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영화를 여러 번 보지 않는 나에게 예외인 영화가 두개 있다. <사랑의 블랙홀>(1993)과 <도그빌>(2003)이다. 둘 다 우울함의 에너지가 뻗쳤던 이십대 중반에 많이 보았다. 어느 정도로 우울했냐면 그 기운에 방의 왕자행거가 무너질 정도였다. 진짜다. 어느 날 옷이 하늘에서 우수수 떨어졌다. 나는 패딩, 원피스 같은 것들에 파묻혀 계속 영화를 보았다. 그 순간에도 두 영화 중 하나를 보고 있었을 것이다. 틀어두었던 이유는 간단하다. <사랑의 블랙홀>은 하얀 세상의 시원한 해피엔딩, <도그빌>은 회색 세상의 시원한 해피엔딩이었기에.
내 친구 A 얘기를 잠시 하겠다. 그는 장학생인 데다가 모두에게 친절했고 예민한 동시에 유머감각까지 있었다. 그는 남의 말을 빠르게 안전한 농담으로 받아치곤 했다. 사람을 좋아해서 참석하는 모임도 많았다. 그의 세계에는 질서가 있었다. 일도 인간관계도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는 질서. 오랜만에 A를 만나니 그 세계는 붕괴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입 아픈 얘기다. 결과물은 뺏기고, 좋은 형님에게 뒤통수를 맞고. 그런 슬픈 이야기 속에 마모된 나의 가련하고 선한 친구. 그에게 위로와 공감을 줄 수 있으면 좋았겠지만 비정한 나는 이렇게 말했다. “모든 것은 네가 위선적이기 때문이야. <도그빌>을 봐.”
내가 이해한 이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유리처럼 투명하고 아름다운 여자 니콜 키드먼, 극중 이름 그레이스가 깡촌 도그빌에 나타난다. 수상하다. 꾀죄죄한 마을 사람들과는 너무 다르다. 그런 선녀 같은 그녀가 여기에 머무르고 싶으니 대신 일을 돕겠다고 한다. 미심쩍지만 마을 사람들은 부탁을 하나씩 해본다. 얼뜨기 같은 톰(폴 베타니가 어리숙하고 비겁한 연기를 너무 잘했다) 은 그녀가 마을에 정착하는 것을 돕는다. 아마 그녀가 유리처럼 예쁘기 때문이겠지. 잠들기 전에는 그녀를 정착시켜서 아들딸 낳고 사과 농사 지으며 사는 상상도 했겠지. 그레이스는 마을의 일을 더 많이 돕게 되고 그녀의 호의는 슬슬 당연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마피아의 차가 나타나서 어떤 여자를 찾기 시작하자 그레이스의 등급은 뚝 떨어진다. 널 숨겨주는 것은 위험한 일이니 고마운 줄 알고 몸이 부서져라 일해. 마을의 남자도 여자도 선녀를 막 대했다. 그 쾌락이 상당했겠지. 하지만 선녀는 모든 것을 받아들인다. 그래 내가 더 잘하면 언젠가는 알아주겠지, 하고 말이다. 선녀의 오만.
학대는 점점 세진다. 어느새 그레이스는 개 목줄에 묶이게 된다. 이렇게 쓰면 ‘웬 비약이야’ 하겠지만 영화로 보면 얼마나 자연스러운지 모른다. 모든 것은 감히 탈출을 꿈꾼 그레이스 탓이다. 합리화는 참 무섭다. 비춰볼 거울이 없기에 폐쇄된 집단은 쉽게 비이성적으로 잔인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무서운 마피아의 차가 다시 나타나는데 알고 보니 마피아의 두목은 그레이스의 아버지였다. 그레이스 공주님은 반항심에 집을 나와서 이런 거지 같은 꼴을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의 선함을 믿는다고, 견디면 알아줄 거라고 말하는 그레이스에게 아버지는 말한다. “너는 정말 오만하구나.” 나는 이 대사를 듣고 이 영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어떤 이야기 속에서 피해자가 되면 오히려 속 편할지도 모른다. 자신은 흠결이 없기 때문이다. 저열한 세상 속에서 고고하게 눈물 지으면 된다. 피해자를 비꼴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목에 개 목줄을 달게 되기 전에 그 마을을 뜨는 게 좋다고 말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타인을 품을 수 없으니까. 그레이스는 결국 마을 사람들 모두를 몰살한다. 아, 시원해. 하지만 그레이스가 기관총을 갈기기 전에 포기하고 떠났다면 마을 사람들도 천수를 누렸을 텐데…. 친구는 <도그빌>을 보았고 이직을 하였고 인간관계도 정리했다. 영리한 친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