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수의 야간재생]
[김현수의 야간재생] <미니의 19금 일기> 소녀의 섹스를 위해
2016-04-29
글 : 김현수

앞으로 이어질 새 <스타워즈> 시리즈에서도 여성 캐릭터가 주연을 맡을 거라는 소식에 누군가가 이젠 같은 패턴이 지겹다고 댓글을 달았다. 2천년 전에도 존재했을 그 댓글이 달리거나 말거나 나는 <그랜마> <성난 군중으로부터 멀리> <미니의 19금 일기> 블루레이를 주문했다. 모두 공교롭게도 여성이 주인공인 영화인 데다 극장에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첫 연재의 소재로 <미니의 19금 일기>를 골랐다. 15살 소녀가 엄마의 남자친구와 첫 섹스를 한 뒤 벌어지는 내용을 다룬 영화다.

새벽 2시, 모두 잠든 후에 재생 버튼 클릭. 공원을 걷는 소녀의 엉덩이로 시작하는 영화의 배경은 1976년 샌프란시스코. 공원에서는 남자애들이 대마초를 피우고 있고 그 옆에선 반라의 여인이 애인과 사랑을 나누고 있다. 영화의 첫 대사는 “나 방금 섹스했다!” 처음 보는 여배우다. 아니, 굉장히 낯이 익다. 크리스티나 리치 닮은꼴? 아니면 클로이 머레츠? 그렇게 열심히 배우의 얼굴과 친해지려 하는데 그 순간 감독과 배우들이 참여한 코멘터리에서 “저기 아까 공원에서 벌거벗고 나온 여자 말이야. 내 전 남자친구의 애인이야”라고 누군가가 이야기한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주인공이자 올해 나이 열다섯인 미니가 벌써 엄마의 남자친구 손가락을 빨고 있는 게 아닌가. 미니는 그 남자를 예전부터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한번쯤 그런 마음을 품는 것과 그게 실제 섹스로 이어지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남자는 되묻는다. 정말 나랑 하고 싶어? 나이 차이는 차치하고 엄마의 애인 아닌가! 1970년대의 샌프란시스코는 그래도 되는 곳이었단 말인가! 싶은 사이에 벌써 일은 벌어졌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전화기를 붙잡고 친구에게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그녀, 영락없는 십대 소녀다. 괜히 부끄러워서 배우 벨 폴리의 나이를 검색해본다. 음, 1992년생이군.

미니의 엄마를 연기하는 배우는 크리스틴 위그.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SNL>) 출신으로 코미디 감각이 뛰어난 배우다. 주드 애파토우 사단 영화에서 종종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등장했고. 특히 폴 페이그 감독의 <내 여자친구의 결혼식>에서는 친구의 결혼식을 훼방놓는 질투심 많은 역할로 주목받았다. 그리고 폴 페이그가 리부트하는 <고스트 버스터즈>의 새로운 멤버다. 그런 그녀가 딸 앞에서 스스럼없이 대마초와 담배 연기를 마구 뿜어내는 히피 엄마 역할을 맡다니, 너무 좋다. 그녀가 연기하는 미니의 엄마는 막 사는 것 같지만 나름 착실하게 일도 하고 딸들에 대해서도 부모로서 노력을 기울인다. 밥 먹다가 갑자기 “나는 네 나이 때 장난 아니었는데?”라며 문란한(?) 일상으로의 초대를 은근히 부추기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끄떡할 미니인가요, 는 무슨. 이미 일은 벌어진 후인데.

첫 섹스의 순간을 사진으로 기록한 미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벌거벗은 몸을 보며 말한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지금은 너무 외로워.” 미니의 선택을 두고 왜 비슷한 또래의 남자를 만나지 않는 거냐고 태클을 걸 수 있다. 공교롭게도 미니가 섹스에 눈을 뜬 후에야 남자들이 그녀를 다시 보기 시작한다. 벨 폴리가 이 영화를 계약할 때 베드신에 대한 계약 사항이 모두 12장이나 됐다고 한다. 마리엘 헬러 감독은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는 장면 외에 벨 폴리의 신체가 노출된 장면은 모두 CG로 지웠다. 그 이야기를 옆에서 듣던 벨 폴리 왈, “감독님 그냥 저한테 전화를 한통 하시지”.

엔딩에 대해서는 자세하게 이야기하지 않겠다. 엔딩에 대해 생각할 때면 꼭 카메라의 마지막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를 생각해본다. 그것이 영화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니까. 만약 IPTV 직행용 영화였다면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것 같다. 예전에 강이관 감독의 <범죄소년>을 보면서도 느꼈던 점이긴 한데, 성숙한 사회일수록 누군가가 무턱대고 방아쇠를 당겨 자신의 영화를 끝내지 않도록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공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이라는 영화를 본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우린 어떤 결말을 원할까. 그런 생각을 하며 창문을 바라보니 사람들이 황급히 출근하고 있다. 이제 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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