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타]
“홍길동의 내면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했다” - 조성희 감독 인터뷰
2016-05-09
글 : 김성훈
사진 : 백종헌

-전작 <늑대소년>(2012)이 끝난 뒤 새로운 이야기를 구상하는 과정에서 홍길동을 떠올린 계기가 무엇인가.

=이 영화를 시작한 몇 가지 계기 중 하나가 캐릭터가 영화 전면에 부각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는 거였다. 예전부터 존 휴스턴의 <말타의 매>(1941) 같은 탐정물 냄새가 짙게 나는 영화를 해보고 싶었는데, 느닷없이 그런 이야기를 시작하기가 망설여졌다. 만화 캐릭터가 많은 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그런 캐릭터가 많지 않기도 하고. 의적의 느낌이 있는 홍길동을 새롭게 가공하기로 했다.

-홍길동은 어릴 때 겪은 사고의 후유증으로 8살 이전의 기억을 잃었다. 이 설정은 할리우드 히어로영화의 큰 콤플렉스를 가진 주인공과 닮았다.

=주인공이 자신의 근원을 찾는 설정은 <오이디푸스 왕> 같은 신화나 영웅 스토리에서 가져왔다. 이 영화는 홍길동이 진정한 영웅으로 거듭나고 자신이 누구인지 알게 되는 시점이 출발점이다. 영화가 잘돼서 시리즈로 나온다면 그 시리즈의 시작 같은 의미가 있다. (흥행이) 안 되면 잊혀지는 거지. (웃음)

-홍길동의 직업인 탐정은 누군가에게 의뢰를 받아 문제를 해결하는 일인데, 홍길동은 자신의 복수를 하기 위해 나선다. 홍길동에게 이런 사연을 부여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다.

=배트맨은 자기 부모가 눈앞에서 죽는 걸 지켜보지 않았나. 슈퍼맨 이야기도 고향 행성에서 시작됐고. 그렇듯 두 시간이라는 한정된 러닝타임 안에서 홍길동의 내면과 관련 있는 이야기를 하는 게 중요했다. 시나리오 초고는 지금보다 훨씬 개인적인 드라마였다. 지금처럼 규모도 크지 않았고.

-홍길동이 원수 김병덕을 놓치고 그의 손녀딸인 동이, 말순과 동행하는 순간 처음으로 긴장감이 생긴다. 주인공이 낯선 사람과 동행한다는 점에서 <남매의 집>(2008)이나 <짐승의 끝>(2010)과 연결되는 지점이 있다.

=만들다 보니까 낯선 사람과 같이 지내거나 동행하는 이야기를 만들어온 것 같다. 그게 드라마의 기본이기도 하고. 불편한 동행을 시작하되 나중에 좋은 결말을 맺는 이야기가 <탐정 홍길동: 사라진 마을>(이하 <탐정 홍길동>)에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다.

-오프닝 시퀀스에서 영화의 스타일이 시작된다. 만화 같은 컷과 배경을 따로 찍어 인물과 합성한 효과가 인상적이었다. 이런 스타일을 결정한 건 특정 시공간에서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인가.

=그림자가 막 나오는 걸 하고 싶었던 건지,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그런 이미지와 이야기가 거의 같이 출발한 것 같다. 옛날 영화를 보면 총, 젖은 거리, 안개, 페도라, 트렌치코트, 팜므파탈 같은 요소들이 특징적으로 등장하지 않나. 그러면서 이야기는 상당히 복잡하다. 하워드 혹스의 <명탐정 필립>(1946)은 아무리 집중해도 무슨 이야기인지 조금도 알 수 없을 정도니까. (웃음) 만화 <형사 가제트>에서 고양이만 쓰다듬고 있는 악당을 좋아하기도 하고. 이것저것 좋아하는 것이 뒤섞여 이야기에 반영된 것 같다.

-특히 배경을 따로 찍어 인물과 합성한 효과는 로버트 로드리게즈의 <씬 시티>(2005)와 스타일이 비슷하다.

=<씬 시티>가 레퍼런스 중 하나이긴 하지만 <씬 시티>는 배우 빼고는 전부 가짜가 아닌가.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만한 제작비도 없고.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가 가는 곳이 전부 미지의 세계고 그래서 흥미롭게 느껴지듯이, 테헤란로, 역삼동, 강원도 홍천 같은 구체적인 공간을 떠올리지 않게 여지를 남겨두려고 했다. 그래야 사실적이지 않은 이야기를 관객이 리얼하게 받아들일 테니까.

-홍길동이 이미 갔던 공간을 다시 가고, 만났던 사람을 또 만나면서 사건 해결 단서를 하나씩 얻는다. 그런 서사 구조가 단서를 찾아가면서 미션을 하나씩 클리어하는 <더 라스트 오브 어스> 같은 1인칭 게임과 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 교과서 중의 하나가 <살인의 추억>(2003)이다. 이 영화의 재미있는 점 중 하나는 해답이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수사를 하다가 해답을 지나쳤거나 해답의 코앞까지 도달했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들에 재미를 느꼈다. 홍길동이 질주하기보다 동네를 맴돌고, 만났던 사람들을 다시 만나는 것도 보는 이로 하여금 그가 목표를 빨리 이루었으면 하는 마음을 갖게 하기 위한 장치다. 누군가가 먹을 걸 줬다 뺏어가면 더 가지고 싶지 않나. 관객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하고 싶었다. 게임을 즐기진 않지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모범적으로 생활하는 것으로 유명한 이제훈을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홍길동 역에 캐스팅하면서 가장 많이 한 고민은 뭔가.

=어떻게 하면 관객으로 하여금 길동의 행동을 부담감 없이 느끼게 할 수 있을까. 덱스터처럼 완전 ‘또라이’로 묘사해도 위험할 것 같고. 제훈씨와 레퍼런스 얘기도 많이 했는데, 제훈씨가 스스로 정해놓은 방향이 있었던 것 같다. 언제 미소를 지어야 하고, 또 언제 지질해 보여야 하는지를 촬영을 하면서 보여준 것 같다.

-홍길동이 동이, 말순 자매와 동행하는 장면들에서 그 자매로 하여금 홍길동이 자신들을 해칠지도 모른다는 긴장감을 좀더 갖게 하고 싶은 생각은 없었나.

=동이, 말순 자매가 성인이라면 길동을 그들을 해칠 수 있는 사람으로 묘사할 수 있었겠지만, 그러면 관객이 길동 캐릭터를 미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관객이 아이들을 해칠지도 모르는 캐릭터를 응원할 수 있을까. 시나리오에는 캐릭터가 지금보다 좀더 세게 묘사된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 고민을 하면서 길동이가 동글동글하고 귀여워졌다.

-이 영화의 외피는 홍길동과 범죄 조직 광은회의 대결을 그린 장르영화지만, 감독이 말하고 싶은 주제는 말순을 통해 전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윗세대와 자신의 혈육(아버지)을 적으로 삼고 복수의 고리를 스스로 끊으며 다음 세대를 위한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에서 홍길동은 이야기의 중간자라고 생각했다. 다음 세대라고 하면 동이와 말순이인데, 영화 속 대부분 인물이 폼 잡고 있다면, 아이들이 개그 담당이다. 오만한 홍길동이 시골에 와서 동이와 말순을 만나면서 무너지지 않나. 아이들이 길동의 허점을 메우고, 그러면서 서로 마음을 나누는 모습이 귀엽다. 그게 이 영화에서 따뜻한 부분 중 하나다.

-세트장도 기괴하고, 전작에 비해 규모가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꿈도 많이 꿨을 것 같다.

=프랑수아 트뤼포의 <아메리카의 밤>(1973)처럼? 그 영화 속 감독은 매일 밤 악몽을 꾸잖아. (웃음) 나는 매일 밤 자기 바빠서. (웃음) 그냥 열심히 찍었다.

-현장에서 즉흥적으로 추가하거나 수정한 장면이 있나.

=기술적으로 많은 준비가 필요한 까닭에 계획을 쉽게 수정할 수 있는 현장이 아니었다. 콘티를 짤 때 스탭들과 약속한 건 대부분 지키면서 찍었다.

-범죄 조직 광은회의 정체가 불분명하다. 이름 때문에 하나회도 떠오르고. (웃음)

=광은회는 두 시간여의 러닝타임 내에 정체를 파악하기 힘든 조직이라고 생각했다. 광은회 보스는 뒤통수만 한번 나올 뿐 모습을 전혀 드러내지 않는다. 이야기를 깔끔하게 끝내려면 광은회 최고봉인 길동 아버지의 목을 베어야 하는데, 길동은 눈앞의 사건만 해결하려고 한다. 그래야만 광은회가 더 거대해 보일 것 같기도 하고.

-영화가 흥행하면 광은회의 정체가 더 드러날 수 있겠다.

=고전 <홍길동>을 보면 홍길동에게 두명의 이복형이 있다. 첫째 홍일동, 둘째 홍귀동. 김성균이 연기한 강성일도 원래 홍일동이었는데 이름이 귀여워서 바꿨다. <탐정 홍길동> 2탄이 나오면 첫째 형을, 3탄이 나오면 아버지 홍상지를 죽이는 콩가루 집안 이야기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게 멋있지 않나. (웃음) <철권>이 그렇잖아. 헤이아치 3대가 서로 죽이고 부활하고 다시 죽이면서 난리 나는… 그런 게 멋있지 않나. (웃음) 시리즈로 제작되려면 일단 이번 영화가 흥행해야 가능할 것 같다.

-차기작은 무엇인가.

=결정된 건 없다.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생각하고 있다.

관련 영화

관련 인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