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ituary]
[obituary] 아웃사이더의 시선으로 돌아보라
2016-07-22
글 : 조재휘 (영화평론가)
헥터 바벤코 (1946~2016)
<카란디루>

<거미 여인의 키스>(1985)로 널리 알려진 헥터 바벤코 감독이 지난 7월13일 상파울루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향년 70살. 라틴아메리카 영화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아카데미 감독상과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되고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하는 등 브라질영화를 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으로 끌어올리는 데 이바지한 그의 장례식은 15일 상파울루의 시네마테크에서 치러졌고 유해는 화장되어 평화의 정원 묘지에서 안식을 찾았다.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바벤코의 대표작은 역시 <거미 여인의 키스>일 것이다. 할리우드 공동자본으로 합작하여 만든 이 작품이 그의 이름을 국제적으로 유명하게 만든 건 분명하다. 그러나 헥터 바벤코의 존재는 단지 <거미 여인의 키스>의 연출자라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 영화사적으로 그는 글라우버 로샤의 <검은 신 하얀 악마>(1964), 넬슨 페레이라 도스 산토스의 〈보람 없는 삶>(1963) 등으로 대표되는, 브라질 사회의 정치변혁기 속에서 네오리얼리즘의 지향성을 추구하여 영화를 통해 민중의 삶을 조명하고 현실에 대한 저항과 전복을 꿈꿨던 시네마 노보(Cinema Novo) 운동의 흐름을 이어받은 기수였다. 각각 1964년과 1968년에 있었던 군부 쿠데타로 인해 시네마 노보 운동이 쇠퇴 일로를 걷고 있던 가운데, 아르헨티나에서 브라질로 넘어온 아웃사이더이자 후발주자였던 바벤코는 시네마 노보의 자장 안에서 자신의 영화적 구도를 정립하면서, 점차 꺼져가는 브라질영화의 불씨를 지펴 제3세계 영화의 선두주자로 서게 한 이 방면의 거인이었다. 안드루차 와딩톤의 <미 유 뎀>(2000)의 말미에 ‘헥터 바벤코와 월터 살레스 주니어에게 바친다’는 헌사가 뜨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다.

<거미 여인의 키스>

브라질 하층민의 삶을 다룬 작품들

바벤코는 1946년 2월7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나 마르델플라타에서 성장기를 보냈다. 아버지는 우크라이나계 유대인 혈통의 가우초(남미 카우보이)였고, 어머니는 폴란드계 이민자 출신이었다. 이런 인연으로 유럽 문화와 친숙했던 그는 18살에 가출해 1964년에서 1968년까지 유럽 각지를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한다. 이때 그는 세일즈를 하면서 단역배우로 연기 생활을 하는 틈틈이 문화적 교양을 쌓고 영화 제작의 메커니즘을 몸으로 습득해나간다. 1969년 유럽을 떠나 남미로 돌아온 바벤코는 브라질 상파울루에 정착하기로 결심한다(이후 그는 브라질에 완전히 귀화하여 남은 생을 보낸다). 상업광고와 뉴스필름, 다큐멘터리 <오 파블로스 피티팰디>(1973) 등을 제작하면서 영상 부문의 경력을 쌓아나갔고, 국유영화사 엠브라 필름의 지원으로 극영화 <밤의 제왕>(1975)을 만들어 데뷔, 본격적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여놓는다.

여러 거장감독들의 데뷔작이 그렇듯 <밤의 제왕>에는 훗날 그의 걸작인 <거미 여인의 키스>로 이어지는 바벤코 영화의 라이트모티브(leitmotiv)가 엿보인다. 1940년대 상파울루를 배경으로 한 보헤미안 청년이 매음굴의 여주인과 관계를 가지고 기둥서방이 되는 데서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겪는 돈 후안풍의 연애 편력기를 그린 이 영화에서, 통념과는 어긋나는 일그러진 로맨스를 다루는 동시에 당대 남미의 사회상을 조명하려는 <거미 여인의 키스>의 기초가 일찌감치 엿보인다. 브라질의 실존하던 갱두목 루치오 플라비오의 이야기를 극화한 범죄영화 <루치오 플라비오> (1977)는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두어 침체기에 접어든 브라질 영화산업에 일시적으로나마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하층민 삶의 연대기를 좇아가 브라질 사회의 어둠을 비추는 바벤코의 성향은 그의 명성을 국제적으로 인지시킨 <피쇼테>(1981)에서 더욱 극단화된다.

빈민가에서 정상적인 성장환경을 박탈당하고 피폐한 삶을 살아가는 하층민 어린이들에 관한 영화라는 점에서 루이스 브뉘엘의 <잊혀진 사람들>(1950)과 트뤼포의 <400번의 구타>(1959)로부터 받은 영향이 두드러지는 <피쇼테>는 거리를 부랑하는 청소년의 수가 무려 300만명에 달할 만큼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던 당대 브라질의 현실을 세미 다큐멘터리적 터치로 조명한다. 가난한 처지의 10살 소년이 친구 네명과 함께 조직폭력배와 유착한 경찰의 묵인하에 버젓이 살인이 벌어지는 소년원을 빠져나오지만, 어느 누구도 그들을 받아주지 못하는 환경에서 결국은 범죄자로 전락하는 비참한 상황을 그린 <피쇼테>는 모스크바국제영화제와 뉴욕비평가협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로카르노국제영화제 그랑프리를 휩쓰는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피쇼테>를 자신이 꼽은 위대한 영화의 리스트 중 한편으로 올렸다(여담이지만 <피쇼테>의 주인공으로 일약 스타가 된 페르난도 라모스 다 실바는 실제로 거리의 청소년 범죄자였으며 이후 다시 범죄세계에 발을 들여 1987년 경찰의 총격에 사살된다). <피쇼테>에서 보여진 브라질 사회에 관한 비판적 시선은 1992년 브라질의 카란디누 교도소에 경찰기동대가 투입되어 111명의 죄수가 무참히 학살된 실화를 다룬 후년의 작품 <카란디루>(2003)에서도 전혀 녹슬지 않고 고스란히 이어진다.

<엉겅퀴 꽃>

시네마 노보의 형식을 완성하다

<피쇼테>의 소년원, <카란디루>의 교도소를 통해 알 수 있듯, 영화 공간 안에 사회구조의 입체성을 함축하고 그 속에 놓인 인간의 진면목을 담아내려는 바벤코의 시선은 자타 공인의 걸작인 <거미 여인의 키스>에서 정점을 찍는다. 소설과 마누엘 푸이그의 동명 원작을 영화화한 이 작품에서 바벤코는 한방에 갇힌 동성애자 몰리나와 정치사상범 발렌틴의 관계를 그리면서 억압적인 군부정권 지배하에 놓인 브라질의 상황을 감옥이라는 밀폐된 공간 안에 응축시킨다. 몰리나는 자신의 여성성을 표출할 자유를, 발렌틴은 그의 혁명적 사상성을 억압받는다. 서로 상반된 두 인물의 운명도 결국 죽음으로 하나가 되는데, 사랑을 배운 투사는 정부의 고문에 의해 죽고 몽상가는 혁명가의 총탄에 목숨을 잃는다. <거미 여인의 키스>에 이르러 바벤코는 전위적 환상성과 다큐멘터리적 현실성, 연극적 세팅과 영화적 표현을 교차시키며 시대를 반영한 시네마 노보의 형식을 완성해낸 것이다.

<거미 여인의 키스> 이후에도 바벤코는 활발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미국으로 진출해 잭 니콜슨과 메릴 스트립을 기용해 만든 <엉겅퀴 꽃>(1987)은 1930년대 대공황의 여파로 낙오자가 된 인물들을 다루는데, 이 작품에서도 과거의 추억과 비참한 현재를 교차시키며 하층민의 삶을 다루는 바벤코의 작가적 인장은 배경만 바뀌었을 뿐 선명히 드러난다. 생애 후년에 이르러서도 <과거>(2007), 기예르모 아리아가가 주도한 옴니버스영화 <신들의 대화>(2014) 중 단편 하나를 작업했고 유작으로 윌럼 더포 주연의 <나의 힌두교 친구>(2016)를 만드는 등 영화에 대한 열정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안타깝게도 이 후년기의 작품들은 국내에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헥터 바벤코는 늘 언제나 시대의 풍경 속에서 무너져내려가는 아웃사이더의 모습을 즐겨 다루었다. 그의 시선은 인간은 환경에 의해 좌우되는 존재이며, 만약 그들이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면 그것은 이들이 속한 사회의 시스템이 잘못되었음에 대한 방증임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런 혜안의 작가가 마침내 발걸음을 멈추고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끝났다. 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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