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이 만든 영화, 청소년을 소재로 한 영화, 청소년이 가족과 함께 즐길 만한 영화까지. ‘영화’와 ‘청소년’이란 키워드를 엮어볼때 떠오르는 거의 모든 범주의 영화들이 한곳에 모인다. 제1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가 9월1일 개막을 앞두고 있다. 이제 막 첫삽을 뜨는 영화제지만 2001년 1회를 시작으로 지난해까지 15년간 개최돼온 대한민국청소년창작영화제가 그 전신이다. 대한민국청소년창작영화제가 지닌 공모전으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되 다양한 영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축제로서의 성격이 뚜렷해졌다. 청소년 배역의 연기로 관객에게 선명한 인상을 남겼던 배우 서신애와 이이경이 영화제의 홍보대사를 맡았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경쟁부문을 포함해 총 아홉개 섹션에서 40여편의 영화를 상영한다.
제1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의 시작을 알리는 개막작은 스티븐 헤렉 감독의 <위풍당당 질리홉킨스>다. 세살 무렵부터 위탁가정을 전전해온 열두살 소녀 질리가 엄마에게 자신이 학대받고 있다는 거짓 편지를 보내면서 비롯되는 소동을 다룬다. 청소년이 감당하기에 녹록지 않은 소재를 시종일관 유쾌한 톤으로 그려내는 감독의 화법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1979년 뉴베리 명예상을 수상한 캐서린 패터슨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한편 폐막작으로 선정된 작품은 타이에서 제작된 조엘 소이슨 감독의 <버팔로 라이더>다. 양아버지 손에 이끌려 타이의 오지에서 생활하게 된 소녀 제니가 언어장애를 겪는 시골 소년 분바드를 만나 서로의 트라우마를 서서히 치료하는 과정을 담는다. 두 작품 모두 가족 단위로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따뜻한 드라마다.
상영작을 살펴보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만을 모은 ‘19+ 다른 세상이 온다’ 부문은 기획력이 돋보인다. 청소년에게 필요한 영화지만 등급 제한으로 다양한 논의의 장을 갖지 못한 영화를 영화제의 중심으로 가져와 성인 관객과 함께 청소년 문제에 대해 고민한다. 고등학생 네명의 사연과 더불어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담아내는 <수색역>, 27살에 요절한 아티스트 에이미 와인하우스의 위태롭고 고독한 내면을 돌아보는 <에이미>, 평범한 고등학생 한공주의 비극과 이를 바라보는 사회의 냉담한 시선을 담은 <한공주>, 행위예술가 부모와 자식의 관계를 다룬 <부모님과 이혼하는 방법> 등이 상영된다. 평단의 호평과 대중의 사랑을 두루 받은 기개봉작들을 다시 만날 수 있는 기회다.
한 가지 주제나 인물에 대해 깊이 있게 살펴보는 ‘특별전’은 영화제의 백미다. 제1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는 ‘특별전, 로알드 달을 위하여’를 마련하며 탄생 100주년을 맞은 동화 작가 로알드 달의 기발하고 대담한 동화 세계를 살펴본다. 작가의 원작에 기반한 영화 네편이 상영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로알드 달의 초기작에 기반한 <제임스와 거대한 복숭아>는 졸지에 고아가 된 소년 제임스가 마법으로 비대해진 곤충 친구들과 함께 거대한 복숭아를 타고 떠나는 모험을 스크린에 옮긴다. <크리스마스 악몽>을 연출한 헨리 셀릭 감독이 실사와 스톱모션을 활용해 환상적인 비주얼을 선보인다. 거인과 고아 소녀의 우정을 그린 애니메이션 <내 친구 꼬마 거인>, 이상한 학교에 내던져진 마틸다와 그의 친구들이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정의를 구현하는 과정을 그린 <마틸다>, 탐욕스런 인간들을 향한 동물들의 영리한 응징을 담은 <판타스틱 Mr. 폭스>까지 어린 청소년들의 진취성과 지혜로움을 엿볼 수 있는 작품들이 상영될 예정이다.
청소년과 대학생 감독들의 공모로 꾸려지는 ‘경쟁부문’ 또한 주목할 만하다. 경쟁작 공모와 심사는 19살 이하 중•고등부를 대상으로 한 ‘Under 19’와 대학부인 ‘Under 21’로 나누어 진행된다. 올해에는 청소년 부문 127편과 대학부 98편의 단편 작품들이 접수됐다. 입시와 경쟁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청소년들의 삶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영화들이 다수다. 동성 친구간의 섬세한 감정 변화를 그리는 채가희 감독의 <앨리스: 계절의 틈>, 시험 문제 하나가 입시의 당락을 좌우하는 현실을 담은 이성빈 감독의 <출제오류> 등 시놉시스만으로 흥미를 자극하는 작품들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국제장편’과 ‘국내장편’ 부문은 국내외 유수 영화제에서 주목받았던 친근한 작품들을 선보인다. ‘배낭 메고 해외로 떠나는 무전여행’이라는 제목처럼 국제장편 부문에서는 북미, 일본, 북유럽, 북극 등 세계 각지의 풍경과 그 속 청소년들의 삶을 보여준다. <북극의 후예 이누크>는 끝없는 빙하지대의 풍광만큼이나 낯선 에스키모 후예들의 삶을 흥미진진한 픽션으로 묘사한다. 북유럽의 공기를 한껏 담아내고 있는 <히어 애프터>는 살인사건으로 수감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17살 청소년에 대한 이야기로, 청소년을 둘러싼 사회문제를 직접적인 언어로 담아낸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객의 큰 호응을 이끌어냈던 <미국에서 온 모리스>는 음악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한 소년이 현실의 굴레에 맞서며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어린이 관객을 위한 세편의 애니메이션도 준비돼 있다. <세기말 하모니>는 대재앙 후 기계적인 조화에 매몰된 가짜 세계에 맞서고자 자살을 선택하는 소녀들의 이야기다. 극단으로 치닫는 일본 사회에 대한 은유와도 같은 작품으로, 이번 영화제를 통해 국내에서 처음 대중과 만난다. 완전히 다른 분위기의 프랑스•벨기에 합작 애니메이션 <머나먼 세상 속으로>는 아버지의 사랑을 찾기위한 소년의 모험담을 그린 판타지애니메이션이다. 올 초 개봉한 마크 오스본 감독의 <어린 왕자>는 이번 영화제의 유일한 야외 상영작이다. 인류의 고전 <어린 왕자>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한 영화다. 한스 짐머의 결이 살아 있는 음악과 환상적인 화면이 가을밤에 녹아들 예정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과 담론을 담은 단편영화 섹션 ‘단편, 짧지만 길고 깊은 이야기’에는 강제규감독의 <민우씨 오는 날>, 정하림 감독의 <봉준호를 찾아서> 등을 포함해 멀리 쿠바에서 온 단편들이 상영된다. 제1회 안양국제청소년영화제는 9월1일(목)부터 4일(일)까지 평촌중앙공원, 안양아트센터, 롯데시네마 평촌점 등 안양시 일대에서 열린다. 영화제에 관한 구체적인 정보는 공식 사이트(http://www.aiyouth.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