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저지른 소년이 돌아왔다. 교도소 복역 후 원래 살던 가정과 마을, 학교로 복귀한 그는 공동체에 다시 받아들여질 수 있을까. 문제적인 논제를 던지는 <히어 애프터>의 매그너스 본 혼 감독은 스웨덴 출신으로, 북유럽의 주목받는 신예다. 폴란드 국립영화학교에서 수학한 그는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설립했고 수잔 비에르,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 등의 작품을 제작한 북유럽 제작사 젠트로파와 <이다>(2013)를 촬영한 루카시 잘 촬영감독과 함께 첫 장편 데뷔작 <히어 애프터>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는 데뷔와 함께 제68회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공식 초청됐다. 고요하고 정제된 미장센 속, 소란한 감정의 동요를 집요하게 담아낸 이 낯선 신인감독은 어떤 생각으로 이 영화를 찍은 것일까. 매그너스 본 혼 감독과 서면으로 오간 대화를 전한다.
-첫 장편 데뷔작으로 지난해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다. 예상했었나.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내가 바랐던 건 그저 영화에 모든 힘을 쏟아 완성하는 일뿐이었다. 물론 칸국제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받았다는 걸 알았을 때 뛸 듯이 기뻤지만 그게 영화의 목적이 된 적은 없다. 그보다 자랑스러운 건 내가 제작사를 찾고 투자자를 찾는 힘든 여정을 극복하고 영화를 완성했다는 사실이다.
-<더 헌트> <멜랑콜리아> <님포매니악>의 제작사 젠트로파와는 어떻게 일하게 됐나.
=이 영화는 폴란드의 라바필름과 스웨덴의 젠트로파, 두 제작사의 합작이다. 오랜 친구이자 동료인 라바필름의 프로듀서 마리우스 윌로다르스키와 제작 초기부터 함께했다. 스웨덴에서 영화를 찍고 싶었던 우리는 젠트로파 스웨덴의 마들렌 에크만에게 완성된 각본을 보여줬고, 그녀가 관심을 보여 함께하게 됐다. 사실 마들렌과도 폴란드국립영화학교에서 공부할 때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이런 인연이 있었으니 우리 셋이 모이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았나 싶다.
-죄를 짓고 2년간 복역하다 마을과 학교로 돌아온 소년은 외면받고 철저히 고립된다. 인간의 본성과 죄, 용서에 대해 생각하게끔 하는데.
=말한 그대로다. 나는 ‘죄와 벌’이라는 주제에 관심이 있다. ‘악’은 어떻게 정의할 수 있는가, 무엇이 죄에 대한 대가일까 하는 주제는 굉장히 흥미롭다. 우리는 ‘악’이라는 어휘를 빈번히 쉽게 사용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두려워하는 대상에서 스스로를 분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것일 수 있다. 나에게도 두려운 것들이 있지만 난 그 무서운 대상에게 다가서보려 한다. 생각해보자. 나도 십대 때 살인을 저지를 수 있었을까? 아니라고 단정할 순 없다. 만일 내가 누군가를 죽였다면, 나는 그 사람을 왜 죽이게 됐을까. 그 후 나는 어떻게 됐을까. 난 이 불편한 생각에 굳이 나를 대입해보곤 한다. 이것이 내가 각본을 완성하는 과정이다. 영화를 찍는 내내 나는 ‘욘’ 역의 울리크 문테르도 이런 식으로 생각하게끔 했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라는 소재는 전작 단편 <라덱> <에코> <위드 아웃 스노>에서도 활용됐다. 이 소재에 관심을 갖는 까닭이 있나.
=세 작품 모두 내가 폴란드 국립영화학교에 재학 중일 때 만든 작품이다. 학교를 다니면서 내가 인간성이나 인간애를 전혀 찾을 수 없는 지점에서 그것을 찾아내는 일에 재미를 느낀다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처음 마주쳤을 때 무섭거나 나와는 공통점을 전혀 찾을 수 없을 것 같은 인물에게 더 다가가는 편이다. 그를 오래도록 마주하면, 결국 그 안에서 보게 되는 것은 나 자신이다. 이런 과정은 모두에게 중요하지 않을까. 우리 모두가 어느 정도의 선을 지니고 있듯이, 다들 저마다의 악도 어느 한켠에 품고 있다. 그런 마음으로 단편들을 작업해왔고 결국 이 세 단편이 <히어 애프터>를 탄생시켰다.
-롱테이크와 익스트림 롱숏으로 절제된 영상미에 여운을 남기는 촬영이 인상적이다. <이다>를 찍은 루카시 잘 촬영감독과의 작업은 어땠나.
=루카시 잘과는 폴란드 국립영화학교에서 같이 공부하던 때부터 알고 지냈다. 그는 정말 대단한 촬영감독이다. 영화를 찍을 때 오로지 영화만 생각하고, 포기를 모른다. 우리는 <히어 애프터>를 찍기 전, 촬영하다 갈피를 잡을 수 없을 때를 대비해 규칙을 정했다. 그중 하나가 ‘카메라는 개가 아니라 고양이다’였다. 영화 속에서 가족간에 싸움이나 말다툼하는 장면에서 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아마 가족들 사이를 뛰어다닌다거나,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황에 끼어들었을 거다. 하지만 고양이라면 창틀에 엎드려 무관심하게 쳐다보고 있었을 터다. 우리는 카메라가 대상을 고양이처럼 냉정하게 응시하기를 바랐다.
-이처럼 감정을 절제하고 최소한의 정보를 노출하며, 소년과도 마을 사람들과도 거리감을 두고 관조하듯 응시한 이유는 무엇인가.
=관객이 이야기에 능동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 그런 방식을 취했다. 관객이 영화와 대화하면서 저마다의 답변이나 생각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내 바람이다. 나는 해답을 제시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질문을 던짐으로써 관객이 자기만의 답변을 얻을 수 있도록 하는 동력은 제공할 수 있지 않을까. 예를 들어 극중에서처럼 아는 사람이 살인죄로 감옥에 갔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당신은 극중 어느 인물처럼 행동할 것인가, 혹은 당신 자신이 그 살인자라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들 말이다. 나 또한 영화를 볼 때 이렇게 스스로 질문하게끔 하는 영화들을 좋아한다.
-연기 경험이 처음인 뮤지션 울리크 문테르를 주연으로 발탁했다.
=나는 배우가 재능이 있되 그 재능을 스스로는 모르고 있기를 바란다. 연기 경험이 없다는 건 나에게 오히려 장점으로 느껴진다. 시골 마을의 학생이자 농부로 일하는 ‘욘’ 역을 캐스팅하기 위해 스웨덴 농촌 지역을 샅샅이 뒤졌고, 두명을 캐스팅하려 했는데 모두 출연을 고사했다. 울리크를 방송에서 본 것이 이때였는데, 분위기 있는 얼굴이지만 탐탁지 않았다. 그는 유명하고 심지어 가수다. 농부가 아니지 않나. (웃음) 하지만 한번 만나보고서는 굉장히 인상 깊어 캐스팅했다. 그는 완전히 고립된 상태에서 한달 동안 농장에서 일하며 황소와 지냈고, 가수 울리크가 아닌 <히어 애프터>의 ‘욘’이 됐다. 이전에 캐스팅한 두 배우가 거절해준 것이 고마울 정도로 너무나 잘해줬다.
-차기작 계획은 어떻게 되나.
=두 작품을 진행 중이다. 하나는 폴란드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 구분이 중요치 않은 영화이고, 다른 하나는 스웨덴을 배경으로 하는 동시대적인 영화다.
-첫 작품을 공개한 신인으로서, 앞으로 어떤 영화를 찍는 감독이 되고 싶나.
=나는 내가 보고 싶어 하는 스타일의 영화를 만들고 싶다. 나도 그렇고, 이런 취향을 가진 관객의 수요가 꽤 있는 것 같다. (웃음) 나는 브루노 뒤몽처럼 자기 색깔이 두드러지는 감독들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다. 그의 영화는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완전히 다른 눈으로 보는 것처럼 느끼게 해주고,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다. 나도 그런 영화를 만들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