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1980년대 후반 뉴욕의 인디 음악신 <일만명의 성자들>
2016-04-20
글 : 문동명 (객원기자)

<아메리칸 스플렌더>(2003), <내니 다이어리>(2007) 등 유쾌한 드라마를 연출해온 샤리 스프링어 버먼, 로버트 풀치니 감독이 다소 어두운 1980년대 이야기로 돌아왔다. 버몬트에서 양어머니와 함께 사는 16살 소년 주드(아사 버터필드)는 친구 테디(에반 조지아)와 함께 본드를 불고 동네를 떠나 뉴욕으로 갈 궁리를 하며 시간을 보낸다. 어느 날 주드와 떨어져 사는 아버지 레스(에단 호크)가 애인의 딸 일라이자(헤일리 스타인필드)를 버몬트로 보내고, 세 사람은 함께 신년 파티에 참석한다. 괜한 오해를 산 주드가 바깥에서 얻어맞고 있는 사이, 테디와 일라이자는 섹스를 나눈다. 테디는 뉴욕으로 돌아가는 일라이자에게 형 자니(에밀 허시)를 찾아달라고 부탁하고, 주드와 함께 프레온을 흡입하다가 죽고 만다. 자기 때문에 테디가 죽었다고 괴로워하던 주드는 레스를 따라 뉴욕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테디의 아이를 가진 걸 알게 된 일라이자는 주드를 차갑게 대한다.

<보이후드>(2014)에서 분방하고 따뜻한 아버지 역을 소화했던 에단 호크는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역할을 소화하며 작품으로 들어오는 입구를 잘 닦아놓는다. 처음엔 주드가 뉴욕에서 아버지와 살며 테디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을 극복해나가는 성장기처럼 보이던 <일만명의 성자들>은 주드 주변의 많은 인물들에게도 비중을 더하며 점점 의외의 방향으로 흘러간다. 특히 아이를 임신한 일라이자에게 이야기의 무게가 실리면서 주드가 쥐고 있던 구심점이 금세 흐트러진다. 자니가 아이의 아버지를 자청하고, 임신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라이자 엄마와의 갈등이 겹치는 과정을 지나면 임신에서 출산으로 이어지는 흐름만 도드라질 뿐이다. 세 청춘이 처음 만난 하루에 벌어진 사건들로 인해 얻게 된 상처를 주드의 짝사랑으로 서둘러 봉합하려는 시도는 아쉽다.

미약하게나마 1980년대 후반 뉴욕의 인디 음악신을 배경으로 삼은 <일만명의 성자들>은 당시를 풍미한 록 음악들을 곳곳에 배치했다. 리플레이스먼츠, 큐어, 필리스, 배드 컴퍼니, R.E.M. 그리고 엔딩을 장식하는 <Waterfall>의 스톤 로지스까지, 벼린 감식안으로 고른 티가 역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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