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김영진의 영화비평] 비극의 시대를 비웃다
2016-04-12
글 : 김영진 (영화평론가)
1950년대 할리우드영화가 잃어버린 것들을 유쾌하게 기리는 <헤일, 시저!>
<헤일, 시저!>

국내에 번역 출간된 하스미 시게히코의 평론집 <영화의 맨살>에는 ‘영화는 어떻게 죽는가- 할리우드의 50년대’라는 글이 실려있다. 강연을 풀어낸 이 글의 주제는 코언 형제의 신작 <헤일, 시저!>와 크게 통하는 부분이 있다. 경쾌하게 조롱 섞인 긍정을 담은 이 희극 영화는 언뜻 영화 찬가의 외피를 두른 것처럼 보이지만 할리우드 전성기인 1930년대나 1940년대가 아니라 1950년대의 할리우드를 배경 삼았다는 점에서 이 당시에 영화가 죽어가고 있다는 쓰디쓴 진술을 담으려는 속내와 무관하지 않다. 1950년대 할리우드에서 다수의 실력 있는 영화인들은 매카시즘 광풍으로 실업자가 되거나 근신하며 남의 이름을 빌려 활동하지 않으면 망명해야 했다. 할리우드가 전무후무한 커다란 재능의 손실을 겪은 시기였다. 또한 텔레비전의 광범위한 보급으로 1년에 500여편을 주기적으로 생산하던 작업공정 구조가 훼손되면서 스튜디오 시스템이 무너졌으며 단단한 드라마보다는 대작 위주의 물량공세로 살아남기 위해 애쓰던 시절이었다.

영화의 죽음 이후의 영화적 관계 맺기

하스미 시게히코의 글은 이런 교과서적 사실 외에 또 다른 흥미로운 가설을 던진다. 고전기의 할리우드에서 활약했던 감독을 비롯한 영화인들은 아주 어려서부터 영화현장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학력이 없는 영화 전문인들로서 사회에 적응하기 힘든 불량배 같은 기질을 가진 개성의 소유자들이었다. 이들이 건설한 할리우드 고전기라는 황금기를 지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할리우드에 영입된 영화인들은 대학을 마친 고학력자들로서 영화에 관한 자의식을 갖고 영화를 대한, 좌파적 소양이 다분한 사람들이었다. 이를테면 조셉 로지나 엘리아 카잔 같은 감독들은 젊은 시절에 어떤 식으로든 공산주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었고 앞서 말했듯 매카시즘이 할리우드를 덮치자 이들은 영화를 찍기 위해서 타협을 하거나 망명을 택해야 했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표현에 따르면 이들과 같은 감독들은 ‘데뷔하자마자 영화를 빼앗겨버렸다’ . 조셉 로지는 망명했지만 엘리아 카잔과 같은 가난한 이민자의 아들은 동료들을 배신해서라도 미국에 남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망명하거나 변절했던 정치적 희생자들로 인해 영화의 죽음이 시작되었다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주장한다. “할리우드영화의 낙천적인 밝음은 이때 붕괴하기 시작했고 앞 세대에 비하면 교양과 지식이 있었던 그들은 할리우드의 낙천성을 재생산할 수 없었다. 완전히 새로운 작품으로 제작자에게 인정받을 수도 없었다. 일단 기존 장르를 이용하면서 거기에 사회비판을 집어넣는다는 전략을 취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알아볼 사람은 알 것이라는 식으로 영화에 상징적인 의미를 배치했고 반동적이기는 하지만 직업적 양심만은 갖고 있는 프로듀서에게 인정받으려면 연출 수완이 아주 뛰어나야 했다. 조셉 로지, 니콜라스 레이, 에이브러햄 폴란스키, 앤서니 만, 존 휴스턴 등의 감독들이 이런 전략을 취했지만 거세진 정치적 반동의 여파로 이런 미국영화의 새로운 흐름은 오래가지 못했다.” 조셉 로지, 에이브러햄 폴란스키 등의 감독은 미국에서의 경력이 끝났고 그보다 더 오래 버텼던 니콜라스 레이나 앤서니 만 등 재능 있는 감독들은 극단적인 대작 제작 경쟁의 도구가 되어 유럽에서 영화를 찍다가 알코올 중독으로 심신을 다쳐 할리우드에서 쫓겨난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1950년대에 서서히 죽어버렸던 영화에 대해, 영화의 죽음을 의식하고 영화를 찍었던 빅토르 에리세, 다니엘 슈미트, 클린트 이스트우드 등의 감독을 언급하면서 이들이 초기작을 찍었던 1973년의 영화들을 언급하는데 그의 분석이나 예언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빨갱이 사냥의 시대에 풍속적인 흥미나 정치적인 분석 외에 그때 문화로서의 영화가 무엇을 잃고 그 상실이 지금까지 어떻게 심각한 상처가 되어 남아 있는가에 대해 대다수가 충분히 의식하고 있지 않다. 영화역사가 어떠한 희생을 누군가에게 강요한 탓에 지금 자신들이 있다는 자각이 희박하다. 더글러스 서크, 프리츠 랑, 로버트 시오드막 등이 할리우드에서 차례로 사라졌다. 그들이 미국영화에 무엇을 주었는지 미국의 누구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정도로 귀중한 인재가 일거에 어떤 나라를 떠나는 일은 없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에리세와 슈미트와 이스트우드의 초기 영화들이 영화의 죽음을 확실히 자각한 채 지금 영화를 찍고 있는 자신들은 누구인가를 영화로 질문한다고 평한다. 영화의 죽음을 목격한 사람에게 영화와 관계 맺는 것은 어떻게 가능한가를 묻는다는 것이다. 영화가 죽었으니 불행하다고 자각하는 이들 세대의 감독은 섬세하고 특이한 전략으로 1950년대까지 쌓아온 할리우드적인 여러 기법들을 자기들 영화에 원용하면서 기후 자체를 어떻게 포착할 것인가, 지평선을 어디에 배치할 것인가와 같은 영화의 기본적인 문제들을 할리우드 고전에서 어떻게 배웠고 어떻게 감사의 마음을 표현해야 하는가라는 자각이 확실히 드러나는 윤리적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하스미 시게히코는 말한다. 무려 1985년에 행한 강연 원고를 여기서 길게 인용하는 게 시대착오적이고 영화광적 단호함이 지나치다고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하스미 시게히코의 ‘죽음을 끌어안은 영화의 현재를 성실하게 사는 것’이라는 명제는 곰곰이 새겨볼 만한 것이다. 코언 형제의 <헤일, 시저!>가 그런 명제를 정색하고 끌어안은 영화라는 건 아니지만 할리우드영화의 위대한 고전적 완성기를 지나 자체의 미학적 토대가 무너진 채 죽어가던 1950년대를 작품의 시대배경으로 삼은 이유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명제와 아주 무관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엉뚱함으로 무장한 코언식 유머

이 영화의 주인공, 캐피털 픽처스 피지컬 프로덕션의 수장 에디 매닉스(조시 브롤린)는 반동적이지만 수완이 좋은 프로듀서다. 그는 하루를 분, 초 단위로 나눠 쓸 만큼 바쁜데 그의 일은 주로 상상하기 힘들 만큼 기벽이 심한 할리우드 스타들의 사건 사고를 조용히 처리해주거나 촬영현장에서 벌어지는 온갖 마찰과 위기를 강온 양면 전략을 구사해 원만하게 무마시키고 어떻게든 작품이 완성되게 하는 일이다. 이 영화에서 에디 매닉스가 당면한 가장 큰 난제는 대작 <헤일 시저: 그리스도의 삶> 촬영 중 납치된 베어드 휘트록(조지 클루니)을 찾는 일이다. 베어드는 할리우드의 공산주의 비밀 결사단체인 ‘퓨처’(미래) 회원들에게 납치된 것인데 베어드는 종일 그들의 강의를 들으며 하루 사이에 어느 정도 의식화된다. 어느 대학교수의 자문을 받고 할리우드 일급 뮤지컬 스타인 버트 거니의 지휘를 받는 그들 비밀 결사단체 회원들은 주로 시나리오작가들이며 자신들이 얼마나 자본주의를 혐오하고 영화를 통해 그들의 반자본주의적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파시켰는지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다. 코언의 카메라는 이들에게 동조하는 것도, 조롱하는 것도 아닌 거리감을 지키고 있는데 거기서 이상한 유머감각이 나온다. 그들은 베어드에게 신사적으로 굴지만 계몽적이며 위압적인 태도를 감추지 못하고, 혁명을 주장하는 그들의 언사와 행동은 추상적이고 나이브하다. 그들의 리더인 뮤지컬 스타 버트 거니는 급기야 회원들을 이끌고 인근 바다로 나가 그 혼자만 소련 잠수함을 타고 망명하는데 버트 거니를 배웅하는 ‘퓨처’ 회원들의 비장한 면면들은 미래를 견인할 만큼 강인해 보이기는커녕 연약하고 우스꽝스러울 뿐이다. 잠수함이 입수하면서 크게 넘실대는 파도 때문에 그들이 탄 조각배가 위태롭게 갸우뚱거리고 그들이 배 안에서 허둥대는 모습은 이들의 연약함을 점잖게 조롱한다.

‘퓨처’ 회원들에게 살짝 의식화된 채 돌아온 베어드는 자신이 배운 것을 전파하려고 하지만 즉각 싸늘한 대접을 받는다. 베어드가 에디 매닉스에게 자본의 추악함을 비난하는 언설을 앵무새처럼 읊을 때 에디 매닉스의 반응은 짧고 단호하다. 에디는 베어드의 뺨을 세차게 몇 차례 갈기고는 너를 스타답게 살 수 있게 해주는 투자자의 은혜를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헛소리 말고 빨리 촬영장으로 복귀하라는 에디의 명령에 베어드는 직전의 호기를 잃고 순한 양처럼 복종한다. 베어드의 촬영장 이탈 소식을 가십 칼럼에 써먹으려는 삼류 저널리스트에게도 에디는 빨갱이 협조자가 될 거냐는 단순한 협박으로 효과를 본다. 이렇게 모든 일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에디는 자신과 관련된 일에선 결정장애를 갖고 있으며 남들이 보기엔 사소하지만 자신에게는 절실한 강박을 갖고 있다. 매일 신부를 찾아가 고해성사를 하는 그는 금연 결심을 실행하지 못하는 자신의 의지박약을 자책하며 항공사로부터 거액의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도 마음을 정하지 못해 헤맨다. 베어드 사건을 해결할 즈음 에디는 다시 신부를 찾아가 항공사 스카우트 제안을 고민하는 자신의 심경을 밝히는 데 옳다고 믿는 일을 하면 신이 함께할 것이라는 신부의 충고에 영화사 일을 계속하기로 굳게 결심한다. 신이 지켜보는 가운데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에디의 믿음은 물론 상대적인 것이다. 엄밀히 말해 항공사 취업과 영화사 일을 계속하는 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에디는 스튜디오 책임자이지만 동시에 사장의 분부를 받는 피고용인이기도 하다. 뉴욕에 있는 보스에게서 온 전화를 받을 때 그는 비굴하게 서서 마치 보스가 앞에 있는 듯 굽신거리며 지나친 예의를 보인다. 베어드의 의식화 연설에 그가 그토록 단호한 것도 투자자의 입장을 대변한 것이었다.

진보 인텔리 물을 먹은 ‘퓨처’의 시나리오작가 회원들이나 자본주의의 당당한 시종인 에디 매닉스나 어딘가 허물어져 있고 기댈 데 없는, 영웅적인 면이 전혀 없는 인물들이고, 이 영화의 희극적 뉘앙스가 이런 인물들로부터 배어나오지만, 이 영화의 다른 등장인물들도 대체로 그렇다. 코언의 은근슬쩍 코미디는 심지어 에디 매닉스가 <헤일, 시저!>에 관한 종교적 자문을 구하기 위해 만나는 각계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에서 그들의 일관되지만 어이없는 장광설을 보여주는 대목에서도 빛을 발하는데 예수의 신성 여부를 두고 벌이는 그들의 논전은 그들의 위에 있는 신을 모독하기에 충분할 만큼 불경하고 그 때문에 우스꽝스럽다. 이런 우스꽝스러움은 방사형으로 가지를 치며 수중 뮤지컬을 찍다가 가스가 차서 스스로 컷을 외치는 스타 여배우가 임신한 아기를 몰래 출산했다가 입양하는 방법을 불법적으로 모색하다 그런 일을 처리해주는 전문가와 다시 바람이 나 번개처럼 결혼을 해버린다거나, 우아한 연출방식을 고수하는 일류 감독이 서부 액션 스타를 캐스팅해 그의 발연기를 보다 못해 저잣거리 상인처럼 짜증을 내며 이성을 잃어버린다거나, 고도로 양식화된 뮤지컬을 연출하는 유럽 출신 감독이 촬영 막간에 자신의 불륜 사실을 스웨덴에 있는 본처에게 알리지 말아달라고 제작자 에디 매닉스에게 부탁한다거나, 또는 러시아로 망명을 갈만큼 의식화된 뮤지컬 스타 배우가 촬영현장에선 자신의 머리를 만진 것에 항의하는 술집 주인 역의 배우를 가볍게 무시하는 행동을 한다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통해 형용모순의 어쩔 수 없는 지경에 대해 관객으로 하여금 웃음을 짓게 만든다.

사라진 ‘믿음’을 대신하는 기적의 순간

거듭 말하지만 이게 조롱은 아닐 것이다. 코언 형제는 그저 위대한 할리우드가 난처한 지경에 빠진 모습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거대 담론을 고민하는 지식인 영화인들이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떤 곤경도 직선으로 돌파하는 속물 프로듀서나 철없는 어린애 같은 행동으로 주변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지만 귀여운 구석이 있는 바보 같은 모습의 스타 배우들이나 지성과 수완을 갖고 있지만 막노동판 같은 영화현장에서 자신들의 스트레스를 다양하게 풀고 있는 감독들이나 저마다 모두 자기만의 곤경에 빠져 있다. 그걸 망원경으로 보면 서두에 밝힌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가 죽어갔던 시스템일 것이고 현미경으로 보면 저마다 각자의 함정에 빠진 과민한 신경의 소유자들이 빠진 집단 히스테리가 만연하는 장소일 것이다. 영화의 말미에 촬영장으로 복귀한 베어드 휘트록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앞에서 신앙 고백을 하는 클라이맥스 장면을 찍으며 명연기를 보여주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대사를 까먹는데 그가 떠올리지 못한 말은 ‘믿음’이었다. 신부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에디 매닉스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던 믿음이라는 말을 베어드는 하지 못한다. 피지컬 프로덕션의 리더 에디 매닉스가 했던 말을 잠깐 의식화됐던 베어드는 하지 못한다. 할리우드는 계속 존재할 것이고 그건 자본 덕분이겠지만 그 시스템 안에서 유약한 지성은 버티지 못할 것이고 영화인들의 반골기질은 각종 신경증으로 변질돼 전염병처럼 스튜디오 전체로 번질 것이다. 코언 형제는 이 비극을 코미디로 풀어내면서 프랑수아 트뤼포가 <아메리카의 밤>(1973)에서 잠깐 관객에게 보여줬던 마법, 온갖 사건 사고가 빈발하는 촬영장에서 기적처럼 아름다운 순간이 찍히는 마법을 조금 더 길게 실현하는 방법으로 영화에 대한 존중을 내비친다. 아주 공들여 찍은 수중 뮤지컬 장면과 바의 댄스 장면은 이 영화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만끽하게 하는 보너스 같은 것인데 전성기 할리우드의 극점에 달했던 장인정신을 오늘에 받들어 기리려는 코언 형제의 헌사일 것이다. 이 정도에서 더 나아갈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할리우드의 상실의 시대에 바치는 찬가

다시 하스미 시게히코의 얘기로 돌아가자면, 전성기의 할리우드를 지탱했던 건 다소 불량기가 있었던 사회적 반골들이었다. 그들은 영화의 표현 규범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만큼이나 무지막지했지만 영화에 애정이 있었던 스튜디오의 군주들과 끊임없이 싸웠다. 이런 반골기질은 할리우드 전성기의 거장들뿐만 아니라 전성기의 일본영화계에도 있었고 ‘영화는 사회에 끊임없어 흘려보내는 독’과 같은 것이라고 말했던 일본영화 쇠퇴기의 스즈키 세이준 같은 감독들에게도 있었다. 피터 보그 다노비치가 만든 존 포드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보면 스무살을 갓 넘긴 스티븐 스필버그가 반은퇴 상태였던 존 포드의 사무실을 방문했던 일화가 나오는데 잔뜩 얼어붙은 청년 스필버그에게 존 포드는 큰소리로 사무실 벽에 걸린 그림을 보고 느낀 점을 말하라고 한다. 단 1분간의 만남에서 스필버그가 존 포드에게 들은 훈계는 ‘저 그림에서 지평선이 어디 있느냐? 기억해라. 영화감독이 할 일은 지평선을 어디에 두느냐 결정하는 거야. 나가봐’라는 말이었다. 무엇을 어떻게 찍어야 할지 알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건달처럼 굴며 시스템에서 버티는 일을 해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힘을 잃었을 때 유약한 지성들이 할리우드를 접수했으나 그들은 얼마 후 속절없이 쫓겨났다. 재능의 공백을 겪으며 내부의 잠재력을 잃은 스튜디오가 이익의 보전을 위해 방황할 때가 할리우드의 1950년대였다면 그 시대를 슬프게 그리는 것 말고 영화에 대한 존중을 표하는 것으로 이만한 수위의 희극이 없다는 점에서 코언 형제의 재능에 다시 한번 수긍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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