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터/액트리스]
[액터/액트리스] 강렬한 에너지 - <몽 루아> 뱅상 카셀
2016-05-31
글 : 이지현 (영화평론가)
사진제공 미디어로그

영화 2015 <몽 루아> 2015 <소년 파르티잔> 2014 <미녀와 야수> 2011 <데인저러스 메소드> 2010 <블랙스완> 2008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 2007 <오션스 13> 2007 <이스턴 프라미스> 2004 <오션스 트웰브> 2002 <돌이킬 수 없는> 2001 <늑대의 후예들> 2000 <크림슨 리버> 1999 <잔 다르크> 1997 <도베르만> 1996 <라 빠르망> 1995 <증오>

영화 <몽 루아>에서 끝내 남게 되는 것은 사랑의 감정이 아니라 감정의 침전물과 함께 피부를 긁는 따가운 상처들이다. 말 그대로 영화는 감정의 폭풍을 그린다. 인물들이 겪는 10년의 변화에서 관객은 교차편집되는 급격한 시간의 편차를 느낄 수 있다. 아슬아슬한 불안감, 남자의 변화와 여자의 흔들림, 거친 에너지와 파괴적 열정의 중심에서 우리는 배우 뱅상 카셀을 바라보게 된다. 187cm의 큰 키와 푸른 눈동자, 마음을 앗아버리는 곱슬머리, 그의 외적인 요건을 살피고 있자면 그가 택한 필모그래피의 방향이 조금 의외의 경향으로 흐른 듯한 인상을 받는다. 누구보다 아름다운 배우이지만, 실상 직접 그 외모를 활용한 영화는 <라빠르망>이 전부다. 이외의 작품들에서 그는 외면보다 더 강한 ‘무언가’를 지니기를 갈망한다. 그런 면에서 뱅상 카셀은 영리한 배우이며, 잘 훈련된 연기자이기도 하다. 연기에 있어 그가 문제를 일으킨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오히려 늘 자신이 맡은 역할을 훌륭한 뉘앙스로 표현해냈다. 치사량에 달하는 슬픔을 끌어내는 <몽 루아>의 조르조 역할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옴므파탈 격의 나쁜 남자를 뱅상 카셀은 ‘그럼에도 그이기에 가능할 것’이란 믿음을 주고 끌고 간다. 일말의 가능성, 우리는 뱅상 카셀이 그리는 조르조의 잔인한 매력과 더불어 또 다른 행복의 소생을 어느새 상상하게 된다. 행복과 비극 사이, <몽 루아>는 그 간극의 틈에서 거칠게 완성되는 멜로드라마다.

어쩌면 프랑스의 경우가 더 혹독한 것 같다. 배우의 육체적 훈련에 있어서 말이다. 미국 역시 연극 무대가 배우 활동의 기반이 되긴 하지만 프랑스의 전통은 훨씬 더 물리적이다. 이처럼 ‘흉내’와 ‘조종’의 전통을 기반으로 삼은 프랑스의 공연예술은 대개 ‘마임’이나 ‘마리오네트’와 같은 기계적 훈련을 통해 완성된다. 배우가 신체 훈련으로 완성하는 몸의 상상력이 그들이 지니는 감정과 연계된 것이다. 이 점은 스타니슬랍스키의 시스템과 흡사하다. 요컨대 프랑스적 무언극 양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이며, 이를 기반으로 자세와 제스처가 발생할 때 관객은 배우의 내면을 읽을 수 있다. 그리고 뱅상 카셀은 이같은 신체 훈련을 잘 연마한 배우 중 한명이다. 소위 말하는 ‘유러피언 시네마의 가장 핫한 스타’인 그를 언급하며 ‘마임’을 떠올려야 하는 건 조금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그의 개성 있는 표정을 육체성의 경향과 떨어뜨려 설명하긴 어렵다.

널리 알려졌듯 뱅상 카셀은 TV시리즈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프랑스의 유명배우 장 피에르 카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인 사빈 리티크는 미국판 <엘르> 기자였는데, 부모의 이러한 직업은 그가 배우로 성장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했다. 실제 그의 남동생은 유명 랩그룹 ‘어세신’의 리더인 로킹 스쿼트로 알려져 있으며, 이복 여동생 세실 카셀은 배우로 꽤 활발히 활동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뱅상 카셀의 연기자적 기질은 환경의 장점을 수용한 결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연기자로서 그의 성실한 태도는 환경보다 오히려 열정에서 출발했다. 뱅상 카셀은 ‘연극에 대한 진실성’을 믿는 배우 지망생이었고, 그런 맥락에서 서양 현대마임예술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장 루이 바로 극단’에서 그가 연기 생활을 출발한 것은 꽤 중요한 표식으로 여겨진다. 장 루이 바로와 만나기 직전까지 뱅상 카셀은 고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쳤는데, 그 과정을 간략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고등학교 졸업 후 뱅상 카셀이 택한 것은 대학이 아니라 여가수 수잔 소라노의 발성 수업이었다. 이후 애니 프라텔리니의 ‘서커스 학교’에서 본격적으로 애크러배틱 수업을 받았다. 처음 전문 연기 수업을 접한 것은 프랑스가 아니라 미국에서였다. 뉴욕의 액터스 인스티튜드에서 그는 메소드 연기를 배운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와서는 그르니에 재단이 운영하는 ‘모리스 사라진 극단’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다양한 결과물을 내보였다. 그리고 마침내 장 루이 바로의 무대와 만나게 된다. 그런 그를 ‘영화배우’로 각인시킨 작품은 마티외 카소비츠의 <증오>다. 이 작품이 세상에 공개되면서 이들 콤비의 잠재력은 폭발했고, 뱅상 카셀은 영화배우로 활약하기 시작했다. 당대 시네필에게 이 영화가 준 효과는 대단했는데, <증오>는 즉각적으로 영화배우 뱅상 카셀의 이미지를 완성시켰다. 휴머니스트적 좌파의 성향, 사실적 감정의 에너지 분출, 그리고 아나키스트적 자유로움의 표방까지 모두 그의 것이 되었다. 이윽고 카소비츠와의 협업은 <크림슨 리버>의 상업적 성공까지 이어진다. 그사이 뱅상 카셀은 프랑스 대표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배우로서 그의 입지는, 드라마적 퍼포먼스보다 ‘주제’의 관점에서 더 눈길을 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배우의 머리도 몸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리 스트라스버그의 정신은, 역으로 뱅상 카셀에게 이르러 육체의 장점을 감추도록 만들었다. 할리우드로 넘어가 선보인 작품들 다수가 그의 이런 믿음을 반영한다. 뱅상 카셀이 지닌 신체조건과 육체의 부피감은 할리우드영화의 ‘악당’ 이미지와 연계되는데, 이러한 측면에서 그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연기자로서의 고민을 잘 극복한 경우에 속한다. 아름다움과 마초적 카리스마를 합쳐 ‘강인한 악당 에너지’로 완성했던 것이다. 초기의 마초적 섹스 심벌로서의 매력이 <오션스 트웰브>의 부유한 갱스터 역할, <이스턴 프라미스>에서의 심리학적 음침함과 합쳐져 육체의 이차적 활용으로 이어진다. 할리우드에서의 조연 역할을 통해 그는 배우로서의 여유를 되찾는다. 이는 다시 프랑스 활동에도 긍정적인 영향력을 미친다.

이번 영화 <몽 루아>에서 드러난 ‘불길한 미래를 선사하는 나쁜 남자’의 파격은 할리우드에서 보인 배우로서의 방향성과 더불어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활용할 줄 아는 이 영리한 연기자는, 자신이 기존에 쌓았던 거대한 이미지를 영화에 투영하고 있다. 어쩌면 마이웬 감독의 연출 방식인 ‘스타일을 통해서 주제를 초월’하는 기로에서 뱅상 카셀은 마치 미장센인 양 사용된다. 영화는 충동 에너지가 창조의 힘과 연결된다는 것을 그가 연기하는 조르조를 통해 증명하며,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이 거친 롤러코스터의 물결에서 뱅상 카셀의 과거 이미지들은 마음껏 나열된다. <몽 루아>가 목표한 스크린을 향한 비뚤어진 나르시시즘의 분출, 이는 끝내 관객에게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제공할 것이다. 범인(凡人)은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을 법한 영화 속의 강렬한 에너지들, 이 배우는 어느덧 사십대 후반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신선한 감정의 근원을 드러내고 있다.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

논리보다 리듬감

실존 인물 자크 메스린에 대한 전기영화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에서 뱅상 카셀은 주인공 갱스터 역을 맡는다. 그가 처음 화면에 등장하는 시점부터 관객은 아마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될 것이다. 무려 20kg이나 몸무게를 늘린 채 뱅상 카셀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스스로 설명하듯 “호흡하는 방법, 이동하는 움직임, 심지어 말하는 뉘앙스까지 달라진” 사실을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굳이 몸무게의 문제만은 아니다. 뱅상 카셀이 얼마나 다양한 얼굴을 지닌 배우인지가 이 작품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 세자르영화제는 그에게 남우주연상을 수여하기도 했다. 거칠면서도 건조한 역동성, 논리보다 리듬감을 더 선호한다는 면에서 <퍼블릭 에너미 넘버원>의 에너지는 일면 <몽 루아>와 흡사한 면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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