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드 안에 본 있다, 라는 말이 딱히 낯설진 않다. 각각 첩보액션영화의 과거와 현재를 대표하는 ‘007 시리즈’의 제임스 본드와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이 너무 닮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임스 본드가 지금도 현재형이기 때문에 그런 동시대적 비교가 가능할 것이다.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최근 두 시리즈의 전반적인 액션 설계를 책임진 스턴트 코디네이터 혹은 세컨 유닛 디렉터가 바로 댄 브래들리라는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두 역할을 모두 맡거나 한 가지 역할만 할 때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액션 설계에 관한 한 그가 가장 큰 실권자라 보면 된다). 가령 마크 포스터의 <007 퀀텀 오브 솔러스>(2008)와 폴 그린그래스의 <본 얼티메이텀>(2007)을 비교하면 보다 확실해진다. <007 퀀텀 오브 솔러스> 초반부 이탈리아에서의 추격 신, 그러니까 카 체이스가 시작되고 스파이를 쫓아 관광객을 헤치고 옥상까지 추격이 이어지다가 건물을 오가며 마지막으로 낡은 고성당의 천장 유리를 뚫고 떨어져 외줄에 의지한 채 고공 격투를 벌이는 모습은, 한해 앞서 만든 <본 얼티메이텀>의 모로코 탕헤르 추격 신을 여러모로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거의 유사한 동선과 구도로 완성됐다. 말하자면 댄 브래들리는 2000년대 들어 매번 앞서 만든 영화의 액션을 다음 만드는 영화에서 업그레이드하는 방식으로 2개의 시리즈를 사이좋게 오갔다. 두 시리즈 사이의 흥미로운 밀월 관계랄까.
재밌는 것은 최고의 주가를 올리던 댄 브래들리가 <스파이더맨2>(2004)와 <스파이더맨3>(2007)는 물론 돌아온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2008)과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2011)에도 참여했다는 사실이다. 인디아나 존스의 때늦은 귀환이 불안했던 스티븐 스필버그가 가장 먼저 찾았던 사람이 바로 그였다. 과거 1997년 <데블스 오운>을 함께했던 해리슨 포드의 강력 추천이 있었다(참고로 댄 브래들리가 꼽는 ‘지금껏 가르쳐본 중 가장 액션 잘하는 두 배우’가 바로 해리슨 포드와 맷 데이먼이란다). 또 <본 슈프리머시>(2004)로 폴 그린그래스와 처음 만나면서 두 사람이 의기투합했던 것은 바로 ‘<미션 임파서블>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처럼 단 한 사람의 존재로 인해, 제임스 본드와 제이슨 본은 물론 스파이더맨과 인디아나 존스와 에단 헌트까지 적어도 특정 시점에서는 서로 액션 스타일이 엇비슷해 보인다. 그런데 그사이 감독 데뷔도 했던 댄 브래들리는 이제 본 시리즈를 떠났다. 아쉽긴 하지만 <본 얼티메이텀>과 <007 퀀텀 오브 솔러스>에도 참여했던 사이먼 크레인과 게리 파월이 각각 세컨 유닛 디렉터와 스턴트 코디네이터로 힘을 합쳤다. 특히 댄 브래들리가 007 시리즈를 떠난 이후 샘 멘데스의 총애를 받으며 <007 스카이폴>(2012)과 <007 스펙터>(2015)의 스턴트 코디네이터를 맡았던 게리 파월이 있기에 ‘본드 안의 본’은 여전히 변함없을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게리 파월 집안은 오래도록 007 시리즈를 위해 헌신해온 스턴트맨 집안이다. 게리 파월은 앞선 본드인 피어스 브로스넌의 대역 스턴트를 맡았었고, 큰형 그렉 파월은 그보다 앞선 제임스 본드였던 로저 무어와 티모시 달튼의 대역이었다. 심지어 아버지 노셔 파월과 삼촌 디니 파월은 그보다 전에 숀 코너리의 대역이었다. 우리가 볼 때 다 다르게 생긴 제임스 본드라고 느끼지만, 같은 유전자의 집안 남자들이 대를 이어 그 본드 대역을 맡아온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두 시리즈의 밀월 관계가 언제까지 계속될지, 당장 <제이슨 본>의 액션은 어떨지 궁금하다. 그렇게 제이슨 본이, 기다렸던 맷 데이먼이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