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씨네인터뷰] 멜로도 잘하지 말입니다 - <태양의 후예> 진구
2016-04-27
글 : 장영엽
사진 : 오계옥
드라마 <태양의 후예> 진구

“10년이다! 이제 좀 뜨자!” 배우 진구의 데뷔 10주년을 축하하는 팬클럽 현수막을 본 적이 있다. “우리가 그런 사이다. 얼마나 격의가 없으면 배우에게 ‘이제 좀 뜨자’라고 하겠나. (웃음)” 만약 진구의 팬클럽이 데뷔 14주년을 맞는 이 배우의 현수막을 올해 새롭게 만들 예정이라면, 그곳에는 ‘이제 됐다!’라는 말이 적혀 있진 않을는지.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서대영 상사는, 오랫동안 좋은 눈빛과 안정적인 연기력을 지닌 배우로 평가받아왔던 진구의 스타성과 대중성을 전세계 시청자에게 입증한 작품이 됐다. 유시진 대위(송중기), 강모연 팀장(송혜교)에 비해 분량은 적었지만, 하늘 같은 상사의 반대를 무릅쓰고 그 상사의 딸, 윤명주(김지원)에 대한 지고지순한 연정을 이어가는 서대영의 모습은 ‘송송 커플’(유시진-강모연)의 입지를 위협할 정도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지난 13화에서 ‘구원 커플’(서대영-윤명주)이 첫 키스를 하는 장면은 분당 최고 시청률을 기록했을 정도다. <비열한 거리>(2006)의 조폭, <마더>(2009)의 동네 건달, <26년>(2012)의 해병 출신 행동대장, <명량>(2014)의 탐망꾼 등 남성적이고 선 굵은 연기로 이름을 알려온 진구에게 드라마 <태양의 후예>는 ‘멜로도 잘하는 배우’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안겼다. 종방을 앞두고 곧 중국으로 출국하는 진구를 만나 물었다. 이 드라마는 당신에게 어떤 것들을 남겼습니까.

-4월14일, 중국으로 출국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드라마 <태양의 후예> 마지막회는 아마도 중국에서 보게 될 거다. 종영을 앞둔 지금 어떤 생각을 하나(이 인터뷰는 4월12일에 진행했다).

=처음에는 ‘중박’ 정도만 나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촬영하면서 배우들, 스탭들이 너무 고생을 많이 해서, 그렇게 고생한 만큼 좋은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거든. 김은숙 작가님 말씀을 들어보니 목표한 시청률은 20% 정도였다고 하더라. 배우들은 10% 중반 정도를 예상했다. 그런데 그 두배에 가까운 수치를 기록해버리니 시청자 입장에서도 흐뭇한 마음으로 방송을 볼 수 있었다. 이 작품 덕분에 개인적으로도 좋은 소식들이 들리고, 고마운 작품이다.

-일반 대중의 반응을 실감하고 싶어 얼마 전 SNS를 개설했다고 말했다. 바라던 대로 그 반응을 실감했나.

=그렇다. 처음에는 SNS에 익숙지 않아 조회 수, 팔로 수가 얼마나 많아야 반응이 좋은 건지 감이 잘 안 오더라. (웃음) 그러다가 드라마 중반부가 넘어가면서부터는 탄력을 받는 게 확실히 느껴졌다. 지금은 SNS뿐만 아니라 어딜 가더라도 반응을 실감한다. 특히 얼마 전 모 방송에서 진행했던 게릴라 데이트가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억에 남는다. 사람들이 안 오면 창피할 것 같다는 생각에 정말 걱정을 많이 했는데, 데뷔 이래 가장 많은 분들이 나를 보러 와주셨더라. 드라마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처음으로 크게 실감한 순간이었다.

-<태양의 후예>에 출연하게 된 건 다소 갑작스러운 계기에 의한 것이었다고 들었다. 그 사연이 궁금하다.

=제작사인 바른손의 서우식 전 대표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었다. 영화 <마더>를 바른손에서 제작했거든. 그분이 새로운 작품을 준비하는데, 그때까지만 해도 군인이 등장한다는 얘기는 하지 않았고 재난 현장을 배경으로 ‘국경 없는 의사회’의 활약을 다루는 작품이 될 거라고 하더라. 일본 드라마 <의룡>을 시즌4까지 챙겨볼 정도로 무척 재밌게 봤는데, 그 작품 주인공이 국경 없는 의사회 출신이었다. 그래서 줄거리만 듣고도 출연 욕심이 나더라. 하지만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미 논의되고 있던 배우들이 있었고, 내 손을 떠난 작품이라 생각해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정말 갑작스럽게 캐스팅이 됐다고 연락이 왔다.

-이 작품에 출연할 운명이었나보다. 처음 대본을 읽고 서대영이라는 인물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던가.

=그냥 남자, 그중에서도 무거운 남자. ‘무뚝뚝한’ 남자가 아니라, 무거운 남자라는 표현이 서대영에게 가장 적합한 것 같다.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아낄 줄 알고, 이기적인 마음에 다른 사람이 상처받을 만한 표현을 하지 않고, 굉장히 무게감 있게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나가는 그런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은숙 작가님의 글만 봐도 그게 느껴졌었다.

-김은숙 작가는 서대영이라는 인물을 어떻게 연기했으면 하던가.

=별다른 주문은 없었다. “그냥 너처럼 하면 돼”라고 하시더라. 서우식 대표님의 소개로 예전부터 김은숙 작가님을 알고 지냈고, ‘누나’라고 부르며 술자리에서도 자주 뵙는 사이였다. 내가 막상 김은숙 작가님 앞에서는 무겁지 않은 모습이었다. 애교도 부리고 장난도 잘 치고, 오히려 <태양의 후예>의 유시진 대위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처럼 연기하면 된다고 하셔서 촬영 초반에는 약간 가벼운 느낌으로 서대영을 연기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두 장면 정도는 재촬영했다.

-그게 어떤 장면이었나.

=복도에서 윤명주에게 경례하는 장면, 그리고 과거 회상 신이었던, 명주와 함께 술을 마시며 ‘부러우면 지는 겁니다’라고 했던 장면. <태양의 후예>에 출연하며 가장 먼저 촬영했던 두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서대영이라는 캐릭터를 어떤 느낌으로 풀어야 할까 고민을 좀 했는데, 그래도 배우 생활 14년 동안 배운 게 있다면 ‘눈치’가 아닐까 싶다. (웃음) 현장에서 감독님 반응을 쓰윽 보고 마음에 들어 하시는 것 같을 때 ‘아, 이게 맞나보다’ 하고 감을 잡았다. 아마 나보다는 지원이가 마음고생이 많았을 거다. 네 배우(진구, 김지원, 송중기, 송혜교) 중에서 가장 연차도 적고 나이도 어린 친구였으니까. 심지어 나이는 파티마로 출연한 외국 소녀를 제외하면 <태양의 후예>에 출연한 전체 배우들을 통틀어 가장 어렸다. 그랬는데 어떻게 보면 등장인물 가운데서도 가장 강인한 여성을 연기해야 했으니, 고민이 많았을 거다. 현장에서 눈물 흘리는 모습을 많이 봤고, 혜교와 중기가 힘을 많이 줬던 것 같다.

-서대영이라는 캐릭터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 중 남성 시청자가 가장 공감하는 캐릭터인 것 같다. 판타지적인 요소가 가득한 이 드라마 가운데서도 가장 현실에 발붙이고 있는 인물이라는 생각도 들고. 이 작품 속에서 서대영이라는 인물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나.

=딱히 생각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태양의 후예>는 대본이 완벽한 작품이었다. 캐릭터를 이해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들이 글에 담겨 있는 작품이었다고 할까. 보통 내가 연기하는 인물이 잘 납득이 되지 않거나 대사가 입에 잘 붙지 않는 대본이 있으면 작가님, 감독님을 찾아가 이것저것 묻고 상의를 많이 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처음부터 대본이 입에 정말 잘 붙었다. 누군가는 서대영이 명주에게 하는 말이 오글거린다고도 하더라. 그런데 나는 진심으로 그 대사들이 하나도 오글거리지 않았다. 물론 ‘너에게서 도망쳤던 모든 시간을 후회했겠지’ 이런 대사를 일상적으로 쓰지는 않는다. 하지만 서대영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말을 했을 것 같다.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가 사령관이다. 서대영은 둘 사이의 관계를 허락받지 못했기에 늘 죽음의 전장으로 여자를 피해 도망다녀야 하는 처지다. 그런데 사랑하는 여자를 오랜만에 만나 우연히 딱 한마디만 할 수 있다면? ‘내가 말이야, 할 말이 있었는데…’ 이렇게 얼버무릴 시간은 없었을 거다. 그 여자에게 말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너무 소중하기 때문이다.

-해군 헌병 출신이다. 해군에 복무했던 경험이 서대영이라는 캐릭터를 준비하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 같다.

=맞다. 당시에 내가 있던 부대가 국방부였다. 남들이 보기 힘들다는 ‘스타’급 장군들을 하루에도 자주 봤다. 아마 하루에 보는 ‘별’만 세도 200, 300개 정도는 됐을 거다. (웃음) 그러면서 굉장히 엄격한 ‘상명하복’의 체계도 목격했고, 20대부터 50대까지 정말 수많은 부류의 군인들을 봤다. 그중에서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달려가는 남자도 있었고 진급이 누락돼서 좌절한 간부도 있었다. 아마 병사들만 있는 부대에서 복무했다면 이런 군대 문화에 대해 공감할 수 없었을 거다. 서대영이 군인다워 보였다면, 그건 아마 2년 동안의 해군 헌병 복무로 몸에 습득되어 있던 게 자연스러워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드라마 속 서대영을 보면서 <태양의 후예> 대본상 가장 ‘지문’이 많은 캐릭터가 아니었을까 짐작했다. 서대영은 대사가 아니라 표정으로 감정의 변화를 드러내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윤 중장의 명으로 고국으로 귀국한 뒤, 명주의 전화를 아무 말 없이 받는 장면이 대표적인 예다.

=지문은 모든 등장인물들에게 공평하고 간결했다. 아까도 말했듯 김은숙 작가님은 내 대사뿐만이 아니라 상대방의 대사만 보더라도 충분히 내가 지녀야 할 감정을 이해하게 하는 대사를 쓰시니까. 그런 장면에서는 마음속으로 대사를 한다고 보면 될 거다. 입 밖으로 마이크를 통해 대사를 전달하지 않을 뿐이지 상대배우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내가 대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계산되지 않은 어떤 얼굴의 움직임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

-윤명주 역의 배우 김지원에 대해 ‘내가 상상한 명주의 이미지는 아니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대본을 받고 상상한 명주의 캐릭터와 실제로 현장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김지원의 윤명주는 어떻게 달랐는지도 궁금하다.

=처음 대본을 받았을 때에는 굉장히 다부진 느낌의 여배우가 캐스팅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원이가 캐스팅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만나기 전까지는 지원이가 지니고 있던 쾌활하고 소녀다운 이미지 때문인지 명주가 다소 여린 느낌의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함께 연기해보니 그런 걱정을 단번에 해소할 만큼 당돌하고 당찬 모습을 보여주더라. 방송을 보니 지원이가 더 다부진 느낌으로 표현되고, 서대영이 오히려 생각한 것보다 더 여리게 표현될 만큼. 둘이서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진짜 많이 했다. 네 배우들끼리 따로 엠티도 갔었고, 술자리도 자주 갖고, 통화도 하며 캐릭터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눴다. 촬영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해야 됩니까”라며 매일 걱정하는 통화를 했었는데, 이 녀석이 너무 준비를 잘해왔더라고. 현장에서 캐릭터에 대해 걱정하고 고민할 필요가 없더라. 그 뒤로는 늘 지원이에게 칭찬만 했다.

-통화를 할 때에도 ‘다나까’ 말투를 쓰나.

=보통 선후배 사이에서도 ‘다나까’ 말투를 많이 쓰지 않나. 지원이가 워낙 예의가 바른 친구라, “선배님, 식사는 많이 하셨습니까” “어떻게 해야 됩니까” 등등 말할 때 ‘다나까’가 툭툭 튀어나온다.

-전작에서도 상대 캐릭터와의 멜로 라인이 존재한 적은 있지만, <태양의 후예>만큼 ‘멜로 잘하는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준 작품은 없었다는 생각이 든다. 멜로 장르를 대하는 나름의 접근 방식이 있었다면.

=지금까지 깡패 연기도 했고, 살인마를 맡기도 했었고, 지금은 사기꾼 역할로 영화 <원라인>(감독 양경모)을 촬영하고 있다. 그동안 그늘 속에 사는 범법자나 어두운 인물을 자주 연기했었다. 거기에 윤명주라는 존재를 하나 더했을 뿐,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서대영도 전작과 다름없는 캐릭터였다고 생각한다. 아마 <마더>의 진태의 사연에 사랑하는 여인의 에피소드를 덧붙였다면 지금과 비슷한 느낌으로 보시지 않았을까 싶다. 그리고 나도 37년 동안 사랑을 하고, 결혼도 한 사람이라 사랑하는 감정에 있어서 별다른 준비는 필요하지 않았다. (웃음)

-드라마 <올인>으로 데뷔한 지 14주년이 되었다. 묵묵히 배우로서의 길을 걷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대중의 긍정적인 반응이 앞으로 나아갈 힘을 북돋워주기도 한다. 대중의 주목에서 다소 벗어난 시기도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했었는지도 궁금하다.

=<태양의 후예>는 거의 ‘초대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그전까지도 나는 늘 중간타 이상은 쳤다고 생각한다. 홈런만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많은 분들이 오해 아닌 오해를 하시는 게 있다. 드라마 <올인> 다음 진구의 출연작이 <비열한 거리>인 줄 알고 그다음 작품이 <마더> <26년> <연평해전>, 그리고 드라마 <태양의 후예>가 있다고 생각하신다. 하지만 그동안 내가 출연했던 작품은 모두 스물두편이고, 어느 정도 스코어가 다 괜찮았다. 나에게 있어 흥행의 기준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건 못 받았던 간에 배우로서 그다음 작품의 제안이 들어오는지의 여부다. 관객수가 별로였던 작품에 출연했다 해도 누군가가 그다음 작품으로 나를 찾아준다면 흥행에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만약 드라마 <태양의 후예> 이후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다면, <태양의 후예>가 나에겐 졸작이 되겠지. 늘 다음 작품이 있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는 늘 후회 없는 행보를 걸어왔다고 생각한다.

-차기작 <원라인>에서는 어떤 모습을 기대할 수 있을까.

=40회차 정도 찍었는데, 이제 절반 정도 온 것 같다. ‘사기의 왕’이라고 부를 수 있을 만한 캐릭터다. 선과 악을 가장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매력적인 캐릭터라고 할까. 지금까지 14년 동안 작품을 해오면서 한번도 접해보지 못한 신종 캐릭터라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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