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FI 유학 중이던 류성희 미술감독을 한국으로 돌아오게 만든 것은 바로 왕가위 감독이다. 무슨 얘기인가 하니, 유학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올 생각이 없었던 그녀 앞에 등장한 영화가 바로 왕가위의 <동사서독>(1994)이었다. 임청하가 아무 말 없이 칼을 차아아악 가르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뚝뚝 흘렀다. 그때 류성희는 누군가의 부탁으로 한 웨스턴영화의 바를 작업하던 중이었다. 건맨들이 뒤엉키는 웨스턴 바를 만들고 있던 그때 봤던 한편의 아시아 무협영화가 그녀의 마음을 뒤흔든 것이다. 심지어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 <동사서독> 상영회를 열기도 했다. “서양 애들한테 지지 않으려고 밤새 연구해서 웨스턴 바를 멋지게 만들었지만 사실 그건 다 공부해서 하는 거고, 그냥 어느 순간 ‘내가 여기서 뭐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호리병을 들고서 1인2역을 하며 어딘가 미친 것 같은 임청하의 행동도 심금을 울렸고, 그저 기억을 희미하게 없애준다는 취생몽사라는 술도 마셔보고 싶었다. “그래, 저거다 저거! 저게 영화지.”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게 된 류성희 미술감독이 <꽃섬>(2001), <피도 눈물도 없이>(2002), <살인의 추억>(2003), <올드보이>(2003)를 거치며 어떻게 성장해왔는지는 누구나 다 알 것이다. 그즈음 박찬욱, 김지운, 봉준호, 류승완 등의 한국영화들을 일컬어 ‘코리안 뉴 시네마’라고 부를 수 있다면 바로 류성희라고 하는 단 하나의 교집합이 있다.
그 세월을 지나 류성희 미술감독의 벌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그녀로 하여금 미국 땅을 떠나게 만들었던 <동사서독>의 미술감독이자 사실상 의상까지 책임지면서 왕가위의 영혼의 파트너라고 할 수 있는 장숙평은, 역시 왕가위의 <화양연화>(2000)로 칸국제영화제 기술상을 수상했다(아이처럼 펑펑 울던 양조위의 남우주연상 수상도 잊지 말자). 류성희 미술감독은 그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부러웠다고 했다. 영어영화를 만들어 아카데미 미술상을 타지 않는 한, 국내의 영화 미술상을 넘어 세계적인 무대에서 그 성취를 인정받을 수 있는 최고의 영예이기 때문이다. 존경하던 미술감독이 받은 그 상을 자신도 받게 된 것이다. 물론 탁월한 기술적 성취를 이룬 작품에 수여하는 벌컨상은 2003년에 만들어지긴 했으나, 그 이전에도 ‘Technical Grand Prize’라는 기술상의 이름으로 그 업적을 선정해왔다.
지난해 벌컨상 수상자는 <사울의 아들>(2015)의 사운드 디자이너 타마스 자니였다. 아마도 많은 이들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자면 아시아 최초로 호금전의 <협녀>(1971), 켄 러셀의 <말러>(1974), 롤랑 조페의 <미션>(1986), 장이머우의 <상하이 트라이어드>(1995)가 기술상을 수상했다. 그만큼 대단한 상이다. 게다가 참여한 스탭을 콕 집어 수상하는 경우도 그리 흔하지 않다. 퉁 쳐서 감독에게 주거나 공동 수상하는 경우도 많다, 장숙평도 크리스토퍼 도일, 마크 리핑빈 촬영감독과 공동으로 수상했다. 그래서 더 대단해 보인다. 그런데 당시 장숙평은 턱시도를 차려입은 채 왕가위와 함께 레드카펫도 걸었다. 개인사정이 있었겠으나 류성희 미술감독도 그랬으면 어땠을까 싶다. 기술 스탭이 감독, 배우, 제작자와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며 칸의 레드카펫을 걷는 모습, 생각만 해도 근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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