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슬픔이 빚어낸 가장 아름다운 환상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2016-08-3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히브리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아모스 오즈의 자전적 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가 동명의 영화로 옮겨졌다. 초로의 작가가 38살에 자살한 자신의 어머니를 회상하는 형식을 취한다. 1945년 영국 통치하의 이스라엘로 거슬러 간다. 그곳은 반유대주의의 광풍이 거센 황량한 세계다. 문학을 사랑하는 여인 파니아(내털리 포트먼)는 아들 아모스(아미르 테슬러)에게 자신의 꿈 이야기와 과거의 한때, 자신이 읽었던 책 속의 구절을 들려준다. 파니아 스스로 ‘언어 앞에서 약해진다’고 말할 만큼 그녀는 언어를, 문학을 사랑하지만 그 재능을 펼칠 수 없다. 유대인이라는 태생이 그녀의 일상을 위협하고 주눅들게 한다. 히브리어 문학 작가인 남편 아리에(길라드 카하나)는 그녀와 달리 책 출간으로 잠시 기뻐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평온해 보이지만 파니아는 시대의 현실 앞에서 자신의 한계에 직면하고 알 수 없는 불안에 휩싸인다. 부부의 현실 인식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유대국가와 아랍국가를 건립하는 문제를 두고 실시한 1947년 유엔 팔레스타인 특별위원회의 투표 결과에 대한 반응만 봐도 알 수 있다. 남편은 유대인의 역사에 장밋빛 미래를, 파니아는 날카로운 낙담의 말을 남긴다. 오래전부터 이어진 불안증과 수면장애는 그녀를 더욱 파리하게 만든다.

파니아의 가족이 나누는 대화와 인물들의 동선을 구현하는 방식이 서사와 맞물린다. 인물들은 계속해서 히브리어의 어원에 대해서 말한다. 예컨대 ‘무자식’은 ‘어둠’이고 ‘망각’이다, ‘앞으로’의 어원을 살펴보면 ‘옛날’이라는 뜻이다. 미래를 고대한다는 건 역설적이게도 과거(역사)를 향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들의 대화 속에는 파니아의 꿈과 유대의 역사가 철저히 부정되는 현실이 있다. 그들의 역사가 다음 세대로 이어질지 기약할 수 없다. <블랙 호크 다운> <세 가지 색: 블루> <베로니카의 이중생활> 등을 촬영한 슬라보미르 이지아크의 카메라 역시 인물들을 좇아 유려하게 롱테이크로 흐르며 의식의 흐름을 따른다. 주연배우 내털리 포트먼의 첫 장편 연출작으로 그녀가 직접 각색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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