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인류가 시작된 건 다 너 때문이다, 시발(始發)놈아! <시발, 놈: 인류의 시작>
2016-08-24
글 : 송효정 (영화평론가)
<시발, 놈: 인류의 시작>

<시발, 놈: 인류의 시작>은 500만원 저예산의 황당무계 병맛 SF <숫호구>에 이은 백승기 감독의 두 번째 무모한 도전의 결과다. 백 감독의 아바타라 할 만한 배우 손이용이 주인공으로 나섰다. 순제작비 1천만원으로 네팔 해외 로케까지 섭렵한 대담함에 감탄케 된다. 전작에 비해 상당한 내적 진화를 이루어낸 작품성에도 허를 찔린다.

최초의 신인류 ‘놈’이 등장해 삶의 기쁨과 슬픔, 열정과 쾌락, 생사의 이치를 체득해가는 과정은 대사 하나 없이 진행된다. 선사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는 언어 이전 감각과 본능의 세계를 다룬다. 그렇기에 영화는 대사보다는 몸짓, 움직임에 주목한다. 싸구려 발음의 황당한 영어 내레이션으로 진행되는 서사에는 사실 특별한 면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표정과 신체의 활용, 유머에 대한 명민한 직관을 통해 강력한 흡인력을 발휘한다. 슬랩스틱 코미디를 연상시키는 형식은 가장 조악한 조합을 통해 기이하게도 무성영화적인 노스탤직한 아우라를 만들어내는 데 도달한다. 참으로 놀라운 경지다.

관객은 영화를 보며 곳곳에 눈에 띄는 어설픔들이 미덕으로 보이는 신비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온갖 장르를 믹스시킨 채 곳곳에서 장 자크 아노의 <불을 찾아서>, 스탠리 큐브릭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음모론 다큐멘터리 <시대정신>의 방식을 패러디했다.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을 오마주한 우아한 줌아웃 장면은 그중 압권이다. 백승기 감독은 각본, 연출, 촬영, 편집, 음향, 조명 등 영화의 거의 모든 부분을 감당하는, 참으로 발랄한 프런티어다. 미술 교사로 일하다 서른살에 독학으로 영화 만들기에 도전해 이번에 두 번째 장편영화를 선보였다. 제도와 아카데미 바깥에서 돌발적으로 튀어나온 꾸러기 감독 특유의 명랑하고도 조악한 에너지가 상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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