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그 누구도 몰랐던 무인도 생존 비밀 <로빈슨 크루소> Robinson Crusoe
2016-09-07
글 : 우혜경 (영화평론가)
<로빈슨 크루소>

야심차게 배에 올랐지만 ‘약골’ 지도 제작 지망생 로빈슨 크루소(유리 로웬탈)에게 항해 여정은 험난하기만 하다. 선원들의 놀림에, 지독한 배멀미까지 어느 하나 견디기 쉬운 일이 없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몰아닥친 폭풍에 배가 침몰하고, 무인도에 떠밀려온 로빈슨은 아무도 없는 낯선 곳에서 홀로 살아가야 하는 처지가 된다. 여기까지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라면, 애니메이션 <로빈슨 크루소>는 원작의 시점을 살짝 바꾸어놓는다. 만약 우리가 무인도에 살고 있던 동물들이라면? 그리고 로빈슨 크루소가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방문자라면?

무인도에 살고 있던 호기심 많은 앵무새 튜즈데이(데이비드 하워드)는 무인도 밖 새로운 세상을 꿈꾼다. 그런 튜즈데이에게 로빈슨은 신기하고 궁금한 관찰 대상이다. 경계심을 늦추지 못하던 물총새 키키도, 앞이 잘 보이지 않던 염소 스크러비도, 겁 많은 고슴도치 에피도 어눌하지만 마음씨 착한 로빈슨의 모습에 차츰 마음을 열기 시작한다. 외로운 로빈슨의 생존 게임은 동물 친구들 덕분에 차츰 활기를 더해간다. 익숙한 이야기를 새롭게 만드는 작업은 새로운 이야기를 창작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로빈슨 크루소>가 동물을 끌어들여 로빈슨 크루소를 관찰하도록 만든 전략은 애니메이션만이 가질 수 있는 이점을 십분 활용한 재치 있는 대안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때 신기한 것은 로빈슨 크루소와 동물 캐릭터들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도록 설정했다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에서 동물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건 너무나 당연한 ‘전제’인데 <로빈슨 크루소>는 굳이, 이들의 대화를 불가능한 것으로 만들어놓는다. 덕분에 변주한 설정 속에서도 ‘로빈슨 크루소’ 이야기의 핵심을 이루는 외로움의 감정선을 어느 정도 유지해낸다. 여러 동물을 만나 도움을 받지만 그들과 말이 통하지 않기에 로빈슨의 고립감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는다. 둘의 이야기를 모두 알아듣는 전지적 관점의 관객이 갖게 되는 안타까움은 낯익은 이야기를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가장 큰 동력이다. <새미의 어드벤쳐> 시리즈와 <썬더와 마법저택>을 만든 엔웨이브 픽처스의 신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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