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비평]
[김지미의 영화비평] 상실 이후에 당도한 삶
2016-07-13
글 : 김지미 (영화평론가)
<환상의 빛>

죽음과 삶, 고통과 치유를 담은 히로카즈의 씨앗들 <환상의 빛>

대학을 갓 졸업한 무렵 한 선배의 부음을 들었다. 나보다 고작 몇 학번 위 선배의 죽음은 당황스러웠다. 누군가의 죽음은 늘 “어떻게?”라는 질문을 이끈다. 그 죽음이 자의에 의한 것이라면 애도 이전에 “왜?”라는 또 다른 질문으로 접어들게 한다. 유서가 있든 없든 그 “왜?”는 늘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지 못한다. 그것은 막다른 골목이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그가 남긴 유서는 그 골목 끝에 끄적인 낙서와 같다. 어쩌면 그 “왜?”는 죽은 이가 아니라 남은 자신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른다. 선배는 술을 마셨고, 바다로 나갔다고 했다. 함께 있었던 이들은 그것이 ‘사고’인지 ‘자살’인지 시원하게 답해주지 못했다. 그 뒤로 한동안 술을 마실 때마다 그녀가 그날 들은 파도 소리는 어땠을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었다.

이 영화를 보고 나오다 젊은 여성 둘이 나누는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그 남자는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았나봐.” “그래, 아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했나봐.” 아마도 감독의 의도와 상당히 거리가 있는 관객의 반응이겠지만, 어쩌면 이쿠오의 자살 이후 유미코의 마음을 가장 빈번하게 헤집고 다닌 의문이었을 것이다. ‘자살’과 다른 죽음의 가장 큰 차이는, 유족에게 애도 이전에 ‘질문’ 어린 시선과 해결되지 않는 ‘죄책감’이 먼저 당도한다는 점일 것이다. 자살에 관한 연구서를 보면 유족을 가장 못 견디게 하는 것은 그들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알 수 없는 점이라고 한다. 그리고 치유는 유족 스스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것으로 귀결된다. <환상의 빛>도 급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유미코의 마음을 묵묵히 좇다가 “그는 왜 죽은 것일까요?”라는 질문을 발화함으로써 비로소 그의 죽음과 그로 인한 그녀의 고통을 폭발 시키는 장면이 클라이맥스에 해당한다. 겉으로 보면 너무나 담담해서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던 그녀는 실제로는 그 말을 입밖에 내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자살 이후 남겨진 이의 삶을 보듬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장편 데뷔작인 이 작품에는 이후 그의 영화에서 발견되는 캐릭터들의 특성과 삶과 죽음을 다루는 시선의 원형이 숨어 있다.

스타일 측면에서의 다른 선택

영화는 미야모토 데루의 <환상의 빛>을 원작으로 한다. 감독은 스토리 차원에서는 원작에 충실하지만, 스타일(문체) 측면에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둘의 가장 큰 차이는 담론의 시간과 유미코의 목소리다. 원작은 서간체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이쿠오의 죽음 이후 7년의 세월이 흐른 뒤 회상하는 형식으로 기술되어 있다. 영화는 유미코가 할머니를 잃은 트라우마가 생긴 시점부터 순차적으로 보여주며, 유미코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거의 들리지 않는다. 그녀는 이쿠오가 살아 있던 때와 타미오와 새로운 삶에 익숙해졌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입을 열지 않는다. 로저 에버트가 유미코 역의 에스미 마키코에 대해 “화면 한가득 엄청난 고요를 가져온다”고 평했던 것은 그녀의 아우라를 예찬한 것이지만, 실제로 그녀는 영화 전반에 걸쳐 매우 고요하다.

반면 소설 속 유미코는 ‘새로운 남편과 그럭저럭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으면서, 죽어버린 전남편에게 이렇게 열심히 말을 걸고 있는’, 스스로의 표현에 따르면 ‘참 불쾌한 여자’다. 물론 죽은 남편에게 말을 거는 것은 그에 대한 미련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남아 있는 질문 때문이다. 소설 속 화자는 시간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자신이 이쿠오의 죽음에 관련된 의문을 품고 있으며, 그것이 그녀의 삶을 관통하는 가장 큰 고통 중 하나이자 넘어야할 장애임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이끌어낸 과거에 관한 기술은 그 치유의 과정에서 환기된 기억들이다. 그러나 반대로 영화 속의 유미코는 이미 고통을 인지하거나 치유를 준비하는 화자가 아니다. ‘꿈’을 통해 재현된 과거(할머니의 실종)는 치유가 아닌 사고의 전조나 그녀가 받을 상처의 깊이를 증강하기 위한 장치로서 제시된다. 즉 소설 속 유미코는 이쿠오의 죽음 이후에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내는 데 거의 도달한 주체라면 영화 속 그녀는 그 과정에 놓인 주체라고 할 수 있다. 수용적인 측면에서 보면, 소설의 독자들은 유미코가 분석한 결과를 이해하게 되는 반면 영화의 관객은 그녀가 겪는 심리적 고통을 감각적으로 느끼게 된다. 앞서 말한 젊은 여성 관객의 반응은 아마도 유미코의 심리적 상태를 공감한 데서 비롯된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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