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영화]
[내 인생의 영화] 첫 기억 - 류재림의 <러브 스토리>
2016-06-15
글 : 류재림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러브 스토리>

지금의 시선으로 감상하기에 <러브 스토리>(감독 아서 힐러, 1970)는 신파적인 측면이 다분할 것이다. 경제적 배경이 다른 두 집안의 남녀가 가정을 꾸린 뒤 궁핍한 상황을 함께 이겨나가는 가운데, 돌파구를 찾아갈 무렵 아내에게 찾아온 병환과 그로 인한 쓸쓸한 결말. 이와 비슷한 구조의 이야기들을 꼽는다면 아마 짧은 순간에도 몇몇 영화와 드라마를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어찌보면 관객의 입장에서 이만큼이나 피로도가 높은 소재는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화에 대한 감상은 영화 속 이야기나 분위기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객이 어떤 환경에서 관람했는지에 따라서도 달리 만들어지는 듯싶다. <러브 스토리>가 국내에서 개봉됐던 70년대 초반은 국내 영화보다 외화가 대세인 시기였다. 일반 관객의 입장에서 체감하기에 국내 영화와 외화는 서로 사뭇 다른 스타일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에는 외화의 인기가 월등히 높아 <벤허> <대부>와 같은 영화가 상당수의 관객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1970년대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들의 흥행 성적 중 상위권의 대다수가 외화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 격차를 미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에서 약 30만명의 스코어를 기록했던 <러브 스토리> 역시 당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지금도 그러하듯 당시에도 인기 영화가 등장하면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일 때마다 영화의 내용이나 남녀주인공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는데, 이 영화가 개봉된 1971년 겨울, 사람들의 화제는 단연 <러브 스토리>였다. 12월이면 영화에서처럼 눈이 한창 오는 시기였으니 더더욱 눈 속의 남녀가 떠올랐을 터. 그런데 이같은 인기가 국내에서만 유달리 높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1970년에서 80년대 초•중반까지 미국에서 가장 많이 지어진 아기의 이름은 극중 여주인공의 이름인 ‘제니퍼’였다고 한다. 이쯤 되면 <러브 스토리> 이후 두 주연배우가 이어나갈 수 있는 커리어도 남달랐을 텐데, 수많은 제니퍼를 탄생시킨 알리 맥그로의 경우 이후 영화에서 이렇다 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점이 내심 아쉽다. 하지만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장면- 눈이 소복이 쌓인 공원에서 남녀주인공이 즐거운 한때를 보내는- 을 남겼다는 것으로도 배우로서는 소중한 경험이 아니었을지.

올해 초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가 연극 준비를 위해 보스턴을 찾았다가 영화의 배경이었던 하버드 대학을 방문했다는 기사를 접했다. 무려 46년 만이라 하니 영화가 제작된 지도 거의 반세기가 다 된 셈이다. 그동안 한국영화도 양적, 질적으로 성장을 거듭해 점차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춘 영화들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멜로영화도 다수 제작되었지만, ‘첫 기억’이란 아무래도 깊게 남는 까닭인지 내 안의 연관 카테고리에는 여전히 <러브 스토리>가 첫 목록에 올라 있다.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형식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해왔을 테고, 어떤 이야기들은 그 트렌드와의 거리감 때문에, 또는 지나치게 반복된 소비로 인해 최초의 인상이 빛바래지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적어도 내겐 여전히 서늘하다. 감독은 주인공의 죽음 뒤로 사람들의 오열을 덧붙이는 대신, 눈으로 뒤덮인 텅 빈 공원과 묵묵히 남은 남자주인공을 배치시킨다. 신파의 감성이 묘하게 어긋난 그 틈새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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