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
2016-04-27
글 : 문동명 (객원기자)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아르헨티나영화 <엘 시크레토: 비밀의 눈동자>(2009, 이하 <엘 시크레토>)의 할리우드 리메이크작. <헝거게임: 판엠의 불꽃>(2012), <캡틴 필립스>(2013)의 시나리오를 쓴 빌리 레이가 연출을 맡았다. 경찰 제스(줄리아 로버츠)의 딸이 어느 날 처참한 주검으로 발견된다. 동료 레이(치웨텔 에지오포)가 가까스로 범인을 잡지만 상부의 압력으로 범인은 풀려나고 결국 사건은 미제로 남는다. 레이는 FBI를 그만둔 후에도 13년간 매일 범인을 추적해왔고, 마침내 결정적인 단서를 발견하고 수사 재개를 주장하지만, 당국은 9•11 테러로 어지러운 세태를 구실 삼아 그의 수사를 막으려고만 한다. 과거 좋은 감정을 나눴던 차장검사 클레어(니콜 키드먼)마저 레이의 독자적인 조사를 못마땅해한다.

<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는 오래전 미제로 남은 사건을 다시 파헤친다는 설정을 제외하면 원작과는 거의 딴판으로 진행된다. 대부분 레이의 맹목적이고 외로운 사투에 집중하는 내러티브는, 제스와 클레어를 지극히 수동적인 위치에 놓은 채 범인을 쫓는 수사물로 진행시킨다. 레이가 사건에 집착하는 이유를 부연하기 위해 배치된 듯한 플래시백들이 계속되는 탓에 추적의 긴장감은 유지되지 않는다. 더불어 레이의 고군분투에도 수사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다는 점은, 미궁에 빠진 수사의 막막함보다는 자꾸 끓는점을 유보하는 듯한 전개로 느껴진다. <엘 시크레토>는 역사, 로맨스, 복수 등을 첨예하게 엮어낸 진중한 드라마로 뭇 영화 팬들에게 사랑을 받았다. <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는 그에 대한 흔적만 곳곳에 남겨놓았을 뿐 평범한 스릴러의 한계를 벗지 못한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군부 독재 시절의 탁한 공기는 9•11 테러 후 혼란한 상황이 특정 인물의 말로만 간간이 언급되는 걸로 대체됐다. 25년의 세월을 넘어 다시 이어지는 원작 속 주인공들의 사랑은, 리메이크작에서 변죽만 울리다 마는 ‘썸’ 수준에서 그친다. 범인을 잡는 과정을 끈질기게 따라가는 축구장 롱테이크는 <엘 시크레토>의 상징인 만큼 <시크릿 인 데어 아이즈>에서도 (야구장으로 공간을 바꿔) 재연되지만, 전혀 특별해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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