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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여자 캐릭터들의 기운만으로 채운 긴장감
2016-04-14
글 : 문동명 (객원기자)
사진 : 백종헌
<심증> 준비하는 김태준 감독

가족에 의해 정신병원에 갇힌 여자 정연. 억울함을 호소해보지만 그녀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없다. 어느 날 밤 그녀는 같은 병실에 있는 심현이 다른 환자를 죽이는 장면을 목격한다. <인류멸망보고서>(2011),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2012), <감기>(2013), <좋은 친구들>(2014) 연출부, <오피스>(2014) 조연출 등 지난 4년간 꾸준히 영화현장에서 경험을 쌓아온 김태준 감독의 데뷔작이 될 <심증>의 시작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우수 크리에이터 발굴 지원사업’ 가운데 오퍼스픽쳐스와 진행한 ‘크리에이터의 한걸음’ 프로젝트에 선정된 <심증>의 시나리오는, 지난 2월 발표된 최종심에서는 제외됐지만 프로젝트에서 운영한 멘토링을 거쳐 괄목할 만한 진전을 자랑하며 선정작들 가운데 가장 먼저 영화화가 결정됐다. 올가을 촬영을 시작해 내년 초 개봉을 앞둔 <심증>의 김태준 감독을 만났다.

-다양한 상업영화 현장 경험을 쌓았다. 모두 다른 감독의 영화인데, 의도가 있었던 건가.

=학교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한 게 아니라서 다양한 감독님의 현장을 경험해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다. 처음엔 영화과 출신이 아니라 연출부에 들어가는 것조차 쉽지 않았는데 <감기>까지 상업영화 3편을 하다 보니 경험이 붙고, 아는 사람도 늘다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작품을 택할 수 있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현장이 있다면.

=시작부터 개봉까지 근 2년 동안 몸담았던 <감기>. 김성수 감독님이 연출부한테 일을 많이 시키는 편이다. 단순한 정리 업무뿐만 아니라 시나리오를 써보라 시키시고 여기는 이런 게 문제라고 직접 지도도 해주셨다. 학교 다니는 기분으로 작업했다.

-<심증>은 어떻게 시작한 작품인가.

=여자 연쇄살인마에 대한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냥 막 죽이는 게 아니고, 신념이 있고 감정적인 살인을 하는 여자. 잘못된 신념을 가진 자가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 그리고자 했다. 그리고 정신병원 강제 입원이라는 소재를 접하게 되고, 그들 대부분이 돈 때문에 가족에게 버림받는다는 현실을 덧붙였다.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가족이 먼저 발 벗고 이의를 제기하고 나서는데 그조차 없는 사람들이 죽으면 누가 신경이나 쓸까? 그런데 그런 그들을 돕고자 살인을 저지르는 사람이 심현이라는 인물이다.

-<심증>이 ‘크리에이터의 한걸음’ 프로젝트 최종심에서는 탈락했지만 결국 선정됐던 작품들 가운데 가장 먼저 영화화된다. 그사이 수정을 거치면서 시나리오에 대한 평이 확 좋아졌다는 게 요인이라고 들었다.

=처음에는 이야기가 무척 어두웠다. 소재를 그저 재미있게만 풀고 싶지 않아서 사회드라마적인 분위기를 더했는데 그게 오히려 잔소리처럼 주제를 전달하는 데 방해가 될 것 같더라. 그냥 재미있게 보고 나서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겠다는 자각을 던져주는 정도에 포인트를 두고 원래 하고 싶었던 스릴러를 강조하니 평가가 좋아졌다.

-선정작을 대상으로 여러 기성 감독들이 참여한 시나리오 멘토링 역시 도움이 됐을 것 같다.

=옆에 계속 의견을 나눌 사람이 있으니 덜 지쳤다. 누군가와 얘기를 나누다가 자신의 시나리오의 이상한 점이 보이면 자연스레 작품을 변호하게 되는데, 대화를 하다보니 변호가 변명이 되는 순간이 오더라. 그렇게 기존의 방향을 완전히 버리고 스릴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초고는 심현에게 너무 치우쳐 있어서 그에 맞서는 정연을 입체적으로 만드는 과정이 필요했고, 이는 <좋은 친구들>의 이도윤 감독님에게 도움을 받았다.

-대개 영화에서 연쇄살인마는 세간의 이목을 끌게 돼서 주인공뿐만 아니라 세상 모두가 그를 주시하는 경우가 많다. 심현은 분명 그런 사람이 아니다. 철저히 개인의 사연에서만 기능한다. 기존의 스릴러를 비틀려는 의지인가.

=연쇄살인마가 등장하면 반대편에 형사가 대치하는 구도가 대부분인데 <심증>은 피해자와 살인마의 구도로만 달려간다. 여자들이 서로 부딪히고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형사의 역할은 상황만 살짝 정리해주고 중심에서 빠져 있다. 아무래도 신인이니까 의식적으로 컨벤션에 비껴서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곤 한다. 그러는 한편 “새로운 시도를 괜히 안 하는 건 아니구나” 할 때도 있다. (웃음)

-<심증>은 여성 캐릭터가 전반을 차지하는 영화다. 데뷔작으로 여성이 주가 되는 영화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까.

=남자 살인마가 여자를 죽인다면 그 자체로 폭력적이고 단순해 보인다. 심현이 사람을 죽일 때 칼로 찌르고 때리는 게 아니라 목을 매단 후 그 위에 올라타서 안아주는 모습으로 죽이는데, 그 형상이 감정적인 살인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한국영화에 여자 캐릭터가 너무 없다는 점 역시 염두에 뒀다. 정연이 갇힌 정신병원에서 그녀를 도와주는 사람들도 다 여자니까 배우진 전반을 아예 여자로만 배치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외국의 멀티 캐릭터영화들 보면 예고편 끝에 배우 이름만 나오지 않나. 여자배우 중에 연기 잘하는 사람이 다 모였구나, 하는 인상을 주고 싶다. 여자 캐릭터들이 무력, 욕설, 무기 없이 오로지 그들의 기운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하는 영화를 만들겠다는 야심이 있다.

-시나리오를 본 여자들의 피드백 중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정신병원에서 억울하다고 악다구니치는 정원을 보면서 관객이 그녀의 존재를 의심하도록 만든 미스터리한 버전이 있었는데, 여자들은 그걸 보고 전혀 미스터리하다고 생각지 않더라. 그저 남자가 여자를 병원에 가뒀기 때문에 그녀는 이미 피해자라는 거다. 그래서 그런 트릭 없이 묵직하게 직진해야겠다는 방향을 정했다.

-영화 작업을 이어오면서 늘 마음에 품는 작품은 무엇인가.

=고등학생 때 크리스토퍼 놀란의 <메멘토>(2000)를 보고 한동안 스릴러만 팠다. 스릴러를 워낙 좋아해 <심증> 외에 써놓은 이야기들도 죄다 어둡다. (웃음) 서사에 조금만 밝기를 줘도 스스로 좀 민망해서 못 견딘다. 따뜻한 영화 보는 것도 좋아하지만 만드는 건 내 몫이 아닌 것 같다. 놀란의 <미행>(1998)도 좋아한다. 매일 한명씩 미행해서 그의 집에서 무언가를 하나씩 들고 나와서 수집하던 사람이 어느 날 누군가에게 자기 존재를 들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기행을 꾸준히 해오던 자가 다른 사람을 만나 전혀 다른 국면이 펼쳐지는 긴장감이 좋다. 지금껏 아무도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던 살인을 정연이 목격하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심현이 폭주하게 된다는 <심증>의 골격도 이와 꽤 닮았다.

-‘감독 김태준’은 현장에서 어떤 사람인 것 같나.

=많은 이들이 “쟤하고 하면 힘들 거야”라고 말한다. 일할 때 과할 만큼 꼼꼼히 한다. 그래서 사실 조감독은 안 하려고 했다. 연출부는 자기 파트만 딱 준비하면 되는데, 조감독은 예산적인 면이나 전체적인 스케줄 등 현실적인 부분을 너무 많이 알게 된다. 현장을 잘 아니까 대비하고 준비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한계를 알고 하고 싶은 걸 지레 타협하기도 한다. 촬영할 때 감독이 무턱대고 독단적으로 오케이하거나 이상한 걸 요구하면 곧장 스탭들은 웅성댄다. 그런 것 없이 모두가 자기 파트에서 치열하게 고민하고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현장에 애정이 식으면 결국 자기 할 일만 하게 된다. 스탭들이 이 영화에 애정을 갖고 함께한다는 느낌을 주면 자연히 그런 분위기는 만들어질 거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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