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
[영화人] 극을 지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했다 - <비밀은 없다> 주성림 촬영감독
2016-06-30
글 : 이화정
사진 : 백종헌

2016 <비밀은 없다> 2015 <로봇, 소리> 2015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 2013 <뜨거운 안녕> 2011 단편 <파란만장> 2008 <박쥐> B카메라 2006 <뚝방전설>

범죄 수사극으로 말문을 열지만, 하나의 장르로 확연히 규정할 수 없는 풍성한 전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리는 모호하고 독특한 전개의 화면 뒤에는 영화의 비주얼을 책임진 주성림 촬영감독이 단단히 버티고 있다. “보통 시나리오를 보면 어떤 식의 영화가 될 거라는 것이 한눈에 그려지는데, 이번엔 모호하고 어려웠”음을 토로한다. 선거 15일 전, 급박한 상황 속 딸을 잃은 유력 후보자의 아내 연홍(손예진)의 심리적 파경을 만들어가기 위해 나온 답은 배경이 되는 대산시의 톤을 잡는 것이었다. “비와 안개가 자욱한 동네를 설정했다. 스티븐 매퀸의 <셰임>(2013)을 보면 화면에서는 눈에 띄지 않지만 바닥은 비로 늘 젖어 있는데, 그렇게 극을 지배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보려 했다.”

전체 맥락을 통해 캐릭터의 상황을 보여주려는 시도는 주성림 촬영감독이 끝까지 고수한 부분이다. “콘트라스트 강한 화면과 무드로 캐릭터가 설명되는 1940년대 누아르영화의 화면구성을 떠올렸다.” 특히 연홍의 남편 종찬(김주혁)의 입체적인 표정은 이런 촬영 원칙과 함께 많은 액션을 하지 않아도 극대화된다. 시선을 끄는 장면은 아이가 실종된 후 연홍의 집 풍경이다. 2층에서 1층으로 이어지는 연홍과 종찬의 언쟁. 이 상황에서 주성림 촬영감독의 카메라가 전경에 배치하는 것은 둘이 아닌, 이날 집에 모인 선거 운동원들의 반응이다. “콘티 구성 때부터 경제적인 컷 구성을 거듭 고민했다. 꼭 사건이 벌어지는 상황, 배우의 얼굴을 클로즈업하지 않아도 주변 분위기와 인물들을 통해 전체 맥락을 담아내면 상황이 충분히 전달될 수 있겠더라.” 더불어 현재를 설명하는 전개와 함께 연홍이 사라진 딸의 과거를 뒤쫓고 재구성하는 플래시백 장면을 이질감 없이 연결하는 것도 관건이었다. 어두운 톤의 현재와 반대로 사춘기 딸의 시간을 지배하는 교정은 화사하고 아름답게 그려져, 마치 다른 영화를 보는 듯한 인상을 준다.

연출을 한 이경미 감독과의 의기투합이 이룬 이토록 낯설고 독특한 촬영 뒤에는 ‘박찬욱’이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키워드가 숨어 있다. <친절한 금자씨>(2005)의 스크립터 이경미 감독과 함께 그는 당시 촬영부로 참여했다. “감독님은 인정 안 하시겠지만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웃음)” 특히 그는 박찬욱 감독의 오랜 파트너인 정정훈 촬영감독과 동국대 연극영화과 선후배이자, 촬영부로 함께 일해왔다.“박찬욱이라는 영향력 때문에 자칫 아류가 될까봐 자기검열을 했지만, 오히려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 있는 것을 끄집어내자’는 이경미 감독의 확신에 갈피를 잡을 수 있었다”고. “작품에 따라, 감독에 따라 폭넓게 변화할 수 있는 촬영감독이 되고 싶다. 그러다보면 결국 내 스타일도 서서히 확립될 거다.”

주성림 촬영감독의 벨트색.

“스탭들이 패션테러리스트라며 말린다. (웃음)” 하지만 현장에서 주성림 촬영감독은 항상 담배, 무전기, 노출계를 넣은 벨트색 차림이다. 무전기가 사실 크게 필요 없는데도, 노출계를 거의 쓰지 않는데도, 현장에 나갈 때는 꼭 챙긴다고. “무전기로 감독과 직접 이야기하면 뉘앙스 전달도 잘되고….” 결국 습관처럼 몸에 찬 벨트색을 그는 이렇게 규정한다. “나한테는 전장의 갑옷 같은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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