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할리우드 천재 작가 돌튼 트럼보의 ‘영화 같은’ 실화 <트럼보>
2016-04-06
글 : 이화정

정치적 이유로 11개의 가짜 이름으로 활동해야 했으며, 그중 <로마의 휴일>(1953)과 <브레이브 원>(1956) 같은 명작으로 2번이나 아카데미상을 수상했지만 13년 동안 작품 활동을 금지당하고 숨어 활동하다가 무려 40년이 지난 1993년에야 트로피를 찾게 된 할리우드 천재 작가 돌튼 트럼보의 ‘영화 같은’ 실화를 그린 작품이다. 모든 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에 닥친 매카시즘의 광풍 때문이었다. 1947년, 미국 정부는 국가를 전복하려는 음모를 꾸민다는 이유를 들어 공산당원들을 청산하기 위한 반미활동조사위원회(HUAC)를 조직하고 41명의 증인을 청문회에 소환한다. 동료 작가, 감독들과 규합한 돌튼 트럼보는 공산당원 활동 여부를 묻는 질문에 답변을 거부해 의회모독죄로 기소되었고 ‘할리우드 10’으로 낙인찍히며 작품 활동을 금지당한다.

<트럼보>는 작가 트럼보라는 한 개인의 미시사를 통해 할리우드의 암흑기, 더 나아가 미국 정치의 흑역사를 조망한다. 특히 할리우드 내에 반공주의 물결을 일으켰던 이들에 맞선 트럼보의 수난사에는 당시 할리우드 상황이 그물망처럼 엮여든다. 영화는 소신을 굽히지 않아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트럼보와 그 협조자들의 용기를 치하한다. 하지만 트럼보를 할리우드영화 속 영웅으로 그리는 데만 그치지 않는다는 데 영화의 핵심이 있다. 트럼보는 유머러스하고 관대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신경질적이고 까다로우며, 권력 앞에 힘을 못 쓰는 약자다. 좋은 사람도, 나쁜 사람도, 승자도 패자도 없는 당시의 ‘싸움’에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어야 했다.

각본을 쓴 존 맥나마라는 <로마의 휴일> 각본가로 트럼보에게 이름을 빌려준 이안 매켈런 헌터에게 각본 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트럼보의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껴 시나리오를 썼다고. 이후 트럼보의 두딸이 시나리오 완성에 도움을 주어 디테일은 풍성해졌으며, <미트 페어런츠>의 감독 제이 로치의 연출로 자칫 무겁게 처질 법한 극의 전개에 유머와 속도가 더해졌다.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 시리즈로 각인된 브라이언 크랜스턴이 트럼보를 연기한다. 트럼보의 독특한 습관이 반영된 영화 속 캐릭터는 실제 트럼보가 봐도 손색없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매력적으로 그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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