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영화人] 새벽에는 헌팅, 아침에는 촬영 - <철원기행> 김보람 촬영감독
2016-05-13
글 : 이화정
사진 : 오계옥

2016 <컴투게더> 2014 <철원기행> 2012 <이방인들> 2010 <간증>

<철원기행>을 보면서 가슴이 뛰었다. 우리는 이렇게 또 한편의 주목할 만한 영화를 만나게 되는구나. 2박3일간 철원에 모인 가족, 소원했던 관계의 회복 같은 피상적인 말로 뭉뚱그리기에는, 그 기록은 집요하고 역동적이며 아름답기까지 하다. 영화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그래서 신인 연출자 김대환 감독의 차기작은 뭐래?’이며, 그 즉시, 당연하다는 듯 김보람 촬영 감독의 존재가 궁금해진다. 연출, 각본, 연기 등 이 영화의 많은 장점 중에서도 폭설로 고립된 철원과 아버지의 관사를 생동감 있게 담아낸 촬영은 설명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김대환 감독이 “다음 영화도 모두 함께하고 싶다”며 평생계약을 외친 김보람 촬영감독은 아카데미에서 촬영을 전공(23기)한 영화인이다. 원래 국문학을 공부하다가 촬영을 시작했는데, 첫 장편 작업이 박수민 감독과 함께한 <간증>이었다. “하필 같은 기간에 <파수꾼>과 <짐승의 끝>이 나와서 조용히 사라졌다. (웃음)” 이후 근 10년의 시간 동안 독립영화 현장에서 쭉 일해왔고 <철원기행>에 합류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영화의 분위기와 누리 빌게 제일란의 <우작>(2003)의 눈을 떠올렸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톤에 대한 구상이었을 뿐. 촬영자가 풀어야 할 과제는 보다 구체적이었다. 첫 번째는 눈으로 고립된 철원의 풍경을 담아내는 것. 겨울가뭄이 닥친 철원을 버리고 폭설주의보가 내린 고성으로 배경을 옮겨왔다. “매일 새벽에는 헌팅, 아침에는 촬영을 하는 일정이었다.” 그렇게 철원기행이 아닌 사실상 ‘고성기행’이 되는 동안, 철원이라는 배경이 드라마가 되어갔다. 드넓은 야외 장면과 달리, 다음 과제는 비좁은 아버지의 관사를 담는 일이었다. 가족이 모두 모였다가 부자만 덜렁 남거나, 형제가 다투거나, 고부가 맞닥뜨리는 관사 장면은 일종의 연극무대 연출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이 들락거림이 실내 장면을 지루하지 않고 다채롭게 만들어준다. “1.8m×1.8m의 좁은 공간, 화각이 확보되지도 않은 곳에 돌리 트랙을 설치하는 ‘무모한’ 시도도 더해졌다. <철원기행>의 촬영은 제약이 많은 현장, 그걸 궁리한 끝에 극복한 긍정적 결과물이다.” 영화는 결국 감독이 만드는 것, 촬영자에게 많은 걸 바라고 뺏어가는 감독이 좋은 감독이 아닐까. “헌팅 때부터 왜 이렇게 나를 끌고 다닐까 투정도 했지만, 김대환 감독과 그런 의미에서 호흡이 잘 맞았던 것 같다”는 김보람 촬영감독. “감독이 만족했으니 이제 내 임무는 완수다. 난 늘 그렇듯 다음 작품을 보고 달릴 뿐.”

헌팅 필수품 LX-5

<철원기행>은 레드 에픽 카메라에 슈퍼 스피드 렌즈로 촬영했지만 숨은 카메라가 한대 더 있다. 바로 김보람 촬영감독의 개인 소장용 카메라 파나소닉 LX-2. “16:9 표준 사이즈로 촬영이 가능해서 헌팅 때 꼭 가지고 다닌다. 감독들과 커뮤니케이션하고 콘티를 짜기도 하는 용도다.” 일종의 촬영 설계를 위한 도구다. 하도 가지고 다녀 수명이 다해 얼마 전 업그레이된 LX-5를 구매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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