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미용실에서 야메 성형시술을 해오던 미경에겐 서울에서 사시공부에 매진 중인 아들이 유일한 보람이다. 어느 날 아들 집 수도요금이 120만원이나 나오자 그녀는 특유의 촉이 발동해 신림동으로 상경한다. 찌든 고시생들이 모여 사는 허름한 아파트, 한달전 이곳에서 뭔가 수상한 일이 일어났음이 틀림없다. 음습한 관리실과 미심쩍은 이웃집을 활개치고 다니며 미경은 조금씩 사건의 윤곽을 그려나간다. 이렇게 호기심 많은 아줌마 탐정의 <그것이 알고 싶다> ‘수도요금의 비밀’ 편이라 할 만한 생활밀착 스릴러영화가 전개된다.
남다른 촉과 특유의 뻔뻔함을 지녔지만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엄마 역에는 배우 박지영이 나섰다. 사건조사를 핑계로 희망을 저당잡힌 청춘들의 사연을 들어주는 오지랖 넓은 왕엄마 스타일에 꽤나 잘 어울린다. 새빨간 하이힐에 화려한 원피스 차림은 미경이 품은 촌스러우나 섹시함을 잃지 않은 아줌마 카리스마를 제대로 살려냈다. 영화는 굳게 닫힌 현관문 안에 고립된 채 301, 404 등 호수로만 지칭되는 청춘들의 일상에도 관심을 보인다. 고시촌의 우울한 현실도 영화 속에 구슬프게 드러난다. 매몰찬 친아들 대신 아파트 관리소 직원인 고아 개태가 보조자로 나서는데 아줌마 미경과 아들뻘 개태와의 화학적 조합이 맛깔스럽다. 신선도 높은 배우들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쏠쏠하다. 거칠고 무심하나 알고 보면 속 깊은 개태 역의 조복래는 개성파 배우의 출현을 예감케 한다.
이솜은 게임 폐인 공시족으로 특별출연한다. 장기 고시생 하준 역의 허정도와 인간 빙고게임 덕구 역의 백수장에게도 눈이 간다. 수도요금이라는 사소한 단서를 통해 중층적 미스터리를 만들어가는 서사 전개로 코미디와 스릴러를 엮은 실력도 탄탄하다. <범죄의 여왕>은 충무로의 젊은 영화제작집단 광화문시네마가 <족구왕>에 이어 내놓은 장편영화다. 스타 마케팅 없이도 저예산 고효율 코믹 스릴러를 만들어낸 젊은 패기가 가상하다. 통 큰 엄마의 종횡무진 코믹 스릴러로 한여름 텐트풀영화들의 틈새를 제대로 공략할 민첩성까지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