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연애의 이력>은 흔하디흔한 연애담이 결국엔 흔한 이야기가 될 수 없는 이유를 들려주는 영화다. 조성은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이혼한 부부가 공식적인 헤어짐을 인정받기까지의 시간을 통해 연애와 사랑, 결혼의 속살을 풀어놓는다. 전형적인 로맨틱 코미디의 틀을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이제껏 보지 못한 이야기인 것처럼 새롭다. 아역 출신 배우 연이(전혜빈)와 영화감독을 꿈꾸는 조연출 선재(신민철)가 티격태격하는 디테일한 일상이 이 영화의 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성은 감독은 실제로 조명감독(김승규)인 남편과 함께 영화계에서 활약 중인 부부 영화인이다. 후반작업 중에 쌍둥이를 가져 얼마 전에 출산한 조성은 감독에게 이 영화는 장편 감독으로서의 존재감을 확실히 증명한 작품이자 생에 큰 선물을 안겨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태어난 지 두달도 되지 않은 쌍둥이의 엄마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조성은 감독을 만나 지금의 특별한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를 들어봤다.
-얼마 전 쌍둥이가 세상에 나왔다고 들었다.
=쌍둥이 덕분에 이렇게 외출하는 게 특별한 시간이 되었다. (웃음) 잠을 거의 못 자서 몽롱한데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쐬니 좋기도 하고, 영화 홍보 활동을 거의 못하고 있는 형편이라 죄송하기도 하고. 나도 내 상태를 딱 꼬집어 설명하기 힘들다. 인터뷰도 아마 의식의 흐름에 따라 진행될 테니 잘 정리해주시길 믿는다. (웃음)
-만삭인 상태에서 후반작업을 하느라 힘들었겠다.
=2015년 4월경에 촬영 끝낸 후 잠시 휴식을 가졌다. 여행하면서 쉬는 사이 아기가 생겼고 올해 후반작업을 할 때 이미 배가 꽤 불러온 상태였다. 몸은 힘들었지만 거리를 두고 다시 작업을 확인할 수 있어서 새롭게 보이는 지점들이 있었다. 저예산이지만 상업영화의 틀 안에서 작업해야 해서 생각이 많았다. 특별히 어떤 색깔을 의식한 건 아니었지만 재밌게 보면서도 여운이 남을 수 있는 이야기였으면 했다.
-언뜻 상업영화에서 흔히 봐온 로맨틱 코미디 같으면서도 독특한 시점이 녹아 있다.
=선명한 하이 컨셉 아래 기획된 상업영화는 아니다. 부부가 이혼하는 내용에 대한 시나리오를 의뢰받았는데 초반에 넘겨받아 오래 붙잡고 수정하다보니 이혼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추린 부분도 있지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웬만큼 한 것 같다. 아쉽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주어진 제약 아래 이만큼 해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과 성취감을 느낀다. 22회차 정도의 촬영 기간 동안 현장에서 함께하는 즐거움이 컸다. 이 자리를 빌려 스탭과 배우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
-기획영화라고 하기엔 특이하고 작가적인 색깔이 짙다고 하기엔 보편적이다. 익숙한 이야기를 참신하게 풀어낸 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여러 방향을 열어두고 진행한 유연한 프로젝트였다. 내가 가진 색깔들이 녹아들기도 하고 주변에서 보고 들은 것들이 여러 가지로 섞여서 지금의 형태가 나온 것 같다. 처음에는 좀더 비상업적이고 불친절한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영화 안에 뭔가를 많이 숨기고 싶지 않았고 그럴 만큼 아는 게 많지도 않다. 되도록 단순하고 솔직하게 보여주고 싶었다.
-대사가 꽤 많다. 이 영화의 장점이자 재미있는 부분인데, <다시 찾은 크리스마스>(2003), <숲의 딸들>(2007) 같은 단편영화들과는 전혀 다른 스타일이라 변화가 흥미롭다.
=아직까지는 이게 내 스타일이다, 라고 할 만한 게 없다. 다양한 영화를 좋아하기도 하고 해보고 싶은 것도 많다. 단편에서 보여줬던 것들도 고정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그때그때의 감정과 상황에 충실한 결과물이었고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듣는 걸 좋아한다.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재미있다. 어디선가 들었던 말들이 대사에 자연스레 녹아드는 것 같다. 부부의 이야기이니 경험담이 녹아든 것도 있다. 남녀간에 치사해지는 부분이나 사소한 다툼 같은. 물론 우리 부부가 이렇게까지 극적으로 살지는 않지만. (웃음) 대사 쓰는 재미는 이번 작품을 통해 배워나간 것 같다.
-가정법원에서 시작하는 연애담, 이혼 후에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낸 설정들이 흥미롭다.
=내가 느꼈던 사소하고 치사한 감정들을 돌아보면서 녹아든 감성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주변 취재를 했다. 시나리오 컨셉을 잡은 후 본격적으로 이혼 커플에 대한 자료조사를 위해 법원에 자주 갔다. 서류 절차에 대한 설명을 듣거나 바깥에서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오래 지켜 보다보니 절대 이혼할 것 같지 않은 커플들의 모습이 꽤 있었다. 멀리서 몸짓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면 ‘아, 저 사람들은 서로에게 시위를 하고 있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커플들. 이혼하려면 이렇게 귀찮은 일을 겪어야 하는구나, 이혼이라는 절차나 제도가 번거롭기도 하고 피곤하기에 최대한 이혼을 유예시켜보려는 발버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의 엔딩을 처음부터 염두에 둔 건 아니고 소재를 파고들수록 엔딩의 모습이 새롭게 만들어져갔다. 느슨하고 알 수 없는 것들에 늘 관심이 간다. 특히 관계에 대해서는 정답을 내릴 수 없는 것들 투성이니까. 다른 이야기보다 사랑 이야기에 더 끌린다.
-특별히 애착이 가는 장면이 있나.
=우연이 미닫이문을 열기 전에 멈춰 서는 장면이 있다. 편집해놓고 보니 인물들이 문턱 앞에 잠시 멈췄다가 등 뒤로 들리는 소리를 듣고 문턱을 넘어서는 장면이 여러 개 있더라. 살면서 별것 아닌 것들이 내게 자극이 되어 망설이던 일을 시작하게 된 경험이 종종 있었는데, 그런 감정들이 적절하게 담긴 장면인 것 같다. 아쉬운 건 예산이 적다보니 구상했던 공간을 찾기 어려웠다. 타협을 해서 공사 중인 집에 들어가서 촬영했는데 환경도 수시로 바뀌고 소음이 심해서 힘들었다. 어쩔 수 없다고 스스로 타협하며 찍은 화면들이 있는데 개봉영화로 책임을 다하지 못한 건 아닌가 싶어 겁이 나기도 한다. 다음에는 기회가 된다면 공간이 줄 수 있는 일상성이나 그 동네만이 줄 수 있는 독특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다.
-시드니 공과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하고 폴란드 우츠국립영화학교에서 트레이닝 코스를 마친 후에도 연출부 일을 바로 하지 않고 통·번역이나 소규모 프로덕션, 출판 에이전시 등 다양한 일을 했다.
=여유 있게 생각하려 했다. 충분히 준비되고 영글었을 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물론 지금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웃음) 절박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일 자체를 목표로 삼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닐까 싶다. 장편 데뷔가 목표가 되는 순간 ‘내’가 뒤로 밀려나는 건 아닐까 겁이 났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당장 헤어지지 못하고 서로를 향해 기웃거리는 모습이 영화쪽에 끈을 놓지 않고 경계를 오가던 내 모습과 닮은 것도 같다. 기회가 되면 언제든 할 수 있게끔 준비를 갖춰왔다고 할까. ‘하면 된다’ 보다는 ‘되면 한다’쪽에 가깝다. 중요한 건 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거다. 열망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론 무언가가 이뤄지진 않는다.
-차기작은 어떻게 계획하고 있나.
=될 수 있게끔 치밀하게 밑작업을 하는 스타일이다. 당분간은 육아에 전념 하겠지만 이번에도 준비할 수 있는 것들은 하면서 영화에 대한 끈을 놓지 않고 계속 기웃거릴 예정이다. (웃음) 기본적으로 듣고 본 것들에서 소재를 끌고 오는 편이라 육아 이야기를 쓸지도 모르겠다. 예를 들면 산부인과가 정말 감정의 용광로 같은 곳이란 걸 깨달았다. 어쩌면 병원 스릴러가 나올지도? (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