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인생의 쉼표가 필요한 순간 <올레>
2016-08-24
글 : 윤혜지
<올레>

부양가족이 없단 이유로 희망퇴직 대상자가 된 대기업 과장 중필(신하균), 변호사를 꿈꾸며 13년째 고시생으로 살고 있는 수탁(박희순), 잘나가는 방송국 간판 아나운서지만 속은 곪아가고 있는 은동(오만석)까지 세 사람은 대학 시절부터 가깝게 지낸 절친한 친구다. 열심히 주어진 현실을 살아냈지만 ‘결국 지금 남아 있는 것은 뭘까’ 생각하며 모든 걸 때려치우고 싶던 괴로운 순간, 세 사람은 갑작스럽게 지인의 부고를 듣는다. 조문차 제주 땅을 밟게 된 셋은 어쩐지 들뜬 기분을 즐기며 뜻밖의 여행을 시작한다.

하지만 현실의 괴로움에서 벗어나려는 40대 남성들의 일탈이 어째서 20대 초반 여성들과의 ‘썸’이어야만 했는지는 의문이다. <올레>는 전반적으로 무신경하게 왜곡된 성관념을 포기하지 않는 영화다. 영화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20대 후반, 30대 초반만 되어도 ‘한물간’ 취급을 받고(더욱 뜨악한 것은 해당 여성 본인도 이에 동의한다는 사실이다), 주인공 세 사람은 지나치게 ‘어린 여성들과의 섹스’에 집착한다. 성차별, 계급 차별적인 용어들을 아무런 죄책감 없이 사용하는 것도 부지기수요, “여자들에게 스펙은 최고의 최음제가 아니냐”는 경악할 만한 대사를 당당히 외치기까지 한다. 세 사람이 악기 연주를 하며 홀가분한 기분을 느끼는 산뜻한 순간에조차 카메라는 그들 앞에서 섹시한 춤을 추는 여성들의 몸을 집요하게 훑는다. 화사하고 아름다운 제주 풍광, 노련한 배우들의 열연은 둔감한 의식에 밀려 보이지 않는 지경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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