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트라이트]
“남자에게 한 10대 맞으니 눈물나데요” <정글쥬스> 전혜진
2002-03-27
글 : 위정훈
사진 : 정진환

<정글쥬스>에서 전혜진이라는 배우의 이름은 낯설다. <행복한 장의사> <죽이는 이야기>를 본 관객이라면 ‘전이다’라는 특이한 이름 석자를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행복한 장의사>에서 곰다방 미스 황, <죽이는 이야기>에서 배우지망생 춘자로 등장했던 전이다가 바로 전혜진이다. <정글쥬스>에서 본명인 전혜진을 크레딧에 올린 이유, 아니 전이다란 이름을 쓴 이유가 궁금해진다. “<죽이는 이야기> <행복한 장의사> 할 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계속 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내 이름이 나가는 것도 싫었고요.”

이야기를 듣다보니 전혜진은 싫어하는 것도 많다. “학교 다니기 싫었다. 연기도 시작하기 전에는 하기 싫다.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싫고, 타이틀에 이름 올리는 것도 싫다. 남 앞에 서는 것도 싫고, 내가 한 연기를 보는 것도 싫고, 내가 출연한 영화에 대해 누군가가 말하는 것도 싫다”며 두툼한 자기보호막을 쳐댄다. 하지만 카메라 앞에 서기 싫다던 전혜진은 막상 그 앞에 서면 순진한 배우지망생, 천방지축 다방레지, 터프한 588아가씨 등의 캐릭터와 천연덕스럽게 ‘합체’, 관객 앞으로 돌진해온다.

<정글쥬스>에서 ‘기태와 철수라는 두 양아치의 정신적 대모, 전직 부산 자갈치 공주파 넘버 투’이기도 한 멕나영은 일반적인 의미에서 ‘예쁜’ 여자가 아니다. 그래서 크랭크인 석달 전 마지막으로 캐스팅된 전혜진이 감독과 함께 세웠던 멕나영 만들기 원칙은 “순진하거나 예쁘게 보이지 말자”였다. 그 결과 자신과 전혀 다른 “낯설고, 보기 싫은 모습”으로 빚어진 멕나영은 다른 누구보다 생생하게 관객의 머릿속에 새겨진다. <정글쥬스>에서 격투신을 찍을 때 액션스쿨에서 갈고 닦은 액션연기가 무용지물이 되었던 일은 기억나는 한 사건. 짜여진 액션이 아닌 생생한 ‘막싸움’을 원했던 감독의 주문에 따라 정말로 얻어맞았다. “남자에게 한 10대 맞으니 눈물이 나데요.”

배우 수급면에서 한국영화계가 연극계에 빚지고 있는 것이 대세지만, 전혜진은 빚을 조금 되갚은 경우다. <죽이는 이야기>를 만나기 전까지도 전혜진은 연출부 등 스탭으로 가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있었을 뿐 배우가 될 생각은 없었다. 상명대 영화과 95학번이었지만, 학교는 재미없어 다니기 싫고, ‘영화일 한번 해보고 싶다’는 밑그림만 그리고 있었을 때였다. 자주 가던 명동성당 밑자락의 한 카페에서 여균동 감독과 일단의 영화계 사람들을 만났고, <죽이는 이야기> 오디션을 보라는 말을 들었다. 혈액형이 O형이라 결심하면 주저하지 않는다는 그는 오디션을 봤고, 그것이 시작이었다. <죽이는 이야기>를 각색했던 이상우 작가가 그에게 “연극 한번 해봐라” 집요하게 권했고, 권유에 못 이겨 <죽이는 이야기>를 찍은 뒤 극단 ‘차·이·무’의 <통일 익스프레스> <돼지사냥> 등으로 연극무대에 섰다.

<정글쥬스>를 찍으면서 한 가지 내면의 변화를 겪었다. 시작할 때는 “이번 영화만 하고 그만둬야지 생각했는데 연기에 욕심이 생겨버린” 것이다. 이제 연기경력 4년. 아직도 작품보다 “인간관계에 끌려” 연기를 하고 배우란 타이틀도 어색하지만,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좋아서 스스로 휩쓸려 들어간 길, 이젠 그 길의 끝을 보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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