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한창호의 영화비평] <프랑코포니아>, 소쿠로프가 불러낸 루브르의 유령
2016-06-28
글 : 한창호 (영화평론가)
<프랑코포니아>

알렉산더 소쿠로프가 미술관 ‘애호가’라는 것은 제법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그는 미술관에 있을 때, 마치 그곳에서 절대 나올 수 없다고 고집을 피우는 아이처럼 행복해 보인다(미술관 또는 박물관으로 번역되는 Museum이란 말은 뮤즈 신에게 헌정된 공간이란 뜻, 곧 예술에 헌정된 곳임). 대표적으로 그는 2001년 <긴 여정의 엘레지>를 통해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판 보닌헨 미술관을, 그리고 2002년 <러시아 방주>를 통해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다룬 적 있다. 로테르담에서는 그림 속으로 들어가고픈 불가능한, 하지만 ‘달콤한 꿈’을, 그리고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과거 속에 머물고 싶은 충동을 그린 바 있다. 이번에 소쿠로프가 또다시 방문하는 미술관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받는 곳인 파리의 루브르다.

나치들이 루브르를 접수할 때

루브르의 찬란한 역사 속으로 관객을 초대하기 위해 소쿠로프가 동원한 장치는 ‘알려지지 않은 미담’이다. 소쿠로프는 루브르만이 갖고 있는 숨겨진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영화의 도입부를 연다. 1940년 나치가 파리를 점령했을 때다. 거리는 텅 비어 있고, 히틀러 일행이 정복지를 둘러보고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그들의 모습이 일반적인 점령자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에겐 승리한 자의 오만함, 패배자들에 대한 멸시 같은 점령자들의 일반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대신 ‘아름다운 도시’ 파리에 대한 동경의 눈빛이 역력하다. 파리에는 점령자들도 함부로 손대지 못할 품위 같은 게 있고, 나치 지도자들의 태도엔 그 품위에 대한 인정이 엿보인다.

<프랑코포니아>는 ‘품위의 신전’으로 루브르를 내세운다. 히틀러 일행이 보인 태도는 신전에 들어선 세속인의 겸손 같은 것일 테다. 루브르를 접수하러 온 나치 책임자 메테르니히 백작(베냐민 우체라트)의 태도에도 예의와 존경이 묻어 있다. 피난 가지 않고 미술관을 지키고 있는 관장 자크 조자르(루이-도 드 뤵퀘셍)를 만나, 전시실에 보이지 않는 작품들의 소재를 조용히 물을 뿐이다. 관장은 파리 폭격에 대비해 작품들을 이미 시골의 성으로 모두 옮겼다고 밝힌다. 그러자 백작은 다른 명령을 하기보다는 프랑스 관장의 조치를 지지했고, 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해 온 정성을 다한다. 백작은 히틀러 등 나치 지도자들이 ‘예술품 보존’의 명목으로 사실은 점령지의 작품들을 약탈해온 점을 잘 알고 있었다. 귀족 출신 나치 책임자와 공화주의자 루브르 관장, 이 두 남자가 합의한 것은 정치를 넘어 ‘루브르의 예술’을 지키는 것이었다. <프랑코포니아>는 먼저 이 두 남자의 미담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식민과 점령의 역사를 경험한 국민이라면 쉽게 상상이 될 것이다. 소쿠로프가 예를 든 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에르미타주 미술관이다. 찬란한 ‘겨울궁전’에 위치한 ‘세계 최대 미술관’이라는 에르미타주도 나치에 점령 당했다. 그런데 에르미타주는 루브르와 달리 나치에 전혀 존중 받지 못했다. 작품들은 약탈당했고, 건물은 파괴되고 훼손됐다. 복도는 부서지고, 빈 액자만 덜렁 남은 당시의 모습을 찍은 자료사진은 에르미타주의, 더 나아가 러시아의 모욕을 한눈에 알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중세 게르만족 반달리즘(Vandalism, 예술품 파괴 행위)의 후예들이 현대에 와서도 똑같은 일을 반복했다. 하지만 루브르만은 전쟁의 반달리즘에서 비켜갔다. 반달리즘의 모욕은커녕 적들의 존경과 사랑까지 받았다. <프랑코포니아>는 바로 그것이 루브르가 갖고 있는 독보적인 미덕이라고 보고 있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라는 이미지는, 설사 그것이 허상이라 할지라도 루브르에 크게 빚지고 있음을 강조하는 것이다.

유령으로 출몰한 나폴레옹과 마리안

소쿠로프의 미술관엔 유령들이 출몰한다. 그곳이 과거를 ‘영원한 시간’으로 봉인한 죽음의 신전이니 당연한 일일 테다. <프랑코포니아>에 출몰하는 유령은 프랑스의 영웅 나폴레옹, 그리고 프랑스 혁명과 공화국의 상징인 마리안(Marianne)이다. 두 인물 모두 루브르의 발전과 깊게 관련돼 있어서다. 마리안은 공화국의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를 계속 말하며 미술관 안을 돌아다닌다. 1789년 혁명과 공화국 건설의 과정에서 루브르는 왕실의 컬렉션을 넘어 ‘국립’ 미술관이 됐다. 말하자면 루브르는 프랑스 공화국의 아름다운 전통, 곧 마리안이 상징하는 가치인 ‘자유, 평등, 박애’가 계승되는 곳이다.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 같은 역사화들이 그 전통을 증언하고 있다.

시민을 위한 국립미술관이 된 뒤, 루브르는 프랑스 예술의 품격을 상징하는 곳으로 더욱 사랑받는다. 말 그대로 ‘루브르는 프랑스’가 됐다. 루브르가 그림 속에 등장하며 숭배의 대상이 된 것도 이때다. 영화에서 강조하듯, 당대의 신고전주의 화가 위베르 로베르가 그린 루브르 관련 그림들, 특히 <그랑 갤러리>(1795)는 최고의 예술로서 루브르 미술관 자체를 찬양하고 있다. 깊은 원근법 속에 묘사된 루브르는 거대한 신전 같다.

루브르의 발전에 빠뜨릴 수 없는 또 다른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나폴레옹의 제국주의 시대에 루브르의 ‘재산’은 급격히 늘었다. 고대 아시리아의 궁전에 있던 조각물 <날개 달린 황소>(기원전 8세기)가 여기 루브르에 전시돼 있는 것은 나폴레옹 시대 약탈의역사를 증거한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듯 그런 조각품들 앞에도 나타나 “내가 다 했어”라는 말을 반복하고 있다. 곧 루브르에는 공화국 건설이라는 역사의 미덕이 새겨져 있지만, 동시에 자국만을 존중하는 배타적인 국가주의, 그리고 그 국가주의가 타락할 때 잉태되는 제국주의의 비극도 기억돼 있는 셈이다. 이렇듯 <프랑코포니아>는 국립미술관이 갖고 있는 국가주의의 위험을 간과하지 않는다.

<프랑코포니아>는 루브르에서 사유되는 테마들을 연결한 에세이 필름이다. 고다르의 <영화의 역사(들)>(1998)처럼, 소쿠로프는 역사적 다큐멘터리와 사진, 역사를 재연한 필름, 그리고 페이크 다큐멘터리 등의 다양한 자료를 편집하며, 자신의 생각을 담은 내레이션을 섞는다. 그리고 그 작업을 진행하는 자신의 모습도 삽입하는데, 그때면 소쿠로프는 스카이프를 통해 대서양을 항해 중인 어느 선장과 통화를 시도한다. 예술품들을 잔뜩 실은 화물선은 거센 파도 때문에 거의 난파 위기에 처해 있다. 소쿠로프는 선장에게 “빨리 화물들을 버려라”라고 소리 지른다. 자칫 화물 때문에 배가 난파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선장은 화물을 포기할수 없고, 끝까지 버틸 태세다. 파도는 더욱 거세지고, 기상 때문에 통화는 자꾸 끊긴다. 화물들은 어떻게 됐을까?

소쿠로프는 예술의 운명이 바로 이와 같다고 여기는 것 같다. 난파 위기를 맞은 배 위의 화물 말이다. 영화에서 낭만주의 회화의 걸작 테오도르 제리코의 <메두사 호의 뗏목>(1819)이 강조되는 것도 이런 이유일 테다. 루브르, 곧 예술은 언제 버려질지 알 수 없는 뗏목 위의 생존자인 셈이다. 이런 염려가 과장이 아닌 것은 루브르를 찬양했던 화가 위베르 로베르도 <폐허가 된 루브르의 갤러리>(1796)라는 그림을 통해 이미 표현하고 있어서다. 로베르의 그림에는 찬란했던 루브르가 이미 폐허가 되어, 먼지 속에 버려져 있다. 그것은 미술관의 비관주의적 미래이자 예술의 미래일 테다. 예술품들이 파괴되는 전쟁과 경제우선주의 시대의 현대인들에게 로베르의 상상, 또 <프랑코포니아>의 염려는 결코 과장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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