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21 리뷰]
인류 종말의 끝, 다시 시작된 기적 <칠드런 오브 맨>
2016-09-21
글 : 정지혜 (객원기자)
<칠드런 오브 맨>

2027년 영국 런던. 우중충하며 서늘한 도시의 분위기와 그보다 더 을씨년스러운 인물들의 표정 위로 인류의 최연소자가 사망했음을 알리는 보도가 전해진다. 더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불임 상태의 인류에 이보다 더 절망적인 소식은 없다. 영국 정부는 이민자들을 범죄자로 낙인 찍고 격리 조치를 취하며 분리 정책을 이어간다. 한편 테오(클라이브 오언)는 한때 부부의 연을 맺었던 줄리엔(줄리언 무어)에게서 키(클레어-호프 애시티)라는 소녀를 무사히 ‘미래(Tomorrow)호’에 태워줄 것을 제안받는다. 놀랍게도 키는 임신 상태다.

<칠드런 오브 맨>은 <그래비티>(2013)에 앞서 알폰소 쿠아론이 묵시록적인 세계의 끝에서 인류의 가능성을 탐구한 작품이다. 세계는 계급, 인종, 종족에 따른 차별과 폭압으로 가득 찼다. 집시를 포함한 유색인종은 닭장 같은 거리 감옥에 수감돼 있다. 그러니 흑인 여성인 키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정부는 그녀의 아이를 흑인 상류 계급 여성의 아이로 둔갑시킬 게 뻔하다. 이 와중에 다른 세계로 나아가려는 이들이 있다. 특히 여성들의 활약이 눈에 띈다. 줄리엔은 소신대로 반정부 인사로 살며 키의 아이를 보호하고, 키는 두려움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고 미래호를 타기 위해 이를 악문다. 키와 테오 일행을 돕던 집시 여인은 자신들의 발목을 잡으려던 남자를 두들겨패버리기도 한다. SF 액션 스릴러물의 외피 속에서 자칫 심각하게만 흐를 수 있었던 극은 극악한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나아가는 인물들의 행동으로 잠시나마 웃음을 주기도 한다. 장중하고 몽환적인 존 태버너의 음악과 킹 크림슨의 곡이 아포칼립스적인 무드를 잡는 데 주효했다. 여기에 에마누엘 루베스키의 촬영도 일조한다. 특히 극 후반, 참혹한 대치 상황에서 키와 그 아이를 찾아가는 테오의 끈질긴 움직임이 롱테이크로 유려하게 그려진다. 영화평론가 로저 에버트는 2006년 개봉 당시, “뭐라고 쉽게 정리해서 얘기하기에는 마음속에서 너무나 큰 소용돌이를 치게 만든다”며 호평하기도 했다. 영국의 여성 작가 필리스 도러시 제임스의 동명 소설이 원작. 제79회 미국 아카데미에서 각색상과 2006년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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