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가족이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 <철원기행>
2016-04-20
글 : 김성훈

고등학교 선생님인 아버지(문창길)의 정년 퇴임식 날, 어머니(이영란), 결혼을 앞둔 큰아들 커플(김민혁, 이상희), 작은아들(허재원) 등 각자 따로 떨어져 살고 있던 가족들이 강원도 철원에 모인다. 달랑 학생 몇명만 참석한 퇴임식이 끝난 뒤, 저녁 식사 자리에서 아버지는 “(어머니와) 이혼하겠다”고 선언한다. 이 얘기를 들은 어머니는 당혹스러워하고, 자식들은 또한 불편해한다. 마침 폭설이 내린 탓에 버스 운행이 멈춰 가족은 2박3일 동안 아버지의 관사에서 머물기로 한다. 아버지의 돌발 선언 때문에 가족들의 분위기는 살얼음판이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고, 형은 집안 분위기를 신경 쓰지 않는 동생을 못마땅해 한다. 신경이 예민해진 어머니는 신경질을 부리고, 며느리는 시댁 가족의 눈치를 보다가 지쳐간다.

<철원기행> 속 가족은 서로를 잘 알고 있다고 믿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각자의 인생을 사느라 미처 신경 쓸 겨를이 없어 서로에 대한 기억이 과거에 머물러 있다. 아버지가 “이혼하겠다”고 폭탄 선언했을 때 가족들은 그제야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해한다. 감자를 두고 어머니와 며느리의 말도 다르다. 어머니는 “큰아들은 어릴 때부터 감자를 좋아했다”고 말하는 반면, 며느리는 “우리 오빠는 감자를 잘 안 먹는다”고 얘기한다. 이처럼 2박3일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그들에게 어색하고 불편한 순간이 수시로 끼어든다. 특히 여러 차례 등장하는 식사 장면은 가족간의 불편한 감정을 세세하게 드러내 지켜보는 사람이 소화가 안 될 정도다. 식사 장면을 통해 부자, 부부, 형제, 고부간의 갈등이 하나씩 드러난다.

하지만 이 영화는 가족의 위기나 균열을 다루는 작품이 아니다. 가족이기에 무심코 지나쳤던 일들을 함께 지내면서 조금씩 알아가는 것만으로도 관계의 진전에 의미가 있다고 말하려는 듯하다. 순백색의 눈으로 뒤덮인 철원의 풍경이 아버지의 뒷모습과 겹치면서 꽤 쓸쓸해 보인다. 김대환 감독의 첫 장편 연출작인 <철원기행>은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DGC) 졸업작품으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커런츠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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