 상상 혹은 실제이다. 잉그리드(엘렌 도리트 페테르센)는 시력을 잃어간다. 그녀는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은 사물들을 하나하나 그려보기 시작한다. 이를테면 나무의 결, 셰퍼드 같은 것. 그러나 공간을 정확히 인지하기란 어렵다. 칩거 중인 잉그리드에게 남편 모튼(헨릭 라파엘센)은 밖으로 나갈 것을 권하지만 그건 그녀의 상황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집마저도 그녀에겐 안락한 곳이 아니다. 아무리 손으로 더듬어 공간을 익힌 뒤라도 다시 가보면 늘 어딘가에 부딪히고 만다. 그녀의 집 건너편에는 포르노 영상에 탐닉하는 성도착자 에이너(마리우스 콜벤스트벳)가 산다. 에이너는 어느 날 창밖으로 잉그리드의 집을 훔쳐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곳에는 잉그리드가 아닌 엘린(베라 비탈리)이 있다.

시각장애인을 주인공으로 세운 작품에서 이따금 화면을 뿌옇게 처리하는 경우를 볼 수 있다. 주인공의 비전을 관객이 그대로 느끼게 하려는 것인데, 이제는 너무 흔해져 그저 클리셰의 일종으로 받아들여질 뿐이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비전을 관객이 그대로 느끼게 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 영화는 관찰자적인 위치에서 주인공의 행위를 지켜본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 가학적이라고 느껴지진 않는다. 왜냐하면 주인공 역시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것들을 지켜보기 때문이다. 영화의 시선과 주인공의 시선이 뒤엉키면서 영화가 보여주는 것이 감독의 시점인지, 주인공의 시점인지 어느 순간 헷갈리게 된다. 각본가 겸 감독 에스킬 보그트의 첫 장편 연출작이다. 2014년 베를린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진출작이며, 선댄스영화제 각본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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