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의 경사기도권]
[허지웅의 경사기도권] <머니 몬스터>의 실책이 드러내는 진실
2016-09-05
글 : 허지웅 (작가)
일러스트레이션 : 민소원 (일러스트레이션)

<머니 몬스터>는 외연이 화려한 영화다. 조디 포스터가 연출을 맡았다.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한다. 이야기 또한 관객의 마음을 잡아끌기 충분해 보인다. 꽤 잘나가는 경제 예능쇼가 진행되는 도중에 이 쇼에서 추천한 금융상품에 투자했다가 전 재산을 날린 소시민이 난입하여 진행자를 인질로 삼고 폭주한다.

이야기는 실제 쇼가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거의 실시간으로 흘러가고 관객은 흡사 이 사건이 진짜로 벌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만하다. 뿐만 아니라 단지 인질극과 실시간 흐름에서 오는 서스펜스를 넘어 결코 처벌받는 법이 없는 경제사범을 단죄해내는 쾌감마저 존재한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비롯한 일련의 금융 환란 이후를 살아나가는 미국 관객에게 이는 꽤 각별한 대리만족일 것이다. 요컨대 당대의 요구를 담고 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머니 몬스터>는 외연부터 이야기에 이르기까지 언뜻 갖출 것을 다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아무것도 성취해내지 못하는, 초라한 완성도를 드러내고 만다. 어떻게 된 일일까.

이야기는 주인공이 진행하는 경제 예능쇼 <머니 몬스터>의 촬영과 함께 시작된다. 주인공 리 게이츠는 프로그램의 여전한 인기에도 불구하고 전과 같지 않은 위상 탓에 다소 신경질을 부린다. 프로듀서는 이번 생방송을 마지막으로 프로그램을 떠날 작정이다. 누구 하나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다들 지쳐 있는 느낌이다.

쇼가 시작된다. 주인공이 여느 때처럼 오늘의 추천상품을 소개하려는 찰나 카메라의 시선 구석에 낯선 남자가 포착된다. 택배 기사다. 아니나 다를까 촬영장으로 난입한 택배 기사는 주인공을 인질로 잡고 그에게 폭탄조끼를 입힌다. 인질범은 이 쇼에서 추천한 상품에 투자했다가 알거지가 된 소시민이다. 주인공은 당신이 손해본 액수를 보상하겠다고 제안하지만 인질범은 거절한다. 그가 원하는 것은 완벽해 보였던 이 상품의 주가가 왜 휴지 조각이 되었는지, 외부에 알려진 공식 성명이 아닌 실제 거기서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에 관한 진실이다. 카메라는 계속해서 돌아가고 인질범의 요구는 생중계로 미국 전역에 방송된다. 방송을 보고 있던 시민들은 되레 인질범을 응원하게 되고 주인공은 시간이 갈수록 초조해진다. 주인공은 진실을 밝히기로 마음먹는다.

경제 범죄는 할리우드영화의 주요한 소재 가운데 하나였다. 이 방면의 레퍼런스라고 할 만한 <월스트리트>는 오래도록 사랑받으며 수많은 유사 영화들을 양산해냈다. 경제 범죄 영화는 기본적으로 사기극이었다. 잘 빼입은 엘리트들이 어떤 방식으로 합법적인 사기를 쳐서 판돈을 긁어가는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으면서 쿨해 보이는 소재였고 관객은 <스팅>이나 <오션스 일레븐>을 보듯이 경제 범죄 영화를 소비했다.

리먼 브러더스 사태를 전후한 미국의 경제 환란 이후 모든 것이 바뀌었다. 이 경제 환란은 미국인의 삶을 근원부터 송두리째 뒤흔들어놓았다. 이제 경제 범죄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들 가운데 가장 진지하고 구조적이며 지능적인 동시에 관객의 영혼을 잡아 흔드는 장르가 되었다.

<마진 콜: 24시간, 조작된 진실>(이하 <마진 콜>) <투 빅 투 페일> <빅 쇼트> <인사이드 잡> 같은 수작들이 등장했고, <라스트홈> 같은 평범한 영화조차 앞선 수작들의 자장 안에서 특별해 보일 지경에 이르렀다. 이 영화들은 더이상 ‘경제’와 ‘범죄’를 따로 구분지어 설명하기 어려워진 현실의 문제를 다루었다. 잠시 다른 이야기이지만, <마진 콜> <투 빅 투 페일> <빅 쇼트> <인사이드 잡>을 아직 보지 못한 독자가 있다면 반드시 한꺼번에 몰아서 보길 추천한다. 동시대성이라는 사명감을 제외하더라도 관객의 영혼을 위해 반드시 봐야만 하는 영화들이다. <인사이드 잡>은 다큐니까 제일 마지막에 보는 게 감상의 흐름을 위해 좋을 것 같다.

<머니 몬스터>는 앞서 언급한 영화들의 연장선 위에 있는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마진 콜>이나 <빅 쇼트> 같은 영화들이 이룩한 눈부신 성취와는 아쉽게도 멀리 떨어져 있다. 일단은 조지 클루니와 줄리아 로버츠가 연기하는 두 주인공 캐릭터 사이의 무게 배분에 실패했다. 프로듀서를 연기하는 줄리아 로버츠의 무게감이 뒤로 갈수록 더 짙어지다보니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야 할 인질은 어느 순간 영화에서 실종되어버리고 만다. 그 때문에 실시간 인질극이 갖는 장점은 거의 상실되어버린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머니 몬스터>의 가장 큰 문제는 이야기에 있다. 주인공은 문제를 해결하기로 마음먹는다. 진실을 수집해 대중에 알리고 인질범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프로듀서와 협력한다.

그런데 <머니 몬스터>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는 주인공의 추리도, 프로듀서의 용기도, 어느 누구의 두뇌 싸움도 아닌, 그저 등장인물 한명의 양심이다. 그 양심이 발화되기 위해 어떠한 합리적인 배경이나 맥락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그 인물은 우연히 착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이는 이야기의 극적 구조와 완결성에 심각한 장애로 작용한다. 모든 수수께끼를 푸는 유일한 키를 누군가의 양심에 맡겨버린 결과 이야기는 매우 편리하게 마무리된다. 동시에 영화는 너무나 얇은 완결성과 문제의식을 가진 쉽고 편리한 이야기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나 <머니 몬스터>의 이야기가 갖고 있는 중대한 결점이 단점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이 영화의 실책은 역설적으로 또 다른 진실 하나를 드러낸다. 즉 지금의 현실에서 구조적인 문제로 전락해버린 경제 범죄를 단죄하는 건 완전히 불가능하다, 개인의 양심에 기대는 기도하는 마음 이외에는 어떠한 해결책도 존재하지 않는다, 라는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았을) 문제 제기에 이르기 때문이다. 이는 <투 빅 투 페일>과 같은 영화의 메시지와 닿으면서 다시 한번 현실 세계에 대한 열패감을 끄집어낸다. 그들은 범죄를 저질렀지만 그들과 경제를 따로 떨어뜨려 인식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들이 곧 경제이다. 고로, 그들을 단죄하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그들은 실패하기에는 너무 큰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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