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1]
[스페셜] 홍대 자립음악가 밤섬해적단 뒤쫓는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간>(가제) 촬영현장
2016-09-05
글 : 김성훈
사진 : 최성열

“안녕하세요. 저희는 노동당 지령을 받고 내려온 밤섬해적단입니다.”(보컬, 베이스 장성건)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생기면 경제가 좋아진다죠?”(드러머 권용만) “그러면 군이 많이 주둔한 강원도 철원의 경제는요?”(장성건)

만담꾼이야? 아니면 밴드야? 홍대 자립음악가 밤섬해적단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공연보다 잡담 시간이 더 긴 이 밴드가 당혹스러울지도 모르겠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잡담 혹은 만담은 밤섬해적단의 음악의 일부다. 이것이 지난 7월 <잼 다큐 강정>(<씨네21> 812호 기획 ‘100일간의 잼다큐멘터리 <강정> 촬영현장’ 기사 참조) 촬영현장 취재차 내려간 제주도에서 만난 그들에 대한 첫인상이다. 지난해 두리반에서 열렸던 ‘51+ 페스티벌’에서 정윤석 감독 역시 밤섬해적단의 공연을 보고 똑같은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마당극이나 무성영화 시대의 변사처럼 보였어요. 음악을 통해 그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사회에 대한 풍자이고, 그 뜻은 그들의 노래 가사에 숨어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음악 자체는 노이즈에 가깝더라고요. 의미는커녕 가사조차 정확히 전달되지 않았어요.” 그는 이런 풍경 자체가 한국사회에 대한 적절한 비유처럼 느껴졌다고 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을 졸업한 정윤석 감독은 <우리나라에도 백악관>(2006), <호치민>(2007), <별들의 고향>(2010) 등 그간 영화의 경계에서 다양한 매체를 실험해왔다. 그는 다큐멘터리나 장르영화에 갈증을 느끼고 있었고, ‘다음 작품은 인물 다큐를 찍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였다. 우연히 인터넷에서 밤섬해적단의 공연을 다시 접하기 전까지만 해도 그는 자신이 그들을 따라 강릉, 제천, 청주, 제주, 대구, 부산 등 전국을 일주하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PPT를 제작한 뒤 프레젠테이션을 하듯 공연을 하더라고요. 가사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는 까닭은 공연 내내 자신의 음악을 설명하기 때문이에요. 갑자기 그들이 궁금해졌어요. 왜 밤섬해적단은 이런 음악을 할까. 그들의 삶은 어떠할까.”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간>(가제)은 이 질문에서 출발하는 인물 다큐멘터리다. <원스>(2006)를 떠올릴 법도 하나 정윤석 감독은 이 영화를 기존의 음악영화처럼 그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밤섬해적단의 음악은 ‘듣는 음악’이 아닌 ‘읽는 음악’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그만큼 가사의 내용이 중요하고, 공연 형식도 전위적이다. 이는 어떤 점에서 정윤석 감독이 그간 다뤄왔던 한국사회의 정치•역사적 현실의 아이러니와 같은 메시지와 맞닿아 있다. “밤섬해적단을 호출하려는 사회의 욕망을 드러내고 싶어요. 그게 밤섬해적단 자체일 수도 있고, 그들을 둘러싼 사건일 수도 있고. 분명한 건 밤섬해적단이 속한 홍대 자립 음악가들의 활동이 어떤 변화와 에너지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거죠.” 이 다큐멘터리는 밤섬해적단의 행적을 좇는 음악 다큐의 외양을 갖추겠지만 한편으로 동시대의 한국사회를 그려내려는 어떤 풍경화가 될 것이다.

음악영화? 한국사회의 풍경화!

9월4일 경기도 양평에서 열린 양평환경미술제에서 밤섬해적단과 정윤석 감독을 다시 만났다. 행사 관계자와 밴드 그리고 양평군 주민들을 합쳐 서른명 남짓한 관객이 전부인 지역 행사였다. “오늘은 시위 현장이 아니네요”라고 안부 인사를 건네자 드러머 권용만씨가 “항상 시위 현장에서 공연하는 건 아니에요. 오늘은 행사 뛰러 왔어요. (웃음)”라며 반갑게 맞는다. 그들은 그간 많은 일이 있었다고 한다. “얼마 전 명동 마리에서 공연을 했어요. 공연이 끝난 뒤 용역업체 아저씨들과 대치하다가 용만이가 새벽에 경찰에 연행됐어요.”(장성건) “감독님이 편의점에 간 사이 벌어졌어. (웃음) 내가 연행되는 걸 카메라에 못 담았지, 아마?”(권용만) “나중에 자막으로 처리해야 할 거 같아. 너무 갑작스러운 상황이라 서대문 경찰서에서 용만씨가 조서 쓸 때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속으로는 걱정이 많이 됐는데 겉으로는 의연한 척하려고 애썼어. (웃음)”(정윤석) 잘 모르는 누군가가 보면 세명이 같은 밴드 멤버라고 착각할 만큼 세 사람은 가까워진 것 같았다.

처음부터 밤섬해적단이 카메라에 마음을 연 건 아닐 것이다. 정윤석 감독은 ‘그들이 카메라에 마음을 열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을까’를 더 고민했다. 그는 말한다. “밤섬해적단은 촬영하기 전에도 음악을 했고, 촬영한 뒤에도 음악을 할 친구들이에요. 항상 이걸 먼저 생각했어요.” 현장에서 그가 카메라를 든 시간보다 밤섬해적단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더 많은 것도 그런 이유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그게 맞다고 생각해요. 언제부터인가 촬영 나가는 게 즐겁더라고요. 작업한다는 생각보다 아이들을 볼 수 있어서 좋고. 바빠서 못 볼 때는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고. 아마 그때부터 서로에게 가까워졌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아요.” 다소 낯간지러운 말 때문인지 밤섬해적단은 서로를 쳐다보며 웃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큐멘터리에서 감독과 대상의 관계는 짝사랑과 같다는 말을 이들 앞에서는 잠깐 삼켜야 할 것 같다.

이때 무대에서 시간이 다 됐다는 사인을 준다. 밤섬해적단은 “빨리 가야 한다”며 자리를 파한다. 무대 위의 밤섬해적단은 두달 전과 변한 건 없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서울에서 내려온 밤섬해적단입니다.”(권용만) “아니, 오늘 무대에 서울에서 안 내려온 밴드도 있나? (웃음)”(장성건) “핫, 그런 건 아니지만…. 첫곡은 청소년들과 가족들에게 무해한 <공산당은 죽지 않아> 하겠습니다.” 어쩌면 <밤섬해적단, 습격의 시간>은 이제껏 나온 음악 다큐멘터리 중에서 가장 골 때리는 밴드에 관한 이야기가 될지도 모르겠다.

골 때리는 밴드, 밤섬해적단에 묻다

홍대가 아닌 새로운 ‘신’에 더 관심이

-정윤석 감독을 처음 만난 건 언제인가

=권용만_ 2009년에 전시회 철거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갤러리에서 전시가 끝나면 뒷정리를 하는 일이다. 소격동 옛 국군 기무사령부 본관에서 열린 <플랫폼 인 기무사전>이었는데, 그게 정윤석 감독의 작품이었다.

=장성건_ 이후 감독님께서 만나서 얘기나 하자고 하시더라. 우리를 찍고 싶다고 하시더라. 뭘 하겠다는 건지 감은 안 잡혔지만 이것저것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더라.

-카메라가 계속 따라다니면서 밴드 활동을 담는 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나.

=권용만 항상 우리의 활동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부담이 없었던 것도 그래서다.

=장성건 우리 음악은 항상 위악적이다. 다큐멘터리라고 해서 특별히 잘 보이고 싶거나 그런 마음은 없다. 늘 하던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하려고 한다. 뭐, 본인 밥줄이니까 알아서 잘 찍겠지. (웃음)

-사회적인 이슈가 있는 현장에서 공연한다. 이유가 뭔가.

=장성건 시위 현장이 주라면 민중 가요를 하는 게 맞겠지. 그런 것보다 우리는 홍대가 아닌 새로운 ‘신’에 관심이 더 많다.

-첫 시위 현장 공연은 두리반 무대였다. 이 경험이 밤섬해적단에 끼친 영향은 무엇인가.

=권용만 처음에는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사람들의 표정을 많이 살폈다. 두리반 주인아저씨가 가만히 서 계시다가 ‘씨익’하고 웃으시더라. 그렇게 독립영화인들을 알게 되면서 1년 동안 행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이더라.

-가사의 대부분이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다. 무대 위에서 하는 멘트는 어떻게 준비하나.

=장성건 가사는 용만이가 주로 쓴다. 돈, 실업 등 열받는 문제들을 주로 다룬다.

=권용만 무대 올라가기 전부터 어떻게 하자고 맞추는 편은 아니다. 가사를 주로 내가 쓰니까 그걸 가지고 관객에게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성건이도 내 말에 즉흥적으로 받춰주고.

-스스로 생각하는 밤섬해적단의 음악은.

=장성건 젊음과 패기? (일동 폭소) 권용만 삼각형의 네각의 합은 180도다?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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