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비밀을 숨긴 듯한 한 가족과 마을 사람들 <산이 울다>
2016-05-25
글 : 우혜경 (영화평론가)

1984년, 중국의 고립된 산골 마을. 사연을 알 수 없는 한 가족이 찾아든다. 비밀을 숨긴 듯한 가족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경계를 풀지 않는다. 어느 날, 마을 청년 한총(왕쯔이)이 설치한 덫에 걸려 가족의 가장 라홍(여애뢰)이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하고 한총은 혼자 남은 아내, 홍시아(량예팅)와 어린아이들을 돌봐주기로 결심한다. 청각장애인인 홍시아의 사려 깊은 모습에 한총은 점점 사랑을 느끼지만 마을 사람들은 홍시아를 쫓아내기 위한 계획을 꾸민다.

래리 양 감독의 영화 <산이 울다>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풍경’이다. 끝없이 이어진 겹겹의 높은 산들과 그 사이를 구불구불 연결한 절벽의 길들이 마치 한폭의 산수화처럼 펼쳐진다. 모래바람의 건조함과 쾌청한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의 강렬함마저 카메라에 담으려는 노력도 고스란히 전해진다. 아름다움을 넘어서 숭고하기까지 한 이 풍경은, 그러나 사람들에겐 더없이 가혹한 고립의 공간으로 작동한다. 별다른 사건을 만들어 넣지 않아도 마을 사람들이 외지인인 홍시아에 대해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적대감이 어렵지 않게 이해 가능한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는 극부감의 풍경에서 시작해 마을 사람들의 척박한 일상으로 좁혀들어가면서 이들이 감추고 있는 끔찍한 비밀을 하나씩 밝혀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통해 자연스럽게 풍요로운 자연과 메마른 인간들 사이의 대비가 명확히 이루어진다.

야만에 가까운 자연이나 여주인공이 겪는 시련의 양상이 <황토지>(감독 첸카이거, 촬영 장이머우, 1984)나 <붉은 수수밭>(1988) 같은 장이머우의 초기작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로케이션 헌팅의 역량에 비하면 인물들의 감정선을 담아내는 섬세함은 다소 부족하게 느껴진다. 충격적인 사건 이후 끔찍한 기억에 시달리는 홍시아의 내적 갈등도, 그런 홍시아를 바라보며 사랑을 키워가는 한총의 마음도 몇개의 사건들을 걸치며 발전하지만, 연출의 정교함이 부족해 개연성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무엇보다 아쉬운 것은 영화가 두명의 주인공 외에는 거의 관심을 가지지 않다 보니 서사가 지나치게 앙상하다는 점이다. 2005년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거쉬핑의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으로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으로 소개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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