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놈의 옷이 문제였다. 잡지 모델 출신에 옷을 너무 잘 소화해서 붙은 패셔니스타라는 수식이 김민희라는 배우를 향한 정당한 평가를 짓누르고 있었다. 드라마 <연애결혼>(2008)에서 재혼 커플 매니저 이강현은 옷을 잘 입어도 너무 잘 입었고, 나는 행여나 그녀의 화려한 연기가 옷에 묻힐까 안타까웠다. 하지만 늘 앞서나간 김민희의 의상은 캐릭터를 해친 적이 단 한번도 없었다. <뜨거운 것이 좋아>(2008)에서는 27살 시나리오작가같이 편안한 차림을 표현했고, <모비딕>(2011)에서는 기자 정신을 발휘할 수 있는 룩만을 철저히 고수했다. <화차>(2012)의 차경선의 그 비밀스러움은 가녀린 허리선을 드러낸 그녀의 옷에도 빠지지 않고 묻어 있었다. <지금은맞고그때는틀리다>(2015)로 옷의 자유를 한껏 만끽한 그녀는, 마침내 <아가씨>에 이르러, 히데코가 기모노를 걸친 건지, 기모노가 히데코를 감싼 건지 모를 듯한 물아일체의 경지에 이르렀다. 멀어져가는 드레스 속, 가녀린 등뼈마저도 연기를 하고 있던 그 황홀한 순간! 내 기억에, 김민희는 전작을 통틀어 단 한번도 패션을 센스로 과시한 적이 없었다. 의상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그 의상에 멋을 더할 수 있는 몸의 자유로운 사용이 연기의 모든 순간에 배어 있었다. 캐릭터가 소화할 수 있는 가장 멋들어진 방법으로 김민희는 지금 그 누구도 보여주지 못했던 새로운 연기를 구축 중이다. 다시 보며 알게 된 사실이 있다. 김민희가 처음으로 영화에서 기모노를 입은 건, 지금으로부터 16년 전 <순애보>(2000)에서였다.
씨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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