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입을 모아 망했다 말하지만, M. 나이트 샤말란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영화감독이다. 사실 나는 영화라는 매체를 다소 가늘게 눈을 뜨고 의심하며 보는 편인데, 때로 영화가 자신이 영화임을 숨기고 싶어 한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곤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진짜라고, 이곳에 굉장한 것이, 진실이 있다고 말하는 듯한 영화들, 어떤 진실을 포착해내는 기적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는 듯한 영화를 볼 때, 나는 불편함을 느끼고야마는 것이다. 정말? 진짜? 그게 진짜야? 진실이 거기에 있어? 자꾸 그렇게 묻고 싶어져서.
내가 샤말란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까닭은 바로 거기에 있다. 샤말란의 영화는 언제나 한 가지 결론에 도달한다. 그의 영화는 이야기 속에 대단한 비밀이 숨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전개되지만 마지막에 와서는 그래,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어, 사실 이건 그냥 이야기야, 환상이야, 허구일 뿐이야, 그리고 너는 너의 삶=현실을 살아가야 해, 라며 갑자기 발을 빼고 영화를 끝내버린다. 세세한 차이는 있지만 <싸인>이나 <해프닝> <빌리지> 등을 예로 들 수 있으리라. 영화라는 양식을 적극 활용하여 경이로운 것에 대한 기대를 쌓아올리다가 마지막에 와서 초라하고 허탈하기까지 한 진실을 마주하며 쓸쓸하게 삶으로 돌아가는 그의 영화를 나는 사랑한다.
영화에 대해 말해야 하는데 감독에 대해 길게 말한 까닭은, 이렇게 샤말란에 대한 나의 사랑을 피력하지 않고서는 그의 가장 심각한 졸작으로 꼽히는 <레이디 인 더 워터>를 내가 사랑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라스트 에어벤더>라는 영화는 존재하지 않는다.) 내 생각에,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영화에 대한 샤말란의 관점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레이디 인 더 워터>의 이야기는 단순하다. 삶에 지친 아파트 관리인 클리브랜드는 어느 날 인간을 위해 인간세계로 찾아온 물의 요정 ‘스토리’와 만나고, 그가 무사히 돌아갈 수 있도록 전해 내려오는 전설을 따라, 아파트에 살고 있는 ‘수호자’, ‘길드’, ‘상징해석자’,‘치료자’ 등을 찾아 동분서주한다. 결국 그는 아파트 사람들과 힘을 모아 ‘스토리’를 다시 그가 살던 세계로 돌려보내는 데 성공한다. 동화 속 모험 이야기를 차용한 매우 단순한 구조의 서사다. 이렇게 요약해보면 굉장히 명료해지지만, 이 영화는 인간세계를 더 나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찾아온 ‘스토리’를 공동체의 일원들이 받아들이고, 각자의 역할을 찾아가며 힘을 모아 ‘스토리’를 다시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내는 이야기다.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이야기와 개인간의, 그리고 이야기와 공동체간의 관계에 대해 매우 직접적인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다. ‘이야기’를 통해 개인(클리브랜드)은 구원되고, 공동체(아파트 주민)는 일시적으로 공동체성을 회복하며, 또 어떤 개인(작가)은 ‘이야기’로부터 앞으로 그 자신이 믿고 지켜나가야 할 가치를 확신하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이야기가 제공하는 환상이, 환상에 불과하기에 결국 사라져야만 하고, 이야기는 다시 이야기의 자리로 돌아가야만 한다는 데 있다. 이 영화가 요정과 동화에 대한 이야기인데도 그저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리는 데 주력하는 것도, ‘스토리’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대단원을 아무런 신비도 경이도 없이 밋밋하게 묘사한 것도 바로 그런 까닭이리라.
최대한 간략하게 영화에 대한 내 생각을 설명하긴 했지만, 메시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고 좋은 영화가 아니라는 것은 나도 안다. 내가 보기에도 <레이디 인 더 워터>는 지루하고, 눈길을 끌 만한 요소가 거의 없는 영화다. 젠체하지 않는 것은 장점일 수 있지만 여러 면에서 허술함이 두드러지는 단점 많은 영화다. 그러나 ‘내 인생의 영화’라면 역시 나는 샤말란의 영화를, 그중에서도 <레이디 인 더 워터>를 꼽을 수밖에 없다. 그 못남과 투박함을 알면서도 영화의 목소리에 끊임없이 귀기울이게 되고, 동의하고 지지하고 싶어지는 이런 마음이 사랑 아니면 무엇일까. 나로서는 주어진 지면이 부족하여, 내가 왜 이 영화를 사랑하는지 더 말할 수 없다는 것이 그저 아쉽고 슬플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