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박소미의 영화비평] <브루클린> 각성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
2016-05-12
글 : 박소미 (영화평론가)
주인공 에일리스의 얼굴을 둘러싼 풍경의 변화, 심상의 변화
<브루클린>

<브루클린>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단연 시얼샤 로넌의 얼굴이다. 그래서 종종 <브루클린>은 시얼샤 로넌의 자화상들을 엮어놓은 영화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유가 아니라 중요한 순간마다 카메라가 시얼샤 로넌의 얼굴을 클로즈업이나 바스트숏으로 비추는 장면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가령 성탄절 이민자 모임에서 어느 노인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먹먹하게 이어지는데 이때 존 크롤리 감독은 대사를 아낀 채, 그리움으로 일렁이는 에일리스(시얼샤 로넌)의 얼굴에 우리의 시선이 잠시간 머물도록 하는 편을 택한다. 행사가 끝난 뒤 에일리스가 하숙집으로 돌아가는 장면은 고속촬영으로 천천히 강조되는데 이는 입국심사를 통과한 뒤 그녀가 처음 발을 내딛는 순간을 고속촬영했던 것의 변주다. 아이리시 음악, 에일리스의 얼굴, 고속촬영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장면은 이민자 모임 이후 그녀가 물리적인 이주의 단계를 넘어 심리적으로 브루클린의 생활에 뿌리내리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브루클린>이 멜로드라마이기에 앞서 에일리스라는 여성 혹은 이민자의 내밀한 삶의 기록으로 읽힌다면 그것은 물론 자화상으로서의 영화라는 감흥과 상통하는 지적일 것이다.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브루클린>은 결국 선택에 관한 영화다. 1950년대 아일랜드의 극심한 경제난 때문에 일자리를 찾아 미국으로 이주하는 대열 속에 에일리스도 합류한다. 에일리스는 하숙집 여성들과 토니(에머리 코언)를 만나 점점 타지에서의 삶에 정착해나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일랜드에서 가족의 부고가 날아온다. 잠시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에일리스는 토니의 청을 받아들여 그와 결혼하지만 아일랜드에 도착한 뒤 짐(돔놀 글리슨)을 만나게 된다. 이후 그녀는 토니와 짐, 브루클린과 아일랜드 사이에서 갈등하게 되는데 이때 멜로드라마의 문법을 뒤집어 사용한다는 점이 흥미롭다. 토니와 짐은, 멜로드라마의 삼각관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 한쪽이 채워줄 수 없는 결핍을 다른 한쪽이 채워주고 그 역 또한 성립하는 대립항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대신 이후 살펴볼 것처럼 짐과 에일리스의 관계는 의도적으로 토니와 에일리스의 관계와 겹쳐지는 상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중첩은 토니와 짐 사이의 차이들을 희석시켜 필연적인 우위의 결말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즉 결말이 전적으로 에일리스 스스로의 선택에 달린 일임을 강조한다. 에일리스의 선택에 관해 말하기 전에 살펴볼 장면이 두개 있다.

에일리스와 짐의 관계는 그녀가 고향으로 돌아온 뒤 내뱉는 두번의 “잊고 있었다”로 시작하고 끝난다. 에일리스가 처음 이 말을 하는 순간은 짐과 친구들과 집 근처 해변을 찾았을 때다. 향수의 감각만 남은 채 그 대상의 구체적인 모습이 희미해졌던 에일리스는 눈앞에 펼쳐진 익숙한 풍경에 동요하며 그와 같이 말한다. 뒤이어 토니의 편지가 내레이션으로 흘러나오는 동안 에일리스와 짐이 해변을 걷는 장면이 익스트림 롱숏으로 보여진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익스트림 롱숏 그 자체다. 앞선 장면들에서 인물을 익스트림 롱숏으로 보여준 것은 한번뿐이었고 그래서 특별했으며 그 내용 때문에 더욱 뇌리에 남았다. 바로 롱아일랜드 벌판에 서서 토니가 에일리스에게 앞으로의 생을 함께하고 싶다고 말하던 장면에서다. 언젠가 그곳에 다섯채의 집을 짓고 가족과 꾸려나가고 싶다는 토니의 바람을, 그 기약 없지만 간절한 진심을 에일리스는 망설임 없이 기꺼이 끌어안는다.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서 익스트림 롱숏으로 촬영되어 점처럼 보이는 두 사람의 작은 몸짓은 그래서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 토니와의 각별했던 순간이 각인되어 있는 익스트림 롱숏의 재호출은 짐과의 관계가 토니와의 관계처럼 발전할 것임을 이미 처음부터 암시한다. 이후 에일리스는 브루클린에서 토니와 춤을 추고 식사를 하고 가족들을 만났던 것처럼 아일랜드에서 짐과 식사를 하고 가족들을 만나고 춤을 춘다. 세부 묘사나 감정적인 결의 차이는 있지만 두 관계는 유사한 궤도를 걸으며 깊어진다.

관계의 변주된 반복은 친구 낸시의 결혼식 장면에서 절정에 달한다. 더불어 이 장면은 토니와의 관계와 짐과의 관계를 충돌시킨다는 점에서 예외적이다. 혼인서약을 읊는 장면에서 신랑, 신부를 보여주던 카메라는 돌연 초점을 바꿔 객석의 에일리스와 짐을 비추는데 여전히 사운드로 혼인서약이 낭독 중이다. 신랑, 신부의 자리에 에일리스와 짐이 포개지도록 연출된 장면과 그 속의 복잡한 상념이 드리운 에일리스의 얼굴은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든다. 타지에서 가족이나 하객 없이 치러진 토니와의 결혼과 대비되기 때문이 아니다. 이런 도식적인 비교를 피하기 위해 토니와의 결혼 장면은 생략되었을 것이다. 오히려 이 장면은 우리가 보지 못했던 토니와의 결혼과 우리가 아직 보지 못했지만 가능할 수도 있는 짐과의 결혼이라는 양립 불가능한 두 장면을 동시에 호출하고, 상념에 잠긴 에일리스의 얼굴을 통해 양자가 그녀 내부에서 평행한 세계를 그리며 갈등과 번민을 일으키고 있음을 암시한다.

과거와 현재의 차이는 무엇이었나

에일리스의 선택은 급작스럽고 단호하게 이루어진다. 과거에 일했던 식료품 가게 주인 켈리를 만난 직후의 일이다. 켈리는 에일리스가 이미 미국에서 결혼했다는 감춰진 사실을 접하고 그녀를 불러 은근하게 괴롭히며 이를 즐긴다. 그 순간 에일리스는 “이 마을이 어떤 곳인지 잊고 있었다”고 말한다. 이 문장은 단순히 고약한 켈리나 늘 소문이 끊이지 않던 마을에 대한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켈리는 지금 유일하게 에일리스를 미국으로 떠나기 전의 에일리스, 정규직 자리를 구하지 못해 주말에만 겨우 파트타임 점원으로 일하던 에일리스, 영화 속 대사처럼 ‘마을의 스타’가 되기 이전의 에일리스로 대하고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켈리의 심술궂은 미소는 에일리스의 약점을 잡아내 예전처럼 자신이 그녀보다 우위에 설 수 있게 된 데 대한 모종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에일리스가 “당신은 소문낼 생각조차 없었는지도 모르죠”라고 말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에일리스는 과거 고향에서 자신이 어떤 지위였는지를 켈리를 통해 상기하게 된다. 짐을 만났을 때 그녀는 이미 몇몇 삶의 계단을 통과한 뒤였고 짐과 친구들은 줄곧 그런 에일리스에게 외국 생활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보였다. 짐의 사랑을 격하하기 위해 이런 지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짐은 진실하게 에일리스를 사랑했고 에일리스 또한 그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다만 에일리스는 과거 자신과 현재 자신 사이의 변화 혹은 그 간극을 처음으로 되돌아보게 되었을 뿐이다. 그녀는 이웃들의 관심에서부터 단번에 인정받은 경리로서의 능력까지 그 모든 것이 스스로가 브루클린에서 쌓아올린 것들 덕분에 가능했던 일임을, 그리고 그 시간을 함께 견뎌준 이가 토니였음을 새삼 깨닫는다. 점프컷으로 연이어 보여지는 클로즈업된 에일리스의 얼굴은 그녀의 각성을 강조한다.

에일리스가 처음 입국심사를 받을 때 그녀의 시점숏으로 제시된 뉴욕의 모습은 관광지의 흔한 풍경엽서를 닮았다. 그만큼 뉴욕은 에일리스에게 거대하고 추상적인 공간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영화에서 시점숏 또한 드물게 사용되었는데 시간이 흐른 뒤 에일리스가 시험 합격 소식을 들고 신부를 찾아가는 길에 다시 한번 에일리스의 시점숏이 등장한다. 가로수가 우거진 맑은 하늘, 일상적이고 구체적인 브루클린의 풍경은 그녀가 이제 이곳의 생활에 정착했음에 대한 비유다. 엔딩에서 미국으로 돌아간 에일리스의 시점숏이 비추는 것은 익숙한 일상의 풍경 속에 있는 토니의 모습이다. 그 풍경이 그녀가 쌓아올린 삶이 자리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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