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은 필요 없지만 아이는 가지고 싶다? 골드미스 톱스타 주연(김혜수)은 별안간 아이를 갖겠다고 선언한다. 어릴 때부터 열심히 일해서 대한민국 최고의 자리에 올랐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내 편은 없다”는 게 그 이유다. 든든한 스타일리스트 평구(마동석), 주연을 묵묵히 믿고 따르는 소속사 사장 김 대표(김용건), 성실한 매니저 미래(황미영) 등 소속사 식구들이 오랫동안 그녀의 뒷바라지를 해왔지만, 그녀의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굿바이 싱글>은 주연이 아이를 갖겠다고 선언하면서 시작되는 코미디영화다. <독>(2008), <1999, 면회>(2012)를 연출하고, <족구왕>(감독 우문기, 2013)의 시나리오를 쓴 김태곤 감독의 첫 상업장편영화다.
-제작사로부터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이야기의 어떤 점이 흥미로웠나.
=처음에는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되게 망설였다. 주인공이 여성이고, 미혼모 문제를 다루는 이야기인 까닭에 잘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영화가 말하려는 주제가 가치가 있더라. 여성 작가가 쓴 시나리오였는데, 평소 가지고 있던 미혼모에 대한 생각을 이야기에 반영할 수 있다면 관객과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장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연출 제안을 받았을 때 미혼모 설정이 이미 시나리오에 있었나.
=지금보다 더 무겁고 어두운 면이 많았다. 예민할 수 있는 소재를 코미디로 풀어내는 이야기였는데 관객이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를 억지로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연출을 맡게 되면서 주연 캐릭터를 구축하는 데 공을 많이 들여야 했다.
-김혜수의 어떤 면모가 주연과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나.
=(김)혜수 선배님 이미지가 있지 않나. 당당하고 카리스마가 있고. 전작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 2015)에서 연기했던 역할도 그랬고. 물론 그런 모습도 매력적이지만 <이층의 악당>(감독 손재곤, 2010)에서 선배님이 보여준 엉뚱한 면모도 좋아한다. 주연은 <이층의 악당> 속 캐릭터보다 더 엉뚱한 여자이지 않나. 그 모습을 보여주면 관객이 흥미로워할 것 같았다. 선배님을 뵙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면서 순수한 면모도 많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주연이 내 편을 만들기 위해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말한다. 그때 관객이 그녀의 선택을 납득할 수 있는가에 따라 이 영화의 성패가 갈린다고 생각했다. 그 점에서 주연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구축하는 게 관건이었을 것 같다.
=말씀대로 그녀가 아이를 가져야겠다, 엄마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이 이야기의 시작이다. 그게 설득력 있게 전달되지 않으면 갈피를 잡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다. 캐릭터를 처음 설정할 때 가장 신경썼던 것도 주연이 우습게 보이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녀가 우스워 보이면 비호감 캐릭터로까지 보일 수 있으니까. 남들에게는 얼토당토않은 생각이라도, 주연은 자신의 결정을 믿어야 했다. 주연의 말과 행동이 절대 의뭉스럽게 보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도 그래서다. 그녀의 주변 사람들도 주연을 아무 생각 없는 사람으로 대하지 않나. 그래야 그녀가 아이를 가지고 싶다고 외쳤을 때 타당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갖고 싶다는 그녀의 결정이 납득이 됐던 건 그녀가 철없는 톱스타라는 설정도 한몫했을 것 같다. 세상과 차단된 생활을 해왔고, 항상 주변 사람들이 작은 일까지 대신 처리해주는 톱스타라면 마흔이 넘도록 세상물정에 어두울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릴 때부터 연기 생활을 시작했던 여배우들의 과거 기사를 많이 찾아봤다. 그 자료들을 토대로 주연의 전사를 A4 10장 분량으로 써서 혜수 선배님께 드렸다. 그녀의 철없음은 그녀의 삶 어디에서 비롯됐는지와 같은 사연들이 들어간 전사였다. 선배님이 주연의 전사를 읽고 수정할 부분은 함께 수정하면서 주연을 만들어갔다.
-평구는 주연 옆에서 때로는 직언을 서슴지 않고, 또 때로는 다독여준다. 처자식이 있는 동시에 주연을 포함한 매니지먼트사 식구들과 유사 가족을 이루고 있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이 영화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한다. 고주연의 매니지먼트사 사람들은 단순한 직장 동료가 아니라 유사 가족 관계로 맺어져 있다. 돈을 벌어와 식구들을 먹여살린다는 점에서 주연은 가부장 역할을 한다. 반대로 평구는 가족 뒷바라지를 하고, 가정의 평화가 깨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엄마 역할이다. 매니지먼트사 김 대표는 할아버지 역할이고. 평구와 주연의 로맨스를 기대했다는 반응도 있었는데, 둘은 어릴 때부터 친구였고, 주연이 예뻤으니 평구가 좋아하기도 했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겠다. 그런 식으로 평구 전사와 캐릭터를 구축해갔다.
-<굿바이 싱글>은 주연이 자신의 철없는 결정이 얼마나 윤리적으로 아슬아슬한 문제인지 깨닫게 되는 성장영화이기도 하지만, 유사 가족이 유지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를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형제, 자매가 많았고, 대가족을 이루며 살지 않았나. 하지만 지금은 형제, 자매가 하나 혹은 둘뿐이고, 일 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사회적으로는 사적인 공간이 중요한 시대이기도 하고. 거기서 비롯되는 외로움이 분명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나의 외로움을 떨쳐내기 위해선 결국 희생이 필요하다.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희생해야 하고, 서로가 희생해야 관계가 오랫동안 유지될 수 있다.
-전작 <1999, 면회> 이후 첫 상업영화로 코미디 장르를 결정한 이유는 무엇인가. 현재 극장가에서 코미디는 흥행하기 쉽지 않은 데다가 흥행을 크게 하지 않는 이상 감독이 대중의 눈에 띄기가 쉽지 않은 장르인데.
=그래서 주변의 여러 감독님들이 많이 말렸다. 코미디라는 장르가 산업에서 큰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장르라는 게 이야기의 외피이지 않나. 이야기가 가치 있고, 시도해볼 만하다면 장르는 코미디든, 스릴러든 상관없다. <굿바이 싱글>에 적합한 장르는 코미디라고 생각했다.
-<1999, 면회>나 기획, 각본, 제작으로 참여했던 <족구왕>을 통해 얻은 코미디에 대한 노하우가 따로 있나.
=웃음을 억지로 유발해서는 안 된다. 사석에서 웃기기 위해 달려드는 사람들을 보면 되게 민망하지 않나. 한번 웃겨봐라는 태도도, 한번 웃겨주겠다는 태도도 참 민망하다. (웃음) <굿바이 싱글>은 웃기기 위해 만든 영화가 아니다. 미혼모나 골드싱글의 고민 같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야기에 재미있는 요소들을 곳곳에 배치하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 속 고민에 공감하고, 이야기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다른 장르도 그렇지만, 코미디도 장르 특유의 쾌감이 있다. 웃음은 즉각적인 반응인 까닭에 코미디영화를 만드는 사람에게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동시에 코미디를 잘 만들었을 때 어려운 장르인 만큼 성취감도 크다. 그래서 용기를 더욱 내고 싶다.
-개봉을 앞두고 있는데 어떤가.
=특별히 긴장되는 건 없다. 얼마 전, 후반작업이 끝났다. 언론배급 시사 때 버전과 크게 달라지진 않았고, 색보정이나 사운드 같은 기술 파트를 좀더 점검했다. 흥행을 떠나 이 영화를 함께 만들었던 스탭과 배우들이 좋은 작품이라고 생각을 해줘서 1차적인 성공을 거뒀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굿바이 싱글>은 최소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