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섬처럼 살아온 이들이 주체로서 말하고 외치는 98분의 시간 <그림자들의 섬>
2016-08-24
글 : 정지혜 (객원기자)
<그림자들의 섬>

부산 영도에 자리잡은 한진중공업 조선소. 그곳 노동자들의 투쟁사를 기억할 것이다. 2003년 사쪽의 대량 해고에 맞서 김주익 노조위원장이 크레인에 올랐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동료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봐야 했던 노동자 곽재규 역시 세상을 등졌다. 2010년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또다시 크레인 위에 올랐다. 그는 309일이 지나고서야 땅을 밟을 수 있었다. 지금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투쟁은 현재진행형이다. 김정근 감독의 두 번째 다큐멘터리 <그림자들의 섬>은 이 길고 험한 투쟁의 역사를 몸으로 기억하는 이들의 구술사에 가깝다. 카메라 앞에 앉은 김진숙 지도위원과 한진중공업 노조원들은 그들 각자가 기억하는 한진중공업을 육성으로 전한다. 1980년대 중·후반 한진중공업의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노동조합의 현황이 전해진다. 그 사적 기억과 맞물리며 영화는 한진중공업 노동조합 운동과 관련된 사진과 기사들을 정리해나간다. 시기별 중요쟁점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김정근 감독의 질문은 이러했다. ‘어째서 노동자들은 계속해서 싸워야만 하는가.’ 노동자들과의 면대면 인터뷰에서 대답의 단초를 찾는다.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불안정한 노동과 누군가의 죽음 뒤에는 사쪽과 정부의 무책임과 무능이 있다. 그리고 뼈아프게도 노동자들은 노조 운동 내부의 한계와 마주한다. 이들의 말 속에 그저 심각하고 치열한 운동만 있는 건 아니다. 첫 월급을 받았을 때의 기쁨과 거대한 선박을 지어올렸다는 데서 오는 뿌듯함이 있다. 그 감정을 다시 말하고 잊지 않으려 한다.

<그림자들의 섬>의 가치는 노동하는 인간으로서 자기 노동을 자각하고 자기 언어로 정리해보려는 시도에 있다. 역사라는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 짓눌려버리지 않으려는 시도다. 2000년대 이후 가장 치열하고 참혹했던 노동 운동 현장 중 하나인 한진중공업을 이렇게 다시 보고 듣게 된다. 노동조합 운동의 자기반성과 비정규직 하청 노동자 문제를 언급하는 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 영화의 제목 그대로 존재하나 그림자 취급을 받아온, 섬처럼 살아온 이들이 주체로서 말하고 외치는 98분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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